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차민경 ]


충분한 삶의 기준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A+의 성적을, 어떤 사람은 900대의 높은 토익 점수를, 어떤 사람은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 또 어떤 사람은 억대 연봉의 직업을 가져 나의 명의로 된 서울에 비싼 집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충분해지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대학 졸업 후에는 명성 있는 직장에 성공적으로 취직하기 위해, 취직 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워할 만한 행복한 삶을 꾸리기 위해서 더 높은 연봉의 직장을 가지려 하고 더 열심히 몸을 갈아 일하려 한다.


이쯤 되면 한가지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쯤이면 충분해질 수 있을까?




늘 모든 것을 잘하고 싶은 소녀의 충분해지고 싶은 이야기



필자는 현재 대학교 1학년으로 완벽주의 성향과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엔 승부욕이 높은 편이며,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피곤할 때도 많지만 덕분에 일하면 좋은 성과를 얻는 면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인간 또한 다를 게 무엇이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고집불통의 소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칭찬을 들은 그날만큼은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온종일 그날 들었던 칭찬을 몇백번이고 머릿속에서 되새기곤 했다. 자연스럽게 칭찬들과 남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이유가 되었고, 누구 하나 나에게 부추기지 않았으나 자연스럽게 성과를 내고 남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내 인생에서 자연스러운 루트처럼 된 것 같다. 마치 당근 낚싯대에 걸린 당근을 보며 하루하루 걸어가는 당나귀와 같이, 혹은 끝이 정해지지 않는 무한한 쳇바퀴 속을 뛰는 햄스터와 같이, 어디로 가는지도, 무엇을 원하는지도, 왜 뛰어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계속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갈 뿐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는데 나 자신의 행복과 안녕보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칭찬 한마디를 더 받는 것이 우선순위였고, 그들의 인정이 나의 행복보다 왜인지 더욱더 가치 있게만 느껴졌다.


사실 쳇바퀴 위를 열심히 뛰어가는 삶도 생산성 면에서 생각해본다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로봇처럼 매일 똑같은 물건을 찍어낼 수 있는 기계가 아니다.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는 인간은 다리가 부러지는 등의 신체상의 큰 문제가 없어도 기계처럼 무언가를 계속 진행할 수 없다. 그건 인간이 나약해서도,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닌, 그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학에 와서야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뾰족한 답변은 찾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많은 것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너무나도 못나 보였고, 왜 이것밖에 되지 못하는 걸까? 왜 더 잘할 수 없는 걸까? 라는 질문을 매일 자신에게 던지며 자기 자신을 질책하기 바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량같이 놀고 있었던 상황이 아닌, 좋은 성적과 인턴으로 일할 기회, 그 외 수많은 대외활동 등등 정말 많은 것들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 행복할 수 있는 기회와 행복할 수 있는 자원들을 내 손 안에 이렇게나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행복할 수 있는데도 행복하지 못한 것마저 내가 부족한 탓인것만 같았다.


학기를 마치고 자기 전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비로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가진 것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었는지, 나는 90을 잘해도 잘 해내지 못했던 10이 신경 쓰여 그 많은 성취를 뒤로하고도 마음 편히 행복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완벽을 추구하면 할수록, 100에 대한 집착이 심해질수록, '무언가를 해낸 나' 보다 '무언가를 하지 못한 나'에 집착하게 되고, 나의 성취보다 나의 결핍에 집중하게 되면서 결국 나 자신을 비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절대로 욕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더 좋은 직장을 가지고 싶고, 더 좋은 자식이 되고 싶고, 더 예쁘고 잘생겨지고 싶으며,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더'를 외치는 이유는 결국 '더 행복하기 위함'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것이 항상 우리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선, 내가 가지지 못한 10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90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선, 잠시 나를 갉아먹고 있던 욕심을 내려놓고, 지난 나의 삶을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이 필요하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선, 이제 그만 나 자신의 못난 점을 찾는 것을 멈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선, 스스로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사람인지 알고, 나 자신의 영원한 든든한 편이 되어줘야 한다. 어쩌면 인간이 충분해질 때란, 얼마나 많은 물질적 보상들이 그때그때 손에 쥐여줬는지 보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든지와 별개로 비로소 결핍에서 자유로워지고 존재 자체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그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사실 당신은 이미 너무나도 충분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지난기사

지나간 1분 1초를 백업해주세요!

아이고 두야! 할 일은 너무 많고 인생은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내가 과연 우울한 것이 맞을까?

실망하고 싶지 않아 기대하지 않는 당신에게

그 무엇도 늦은 것도 없고, 그 무엇도 낭비된 것은 없음을

더이상 무언가를 성취해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수 있을까?

난 왜 매일 11:59PM에 과제를 제출할까?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6616
  • 기사등록 2023-06-19 14:27:0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