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예은
[The Psychology Times=전예은 ]
한 여자는 5년 동안 한 남자에 휘둘리며 살았다. 처음엔 이 남자가 나한테만 무시하듯 장난치고 나한테만 괴롭히고 나만 놀리니까 괜히 좋은 감정이 들은 것이다. 결국 그 여자는 그 남자와 사귀게 되었다. 그 여자는 그 남자와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또 싸울 때는 미친듯이 싸웠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찌푸리며 싸우기도 했다. 왜 싸웠는가 하니 양쪽의 입장이 달랐다. 남자는 여자가 자꾸 자기를 나쁜 사람 만든다며 지긋지긋해서 그 순간만큼은 피한다했다. 여자는 자꾸 자기를 피하니 자기를 불쾌해하냐며 따지려고, 사랑을 확인 받으려 더 달려들고 남자는 또 피하고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 지긋지긋한 뫼비우스의 띠만 같았던 관계는 종지부를 찍었다. 그 마지막은 참담했다. 남자는 이 여자에게 육두문자를 써가며 여자에 대한 환멸을 표했다. 이쯤 되면 여자도 관계를 끝낼 만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했듯 이 여자는 헤어지고도 남자를 잊지 못했다. 뭐만 하면 남자탓을 했다. 대학 졸업시험을 망쳐도 남자탓, 취업을 망해도 남자탓, 하루를 망쳐도 그 남자탓. 현재가 불행한 것도 남자 탓. 여자는 계속해서 남자 때문에 불행한 일상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날엔 미친듯이 그 남자를 그리워했다. 자신 때문에 남자를 잃은 거라며 자책했다. 그러다가 주변에서 그 관계에 대해 수군대고 자신을 피하는 거 같으면, 또 갑자기 자신과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그 남자의 어머니가 나를 나쁘게 말하고 다니는 거라고 근거 없는 망상을 했다.
이 여자는 왜 정말 사랑하는 남자를 자꾸 나쁜 사람을 만들려했던 것일까? 우리는 이 여자의 과거로 함께 뛰어들어야 한다. 이 여자는 어렸을 때 엄마에게 확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어쩔 때는 엄마의 한없는 사랑에 감동하다가도 자신을 귀찮아하고 자신의 매달림을 회피하는 엄마를 맞닥뜨려야 했던 것이다. 대상관계이론을 창시한 로널드 페어베언은 우리의 자아를 형성하는 것들이 필수적으로 타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페어베언은 내적대상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는데, 이는 자신이 관계를 맺는 타인에 대한 이미지, 생각, 환상 등을 말한다. 페어베언은 내적대상에 대해 초기 관계 (대부분 모와의 관계)에 외상이 있으면 계속해서 맺게 되는 관계에 대해 동일한 이미지를 갖게된다는 것이다. 페어베언은 정신병리에 대해 내적대상을 만들어낸 비합리적인 초기 외상적 관계의 관계 양상을 유지하려는 것이라 말했다.
이러한 이론에 비추어 기사의 시작 부분에 언급한 이 여자를 살펴보면, 이 여자가 왜 남자와의 관계를 완벽하게 끊어내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다. 계속해서 사랑받고, 계속해서 회피하는 타인에 집착하려는 관계 양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페어베언은 유아의 최초 욕구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구인데, 자신의 사랑이 거절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그것은 유아의 가장 심각한 외상으로 남는다고 한다. 이 외상을 치유하지 못하니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관계 양상이 비상식적이라는 초점보다는, 관계의 대상이 되는 서로의 과거를 살펴보며 이 관계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어 관계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대상관계이론에 비추어 이러한 악마 연인 콤플렉스는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우선 긍정적인 자기표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표상은 자기에 대한 심리적인 느낌이다. '나는 이래야만 해'라는 비합리적 신념은 자기이상을 유발하는데, 이는 자신이 정해놓은 자신의 틀에서 벗어났을 때 느끼는 괴리감과 괴로움이다. 긍정적인 자기표상을 갖기 위해서는, 나는 이럴 수 있는 사람이고 저럴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다차원적 자기표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긍정적인 대상표상을 갖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대상표상이란 타인, 상대에 대한 심리적인 느낌이다. 어떤 상대에게는 사랑만 느끼는 것 같다가도 언제라도 미움을 느낄 수 있고, 또 다른 상대는 미워하는 것만 같다가도 언제라도 사랑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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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정, 들어줄게요, 당신이 괜찮아질 때까지,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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