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교
[The Psychology Times=조은교 ]
오래 전부터 많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제로 콜라와 제로 사이다를 시작으로, 올해 들어 이름 앞에 ‘제로’를 붙인 식품들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온갖 탄산음료와 액상과당 위주 음료는 물론이고, 알코올 음료, 유제품, 제과류와 면류까지 ‘제로’ 열풍에 탑승했다.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제로슈머 (Zero + Consumer)들의 경향이 세상이 돌아가는 데 있어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이토록 제로 제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 제품과 거의 동일한 맛과 식감을 갖추면서도 칼로리와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은 최소화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갖고 있는 메리트가 크다. 특히 코로나19의 발생 및 장기화로 인해 건강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거듭 대두된 상황에서, 예전처럼 쾌락을 최대한 참고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하는 건강 관리보다는 지속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건강 관리가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들로부터 제로 제품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비록 대체 당을 과다하게 섭취할 시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으나, 적당한 선에서 제로 제품을 즐기는 것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소비 및 일상생활 가치관에 부합하고, 궁극적으로는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에 그 인기는 오래 유지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식품을 제외하고도 앞에 ‘제로’를 붙일 만한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필자가 생각해 본 것은 바로 ‘제로 미디어’ 이다. 흔히 사람들 사이에서 ‘미디어 금식’, ‘미디어 디톡스’로 불리는 것으로, 쉽게 풀어 말하자면 미디어 사용 및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전자기기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현대인들은 남녀노소 구분할 것 없이 잠에서 깨어난 직후부터 잠에 들기 전까지 인터넷이라는 파도를 타고 미디어라는 바다를 항해한다.
하지만 필자는 종종 서핑을 그만두고 육지로 돌아오곤 한다. 반 년에 한두 달 정도는 서핑 시즌에 대해 휴식기를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제로 미디어를 중학생 때부터 주기적으로 실천해왔는데,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저 시험 준비를 할 때 여러 유혹에 휩싸이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내렸던 극단적 조치였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의 제로 미디어는 그 목적이 많이 바뀌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으로 인해 내 행동과 사고방식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라고 할 수 있겠다.
미디어는 여러 가지 자극적인 컨텐츠들과 익명성을 활용한 가지각색 반응, 수많은 사람들의 자기 노출과 그것을 본 다른 사람들의 보상이 그대로 녹아있는 공간이다. 유튜브와 같은 영상 서비스는 내가 관심 있는 키워드에 대해서 검색을 해서 그것에 대한 것들만 선택해서 볼 수 있는 반면,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등의 SNS는 내가 팔로우하지 않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들, 내가 관심 없는 것들 등에 대해서도 의도치 않게 마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빠져들기 쉽고 벗어나기 어렵다. 이 때 제로미디어를 실천하게 되면, 비록 세상과의 피상적인 연결 욕구는 충족되기 어려울 수 있어도 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력과 주변 사람들과의 심층적인 관계는 쉽게 쌓아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제로미디어도 일종의 ‘제로’이기에, 제로슈가를 비롯한 제로 제품처럼 대체 당과 같은 존재가 들어있어 적절히 활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음의 평정과 의지력을 유지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 같은 경우 유튜브를 제외한 나머지 SNS를 최소화하는 것을 제로미디어로 여기고 실천해오고 있는데, 사실 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마주하다보니 다른 SNS들을 사용할 때와 비교했을 때 하루 인터넷 사용 시간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할 필요 없이, 나에게 필요 없고 독이 된다고 느꼈던 컨텐츠들보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주제의 컨텐츠들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필자에게 주기적인 제로 미디어는 세상의 무수한 자극에 대한 스스로의 가치관을 더 확고하게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최고의 시간이 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비활성화 설정을 하다 보면 비활성화의 이유를 묻는 페이지가 나오는데, 다양한 옵션 중에 ‘잠시 쉬고 싶어서’라는 옵션이 가장 첫 번째에 위치해있다. 기후 예측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목적지 없는 오랜 항해는 때론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니 가끔은 미디어라는 바다에서 나와, 파도에 대한 의지 없이 오로지 내 발로 육지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 헬시 플레저이자 제로슈머로서, 정신 건강을 지속적으로 단단히 만드는 데 유리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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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곽금주. (2012). 심리학적 관점에서의 소셜 미디어. 한국언론학회 심포지움 및 세미나, 83-88.
나은영. (2012). 심리학적 관점에서의 소셜 미디어. 한국언론학회 심포지움 및 세미나,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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