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연
▲ 사진 출처: pixabay
카카오톡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메뉴는 다름 아닌 ‘생일인 친구’. 오늘도 어김없이 친구의 생일을 확인해 보라는 한 마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생일인 친구는 하필 그렇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 프로필 옆에 앙증맞게 떠 있는 ‘선물하기’ 네 글자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오늘 얘 생일이네. 작년 생일에 기프티콘 받았던 것 같은데, 나도 줘야겠지?’ 여러 가지 고민에 괜히 여태까지 주고받은 선물 내역을 살펴본다. 그렇게 이것저것 재고 따지다보면 문득 드는 생각.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카카오톡 앱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만한 상황이다. 특히 애매한 사이지만 선물을 받았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황일수록 곤란하다. 누군가의 생일은 분명 축하해 줘야 할 날이 맞지만, SNS의 발달로 쉽게 메시지와 기프티콘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결코 작지 않은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상대방에게 뭔가를 받았으면 꼭 돌려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은 왜 매번 느껴지는 것일까?
집단주의 문화에서 두드러지는 상호성의 법칙(Law of reciprocality)
1971년, 코넬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 데니스 리건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대학생들 중 한 명에게 실험실 앞에 놓인 콜라를 공짜로 먹으라고 권유했다. 물론 대학생들은 그 권유가 실험의 본 목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게 실험이 끝난 뒤 리건은 대학생들에게 또 다른 권유로 기숙사 자선 모금을 위해 판매하고 있는 행운권을 구입하라고 했다. 그 결과, 공짜 콜라를 마신 학생은 마시지 않은 학생들보다 행운권을 두 배 이상 더 많이 구입했다. 이는 상호성의 법칙(Law of reciprocality)을 잘 보여준다. 상호성의 법칙이란 누군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면, 자신도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게 되는 법칙을 의미한다. 리건 교수가 본인에게 콜라를 공짜로 마시라는 호의를 베푼 결과 감사한 마음과 함께 부담감이 느껴졌고, 그것이 실제로 행운권 하나를 더 구입하는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가 흔하게 듣는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 ‘Give and Take’와 같은 말에도 이와 같은 보답의 원리가 숨어있다.
상호성의 법칙은 개인으로서의 ‘나’보다 집단으로서의 ‘우리’라는 정체성을 중요시 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특히나 두드러진다. 집단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상호성의 법칙이 쉽게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례로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경조사비를 주고받는 문화가 있다. 매년 주위에서 직장 동료나 친구의 결혼식 혹은 그들의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의 장례식에 가야 할지, 가서 얼마만큼의 금액을 내야 할지 고민하면서 골머리를 앓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당장 포털사이트에 ‘결혼식,’ ‘장례식’ 키워드를 입력하면 ‘축의금,’ ‘부조금’이 연관 검색어로 따라붙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경조사비를 주고받는 것은 워낙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하나의 의례로서, 상호성의 법칙을 증명하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받으면 언젠가는 꼭 갚는 것이 도리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선물이 아닌, 진심을 담은 말들
상호성의 법칙은 일반적으로 친구 사이처럼 동등한 위치에서의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하도록 하는 좋은 결과를 낳는다. 비단 결혼식, 장례식뿐만이 아니라 인생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생겼을 때 서로 축하해 주고, 슬픔을 공유하기도 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호의를 베푸는 것과 반대되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을 경우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전에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임에도 상대방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었으나, 후에 마주쳤을 때 상대방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은 상황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경우 괜히 호의를 베푼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는 마음에 의기소침해져 앞으로는 똑같이 인사를 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될 수 있다. 상대방은 단지 그 순간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일 뿐인데 말이다. 이렇게 상호성의 법칙은 때로 사람들 사이에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어 자칫하면 관계를 멀어지게 하기도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카카오톡에서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기프티콘 선물을 보낼지 고민하는 것 또한 이해관계를 염두에 둔 상황임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정적 여유가 되지 않아서, 혹은 이전에 선물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에이, 그냥 지나쳐도 되겠지’하며 축하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프티콘을 주지 못할 바엔 아예 축하조차 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서로를 생각해 마음을 주고받는 정(情)에서 출발한 축하 의례는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턴가 선물만을 주고받는 관습으로 자리 잡아 버린 듯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선물이 아닌, 진심을 담은 말들이다. 부담스러운 마음에 이것저것 조건을 따지며 고민하기보다, 따뜻한 안부 인사와 함께 가벼운 축하의 메시지 한 마디라도 보내보는 것이 어떨까? 따뜻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하는, 또 하나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 테니 말이다.
<참고문헌>
-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심리편 '상호성의 법칙'].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97258&cid=58345&categoryId=58345
- 로버트 치알디. (2023). 설득의 심리학 1.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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