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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 속의 지우개 - 머리를 지울 수 있는 지우개에도 종류가 있다 - 문구점에서 볼 수 있는 지우개가 여러 개인 것처럼.
  • 기사등록 2023-07-02 22: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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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조은교 ]



몇 년 전 유튜브에서 자고 일어나면 기억을 잊는 사람의 기록을 본 적이 있다. 겉으로 보기엔 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그 뒤에는 항상 그녀의 휴대폰 메모앱과 방 속 셀 수 없는 포스트잇이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휴대폰과 메모 덤불을 한 번씩 훑는 것은 그녀의 아침 루틴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 메모들 없이는 그녀의 삶 자체가 불가능해보였다. 새삼 우리의 삶에 있어서 기억은 없어서는 안 될 소프트웨어라는 것을 깨달았고, 기억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의 삶은 어떨지에 대해 상상해봤던 하루였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라는 말,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2004년에 개봉한 국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데, 영화에서는 주인공에게 갑자기 알츠하이머 증후군이 찾아오면서 발생한 사랑의 어려움을 풀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처럼 기억 상실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은근히 자주 언급되는 건강 관련 소재이다. 사고를 당하거나 심각한 일을 겪었을 때, 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등장인물들은 그 후유증으로 종종 기억 상실을 호소하곤 한다. 


기억 상실이란 말 그대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건망증과는 살짝 다른 개념이다. 건망증은 그저 가끔 ‘어디에 핸드폰을 두었지?’, ‘내가 지금 무엇을 검색하려고 했지?’ 등의 사소한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 증상을 말한다. 우리의 머리를 거대한 포털사이트로 생각해보면, 건망증은 잠시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서 검색 속도가 느려진 상황이라고 비유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기억 상실은 좀 더 심각한 수준에서 진행되는 개념으로, 말 그대로 머리 속에서 포맷을 진행한 것처럼 기억의 한 부분이 지워지는 것을 말한다. 머리라는 포털 사이트의 일부분의 코딩이 파괴되어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검색을 하려고 포털 사이트 창을 켰는데 막상 사이트에서 검색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면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실제로 기억의 한 부분이 사라졌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기억 상실을 경험한 환자들은 일시적으로 당황하거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반응이나 분위기 또는 본인의 이상함을 감지했을 경우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거짓된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한다. 


이처럼 머리 속을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포맷시켜버리는 기억 상실증은 남녀노소 상관없이 경험할 가능성이 있으며, 포맷을 강행하는 지우개의 종류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우선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를 관련 작품과 함께 설명해보고자 한다. 





선행성 기억 상실이란, 기억 상실을 유발하는 사건 이후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해당 사건 이전의 기억은 대체로 남아있는 편이지만, 사건의 충격 등으로 인해 사건 이후의 일을 응고화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강화되는 것이 없게 된다. 




선행성 기억 상실을 다룬 작품으로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라는 영화가 있다. 마오리라는 주인공은 아이를 구하려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고, 이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하루의 모든 기억을 잃는 증상을 갖게 되었다. 마오리도 맨 처음에 언급한 유튜브 사례처럼 매일매일이라는 조각을 머릿속에 다시금 넣기 위해 벽면 가득 메모를 적어둔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메멘토’라는 영화가 있다. 여기서 레나드라는 주인공은 아내가 심각한 사건으로 숨을 거둔 뒤 그 충격으로 10분 이상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이후 아내에게 해를 입힌 존재에 접근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모든 사항을 온몸을 덮는 문신, 폴라로이드 사진, 사진 뒤 메모 등으로 새겨둔다.


 



한편 역행성 기억 상실이란, 여태까지 언급한 선행성 기억 상실과는 반대로 특정 시점 이전의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증상을 이야기한다. 기억 상실을 유발하는 사건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이전의 기억이 손상된다는 점에서 ‘역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드라마 및 영화 매체에서 다루는 기억 상실은 주로 이런 후행성 기억 상실을 다루곤 하지만, 실제로는 후행성보다 선행성 기억 상실이 많이 발생한다.




역행성 기억 상실을 다룬 작품으로는 ‘이터널 선샤인’이 있다. 비록 이 영화에서 기억 상실을 겪는 인물들은 불의의 사건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과거의 기억을 지웠다는 점에서 다소 허구적인 면이 있다. 그럼에도 한 번의 결정 이후 이전의 기억을 지워나가는 장면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역행성 기억 상실을 다룬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어쩌면 눈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머릿속에 담겨있는 기억은 생각보다 연약하고 변질될 가능성이 있으며, 한 번 손상을 입으면 원래의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억에 의존해서 살아간다고 해도 무방한 우리의 삶 - 하지만 기억 상실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기에 더욱이 기억의 소중함을 ‘기억하는 것’ 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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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기억을 지우고 싶다면 꼭 봐야 할 영화 ‘이터널 선샤인’ vs ’메멘토’ [웹사이트].(2021). URL:https://shindonga.donga.com/3/all/13/2334244/1

기억 상실 [웹사이트]. (2021). URL: https://www.msdmanuals.com/ko-kr/%ED%99%88/%EB%87%8C,-%EC%B2%99%EC%88%98,-%EC%8B%A0%EA%B2%BD-%EC%9E%A5%EC%95%A0/%EB%87%8C-%EC%B2%99%EC%88%98-%EB%B0%8F-%EC%8B%A0%EA%B2%BD-%EC%9E%A5%EC%95%A0-%EC%A6%9D%EC%83%81/%EA%B8%B0%EC%96%B5-%EC%83%81%EC%8B%A4

기억 상실증 [웹사이트]. URL: https://www.amc.seoul.kr/asan/mobile/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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