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
[The Psychology Times=황선미 ]
부부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결혼생활 행복도를 예측할 수 있을까?
커플 상담계의 권위자인 가트만 박사(Dr. John Gottman & Julie Gottman)는 그렇다고 한다. 1986년 워싱턴 대학에서 시작한 가트만의 독특한 실험실 은 가상의 공간을 마련해놓고 커플들에게 그들이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고 요청한다. 참여자들은 당황하겠지만 사실 숙련된 전문가에게는 현장 속에서 발견되는 자료만큼 정확한 평가 도구는 없다. 동일한 원리로 상담자는 상담실을 방문한 부부들의 대화 속에서 그들의 고유성을 관찰한다.
아내: 당신도 그때 그렇게 이야기하자고 했으면서
정작 (시댁에 가서는)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나 혼자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남편: .... 이미 자기 마음대로 정해놓고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1. 질문을 하면 답을 한다.
얼핏 보면 일상의 대화처럼 여겨지는 부부의 대화에는 질문하는 사람은 있지만 답하는 사람은 없다. 대화에서 질문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1) 궁금한 내용을 물어 답을 얻는다.
2) 질문을 통해 상대가 성장할 수 있도록 촉진한다.
3) 불만을 우회적으로 전달하고 지적한다.
4) 응답을 피하는 목적으로 재질문을 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역할이 있겠지만 대화에서 질문의 기능은 흔히 이 4가지 범주에 속한다. 칼럼 초반에 가상으로 소개한 부부의 대화를 살펴보면 아내의 질문은 3번 <불만>에 해당하고, 남편의 질문은 4번 <회피>에 해당한다. 질문자는 있는데 답을 하는 사람이 없으니 싸움이 끊이지 않고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상태로 대화가 1시간 동안 지속된다고 가정해보자. 급하게 화장을 고치려고 화장품 뚜껑을 열었는데 뿌연 거울 때문에 수정 화장을 포기한 적이 있는 분?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거울을 깨끗하게 닦는 작업이다. 부부싸움의 해결을 위한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묻는 사람은 있으나 답하는 사람이 없는 대화는 답답하고 대책이 없으니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은 둘 중에 누구 하나라도 함께 하는 대화를 배우고 응답하는 것이다.
2. 나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회피를 질문으로 돌리게 되었는지 밑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짚어보고, 사고방식을 살펴보고, 함께 들어가 보는 일은 상담자가 매일 씨름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왜 질문 속에 자기 마음을 숨기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질문은 ‘너’로 시작하고, 평서문은 ‘나’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너의 이야기는 쉽고, 나의 이야기는 어렵다. 당신 어머니 편이 아니라 내 편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 주지 않으면 내가 많이 외롭고 서글프다, 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남편에게 의존적인 여자인지를 인정해야 하는데 이건 여간 아픈 직면이 아니니까. 내가 당신이 그렇게 감정적으로 다가올 때는 도망가고 싶다, 나는 애초에 누군가와 친밀하게 마음을 나누고 해결하는 게 어렵다, 나는 감정에 서툰 남자다, 라는 걸 말하는 건 여간 나약해 보이는 게 아니니까.
마음을 숨기는 이유는 간단한데 그걸 내보이는 방식은 전혀 간단하지 않다. 내면의 약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전하는 것이 해결의 한 방법이라면 관계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성장시켜야 하니, 우리에겐 충분한 경험이 필요하다.
3. 관계의 얽힘 안에 자기를 놓아둔다.
시중에는 행복한 결혼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이론과 치료법이 이미 많이 주어져 있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이마고 치료(imago therapy)부터 시작해서 이 글의 서론에 소개했던 존 가트만의 모델, 개인 상담을 부부관계에 확장한 이론들, 가족치료의 기법들. 모두가 자기의 방식을 믿고 따르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면 결국 대부분의 접근은,
1) 나와 너의 개별성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2) 나를 너에게 전달할 수 있는 대화를 연습하고
3) 우리가 하나의 가치를 형성하고 헌신하도록 돕는다.
경험적으로 가장 어렵고도 오래 걸리는 작업은 중간단계인 <나를 너에게 전달할 수 있는 대화>를 배우고 연습하는 일이다. 이걸 하기 위해서는 괴롭더라도 서로가 얽힘을 피하지 않고 관계 안에 자신을 놓아두어야 한다. 억울하더라도 무응답이나 재질문보다는 응답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그걸 같이 하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이고, 사실 같은 경험을 놓고 우리는 괴로움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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