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내 삶의 창조자이자 파괴자, 당신은 나의 ‘엄마’입니다 - 2부 - 엄마와의 관계가 힘든 모든 딸들에게 : ‘나르시시즘’으로 풀어낸 비정상적·불건강한 모녀 관계 - 2 - 3.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통제법 - 4. 당신 잘못이 아니다
  • 기사등록 2023-07-10 10:40:09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김민지 ]


unsplash

 

이전 기사에서 ‘나르시시즘’과 ‘나르시시스트’, 그리고 그들의 주요한 특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에 다루게 될 글에서는 나르시시스트 엄마들이 딸의 통제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과, 그 행위에 짓눌려 살아온 딸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말과 해결책에 대해 적어 보았으니, 꼭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사랑한다면서, 왜 나를 아프게 해요?  :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선택하는 ‘무기’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둔 딸은, 내면 깊이 상처받는다. 이들은 엄마와 함께 하는 한, 정상적인 정서 발달을 할 수가 없다. 늘 극도로 경계하는 상태에 머무르며, 엄마의 학대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려고 노력한다. 

 

나르시시스트의 딸은 자신의 결정을 신뢰할 수가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와의 종속적 관계에 머무르며, 자기 정체성 또한 발달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크나큰 절망감과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이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도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타인들에게 스스로의 통제권을 쥐여 주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이들은 자기감정을 분별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대인 관계 또한 원활하게 맺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unsplash


  ‣  친구 같은 엄마라는 함정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딸에 관해서라면 지켜야 할 규칙이 없다고 생각한다. 비밀도, 너무 개인적인 질문도, 사생활도 당연히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딸은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숨기는 방법을 터득하고, 엄마가 어떤 요구를 했을 때 모두 받아들인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렇지 않았을 때 엄마의 분노를 감당해야 하는 것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딸에게 행사하려는 통제의 수준은 파괴적이다. 이들은 자신의 통제를 가로막는 장애물의 제거를 위해서라면 필요한 만큼 ‘자기애적 공급원’에게 접근할 수 있다. 즉 엄마는 자신이 필요로 할 때, 언제라도 딸을 이용할 수 있다. 바로 ‘지속적인 관심과 인정’을 통해서 말이다. 

 

엄마와 딸 사이에 ‘경계’가 없는 상태라면, 즉 서로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면, 각자의 역할이 몹시 모호해진다. 딸은 엄마의 친구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엄마가 보살핌을 받는 존재로 느껴질 수 있게끔 보호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보통 이런 경우, 딸은 정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등에 어린 시절부터 노출될 수 있다. 이것은 아이로서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당연히 아이에게 주어졌어야 할 보살핌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겪는 심리적인 문제의 근원은 ‘수치심’이다. 이것은 모두가 겪는 감정이자, 사회적 규범이 지켜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므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반드시 느껴야 할 감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수치심이 일상에 있어서 기본 감정으로 굳어진다면, 이것은 바람직한 일상과는 거리가 매우 멀어진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아이에게 전략적으로 ‘수치심’을 안겨 줌으로써, 아이가 이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엄마를 우선시하고, 그들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존재만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것으로서, 결국 엄마는 딸에게 ‘완벽한 통제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렇게 자라난 딸에게 수치심이란 감정은 내면화되기 마련이다. 그들이 가진 수치심은 만성적 불안, 우울, 낮은 자존감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쉽게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만약 ‘반항심’을 느끼더라도, 보통은 이것을 내부로 돌려 자해나 약물 남용 등의 부적절한 행동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그들의 딸은 나르시시스트인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  통제, 나르시시스트의 뿌리

 

나르시시스트의 모든 행동은 통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통제력이 있다는 것은, 그들의 내면의 취약함이 드러날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제란 나르시시스트가 해결책을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자신의 공급원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통제력을 통해 자기애 손상을 피하고자 하며, 이것은 나르시시스트가 보이는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된다. 

 

 

  ‣  따뜻했다가 냉담해지는 엄마

 

엄마와 아이의 간헐적인 정서적 연결은, 지속적인 정서적 단절보다 더욱 나쁘다. 간헐적인 정서적 연결을 통해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필요한 관심을 얻으려면 계속해서 엄마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딸에게 주입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결국 이러한 행위는 딸에게 절망감을 안겨 주기 마련이다. 


엄마와 단절이 계속된다면 아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가 없고, 전반적으로 체념한 상태가 된다. 지속적인 단절은 아이로 하여금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동기를 찾기 못하게 한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및 수용 받기 위해 노력하는 상태에 있도록 만들어 버린다.  

 



 “It’s Not Your Fault”

 

unsplash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은, 아이가 가진 고유한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엄마가 아이에게 정신적인 학대를 가할 때, 실은 스스로가 가장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나르시시즘의 가면 뒤에 자신의 고통을 숨기고서, 그것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아이에게로 떠넘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이 아이로 하여금 엄마를 취약한 사람으로 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엄마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스스로로부터 독립하여, 편안한 상태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교묘한 악영향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본인의 직관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을 수도 있다. 

엄마와 대화를 하다가 소통이 되지 않고 속이 답답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한 번 주의를 기울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해보도록 하자.

 

 

   엄마로부터 받은 학대방임은 절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 여러분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다시 배울 수 있다.

   • 나르시시스트에게서 받은 학대를 치유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나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 여러분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 항상 여러분의 직관을 믿어라항상.

 





지난기사

당신은 완벽할 수 없다

내 인생은 불행해!

통장은 텅장! 그래도 명품, 오마카세… 나는야 MZ 세대!

진짜야, 스트레스받아서 살찐 거라니까!

‘안읽씹’ : 혹시 당신도 ‘톡포비아’ ?!

만남과 연애, 이제는 감정적으로 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하세요(?)

‘암기를 잘하고 싶어요’ : 집중력 향상 특별 솔루션 A to Z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는 게 싫어

‘친밀한 관계, NO!’ 저는 ‘회피형’입니다

내 삶의 창조자이자 파괴자, 당신은 나의 ‘엄마’입니다 - 1부







참고문헌

브렌다 스티븐스. (2023). 나르시시스트 관계 수업. 유노라이프.

관련기사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6770
  • 기사등록 2023-07-10 10:40:09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