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경
[The Psychology Times=차민경 ]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해야 할 일들과 그에 따라 주어지는 책임감들이 점점 늘어나는 듯하다. 어렸을 적에는 책임감이라고 한다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기, 알림장에 적힌 준비물들을 빠트리지 않고 잘 챙겨가기, 학교에서 나눠준 가정통신문을 부모님께 잘 전달하기 등등, 다들 책임의 무게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십 대를 벗어나고,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준비하고, 가정을 꾸리는 등 나이가 들고 그에 따라 주어지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많아짐에 따라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더욱더 많은 과제를 짊어지며 살아가게 된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결정한 선택에 따라 그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때로는 책임을 지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개인으로써의 한 인격체이기도 하지만, 객체는 한 명인 것에 비해 다소 여러 개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개개인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종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그 목적을 잃고 과하게 무거워지기도 한다.
한때 한국에서 유명했었던 단어, ‘K-장녀 콤플렉스’를 들어보았는가? 이는 대한민국의 장녀로서 자라면서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동시에 다른 형제들도 돌보는 완벽하고 착한 아이로 남아있어야 했던 우리나라 맏이들의 고충을 담은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아이처럼 굴어도 용납이 되었어야 하는 어린 시절, 지나친 사회적 책임이 어린아이에게 주어지게 되면서 맏이들은 일찍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책임의 무게와 그에 따른 압박감을 건강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본인이 어떤 부분이 버겁다고 느끼고 어떤 감정들을 느끼는지, 또 그 감정들을 올바르게 표현하고 해소해야지만 마음의 응어리가 해소되지만, 이러한 경우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과도한 책임과 그에 따른 압박감 등으로 마음의 여유 없이 삶을 살아가게 되는 슬픈 현실이 벌어진다.
현대인들의 책임감과 마음의 여유를 다룬 또 다른 예시는 장기간 베스트셀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책, ‘미움받을 용기'이다. 이 책은 아들러의 심리학을 젊은 청년과 노인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풀어내었는데, 신기하게도 유독 일본과 한국에서 엄청나게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는 집단주의 중심에 문화권에서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피력하지 못하고 무조건 ‘yes’만 외쳐야 했던 현대인들에게 큰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개인주의인 서양권 문화와 다르게 집단주의 문화가 주가 되는 아시아권 문화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이익보다 집단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 우선시된다. 그래서 개인의 자유를 비교적 누리기 힘든 상황에 더불어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비교하고 비교가 되는 집단주의의 특성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에만 전념하고 개개인이 어떤 상태인지, 어떠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를 되돌아보고 자신의 마음을 돌보아주기가 더더욱 힘든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가며, 우리의 여생은 그 선택들에 대한 결과에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책임이란 것은 어쩌면 매 순간 내가 내리는 선택이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는 데에 기여를 하게 되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꼭 져야 할 책임과 나의 몫이 아닌 책임을 구분하는 것은 개인의 마음을 살피는 데에도, 삶을 살아가며 꼭 져야 하는 책임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나의 몫이 아닌 책임까지 져야 한다면, 지금은 위태롭게 어찌어찌 버티고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그 책임감에 짓눌려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 글은 책임감을 지지 않아도 된다든지, 혹은 책임감은 중요하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주어진 몫과 과제에는 온 힘을 다해 책임을 지되, 책임을 지는 일은 쉽지 않고, 때때로는 과하게 버겁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책임을 지는 것이 절대 쉽지 않기에 가끔 지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으로 시작된 글이다. 이미 필요 이상의 책임을 지는 것에 지친 현대인들에겐 공감과 위로를, 필요 이상의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책임에 대한 경각심과 그 용기에 대한 박수를, 책임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사고의 그릇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한 축하와 격려를 보내며 모두가 건강한 책임을 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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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두야! 할 일은 너무 많고 인생은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 무엇도 늦은 것도 없고, 그 무엇도 낭비된 것은 없음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수 있을까?
속여서 미안합니다. 제 명성과 능력은 다 거짓말입니다:가면증후군
참고문헌
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
책임감에 갇혀버린 K-장녀들, 장녀 콤플렉스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 tvN 비밀의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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