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
[The Psychology Times=황선미 ]
투쟁-도피 반응, 즉 위험에 처한 생명체는 싸우거나(fight) 도망치는(flight) 반응 중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이론은 미국의 생물학자인 Walter Bradford Cannon(1871-1945)에 의해 설명되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심리학(예: 가족상담, 부부치료 등)은 이론의 초기 발달 시기에 생물학의 이해를 자주 빌렸는데, 지금 언급하고 있는 <투쟁-도피 반응>도 자주 차용되었던 개념이다.
투쟁-도피 반응을 인간관계에 적용해보면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인간에게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위험한 자극이다. 안전 기지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고, 과거의 상처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음은 상처 받은 과거를 마치 오늘 일어났던 일처럼 기억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이유로 어린 시절 방치되었던 외로움은 싸울 때마다 거리를 두며 회피하는 연인의 태도에서 다시 떠오르고, 전혀 다른 두 사건은 무의식적으로 연결되어 위험 경보를 내린다. 그 결과 상황이 위험하다고 느낀 쫓아가는 사람은 더욱 열심히 쫓아가고, 도망가는 사람은 더욱 열심히 도망간다.
1. 살기 위해 쫓아가는 사람
쫓아가는 사람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생존에 대한 욕구이다. 늘 그렇지는 않겠지만 부부 사이에서는 아내가 쫓아가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쫓아간다는 상징적인 표현은 주로 ‘대화로 풀자, 통화 또는 문자를 늘리자, 표현을 늘리자’ 등의 요구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사이가 좋을 때 쫓아가는 행동은 친절하고 사교적인 매력을 발휘하지만 불안한 상태에서 쫓아가는 사람은 상대를 집요하게 통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쫓아가는 마음은 뭘까요?”
“답답하고 억울해요.”
“쫓아갈수록 상대는 더 도망갔을 거고, 그럴수록 더 답답하고 억울했겠네요. 그걸 알면서도 쫓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정말 왜 그렇게 쫓아가는 걸까요?”
만약 당신이 연인과의 관계에서 쫓아가는 사람이라면 잠시 멈추고 이 질문에 답을 찾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불안해서 계속 다가가는 것일까?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는 당신의 대답 안에 있다.
2. 살기 위해 도망가는 사람
도망간다는 상징적인 표현은 입을 닫고, 갈등의 정점에서 집을 나가고, 신뢰의 문을 걸어 잠그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도망가는 마음은 뭘까요?”
“힘들고 피곤하니까요.”
“도망갈수록 상대는 더 쫓아왔을 거고, 그럴수록 더 피곤하다고 느꼈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가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정말 왜 그렇게 도망가시는 거예요?”
당신이 만약 연인과의 관계에서 도망가는 중이라면 이 질문에 답을 해 보기를 바란다. 무엇이 두려워 도망가는 것인가? 상대의 요구가 커질수록 내가 사라질 것 같은가? 지금껏 눌러왔던 분노가 한 번에 터져버릴 것만 같은가? 마음의 중심은 각자 다르겠지만 두려움에 도망가는 사람은 당신 혼자만은 아니다. 그러니 오늘은 잠시 멈추고 내면을 한번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당신은 진정 무엇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인가?
3. 둘은 서로 짝이 되어 만난다.
쫓아가는 사람 - 도망가는 사람
문제를 확대하는 사람 - 문제를 축소하는 사람
생존을 위해 서로 다른 방향을 선택한 사람들은 짝이 되어 만나는 경향이 있다. 관계의 아이러니고 이 부분이 생물학적인 반응이 인간관계를 전부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이다. 인간이 각자 한 개체로 존재할 때 우리는 투쟁하거나 도피하거나의 양자택일로 적응력을 높여왔겠지만,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난 후에는 더 잘 살기 위해 나에게는 없는 반응을 상대에게 빌려온다.
관계란 추격하거나 도망가는 양 극단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의 힘을 빌려 반응이 가능한 중간 지점을 찾는 과정이고, 관계를 다루는 상담은 이 부분을 해결해주어야 좋은 상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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