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The Psychology Times=정유라 ]
막막한 미래, 내가 바꿀 수 있을까?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지나가기 전과 후의 지금, 짧은 외출에도 높은 강도의 운동을 한 것만큼 흐르는 땀을 느낄 수 있다. '여름이었다....' 다섯 글자로 미화한 지난 여름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혹시 올해가 가장 더운 여름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혹시나'하는 생각은 '역시나'로 돌아온다. 우리는 역대급 더운 여름을 살고 있다. 유엔 본부에서는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가 끝나고 '끓는 지구(Global Boiling)'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세계 평균 기온은 해마다 최고를 경신하며, 올해는 역사상 최악의 폭염이라고 한다.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폭염에 홍수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재난 수준의 기후 변화 소식은 최악의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으로 이어졌다. 평소 귀찮음에 구석에 박아 두었던 물병을 꺼내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러나 길거리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나 꽉 막힌 도로를 볼 때면 나만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아 회의감이 든다. 거대한 문을 마주하고 있지만, 내가 가진 열쇠는 아주 작다는 막막한 느낌과도 같다. 커다란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지구의 몸살을 알아차린 사람들이라면 불안함과 무서움을 느낀 적 있을 것이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기후 우울증'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낀 적 있는가? 필자는 산 정상에 올라가 빽빽한 빌딩 숲을 바라볼 때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나는 한낱 작은 인간에 불과하다고 느낀 경험이 떠오른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은 오히려 자연의 위대함보다 예측불가능함에 놀란다. 내가 살아갈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행동들을, 그로 인한 변화를 떠올릴 때마다 오히려 서서히 죽어가는 느낌이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다. 기후 우울증은 이처럼 기후위기 상황을 보며 느끼는 불안, 스트레스, 분노, 무력감 등을 느끼는 것이다. 그동안 기후위기가 낳는 물리적 피해에 집중됐다면, 최근 학계에서는 기후우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기후위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늘고 있다는 통계나 설문조사도 다수 있다. 특히 환경 감수성이 높은 소위 엠제트(MZ)세대에 기후위기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기후우울증이 미래 세대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이 되었다는 뜻이다. 기후위기가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의 문제이긴 하지만, 미래 세대에게는 앞으로 마주해야 할 재난이 많기 때문이라고.
베스 대학에서 연구한 기후 우울이 심리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 그래프
기후위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과제이다. 따라서 기후우울증도 혼자서 해결 가능한 우울감이 아닌, 함께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혼자서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다수가 힘을 모았을 때 나오는 작은 변화들은 큰 변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믿음으로 기후우울증을, 기후위기를 벗어나는 사람들이 지금 사회 곳곳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을 어떨까. 우울감을 원동력으로 '우리'의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찾아가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1] Caroline Hickman. (2021). Climate anxiety in children and young people and their beliefs about government responses to climate change: a global survey. The LANCET Planetary Health, volume 5, issue 12.
[2] 한국건강관리협회, "일상 체크", 건강 소식 2022.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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