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연
[The Psychology Times=이해연 ]
여름이 한창이다. 해는 화창하다 못해 뜨겁고 비라도 오는 날은 꿉꿉하기 그지없다. 땀으로 찐득해진 몸을 이끈 채 뜨거운 하루를 견뎌야 한다. 뜨겁고 꿉꿉하고 찐득한데, 많은 사람이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계절로 꼽는다. 여름이 그렇다. 녹음 짙은 여름이 저마다의 sns에 전시되는가 하면, ‘청춘’에 비유되기도 한다. 어떤 문장이건 끝에 ‘여름이었다’만 붙이면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문장이 완성된다는 ‘여름이었다’ 밈까지 등장할 정도다. 그러나 우리의 여름은 그다지 청량하지도, 싱그럽지도 않다. 사계 중 가장 미화가 심한 계절이야말로 여름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여름을 미화하는 것일까.
겨울철 벌거벗은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초록으로 왕성하고 생명력 있던 여름이 그리워진다. 지금인 겨울을 보며 지나간 여름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인간은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기억이란 한 존재의 정체성과 인격, 사회관계 및 지적 정신적 능력 전부를 의미한다. 기억을 상실한 인간은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 기사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이란 다른 동물들의 경우처럼 단순히 생존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의 의미와 가치를 규정하고 더 나아가 미래의 방향까지 정해 주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억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여름을 그리워하고 기대하는 일 또한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계절을 단순히 하나의 이미지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여름만의 온도와 특유의 바람 냄새, 선풍기가 팽팽 돌아가는 소리와 창 너머로 들리는 아이들의 청량한 웃음소리 같은 것들. 자두와 수박 따위로 감각하는 여름의 맛까지. 촉각과 후각, 청각과 미각을 동원해 심어진 섬세한 기억들이 결국 여름을 그리게 만드는 것이다.
기억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기억을 왜곡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람은 단지 몇 초 전에 발생한 일마저도 왜곡해 기억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단기 기억 착시 현상’으로 설명되는 이 현상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기존에 갖고 있던 지식을 기대하는 바에 따라 재구성해 기억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처럼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내적 편견이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실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연구팀은 말한다. 평소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사람과 대화를 한 후 상대의 평범했던 어조를 배제한 채로, ‘상대가 공격적이고 사나운 방식으로 대화에 응했다’라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첨언이다. 즉 우리는 우리가 기대하는 바 혹은 편견의 영향을 받아 얼마든지 기억을 왜곡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려는 심리 즉 기억 왜곡을 동반한 현실 도피 심리를 ‘므두셀라 증후군’이라는 명명 아래 설명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과거를 회상하며 좋은 기억만 떠올리고 좋은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는 것으로, 이는 아름다운 향수에 젖는 일종의 퇴행 심리라는 것이다.
여름을 뜨겁고 꿉꿉하게 남겨두지 않고 청량하고 산뜻하게 남겨두는 건, 우리의 기억 왜곡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름을 여름 자체로 기억하지 않는다. 어쩌면 무더운 여름을 견디고자 '아름다운 여름'을 만들어두고 그에 기대는 것이 아닐까. 여름의 실체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여름 노래, 여름 영화, 여름 저녁, 여름 과일…. 단어 앞에 ‘여름’이 붙으면 유독 싱그럽다. 이토록 싱그러운 여름을 가능하게 하는 건, 여름 속에 담긴 기억의 특유함 덕분일 것이다. 그러니 저마다의 여름이 기억을 발판 삼아 무탈하게 지나기를 바라본다.
참고자료
1. 부산일보[Website],(2018),『존재는 기억이다』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80508000311
2. 동아사이언스[Website],(2023),『"인간은 몇 초 전 일어난 일도 왜곡해 기억한다"』
http://m.dongascience.com/news.php?idx=59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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