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민
[The Psychology Times=채수민 ]
여기, 한 건물을 찍은 사진이 있다. 이 건물의 벽은 마치 사람 혹은 캐릭터의 얼굴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은 외벽 중간에 가로로 길게 튀어나온 두 줄의 벽돌은 눈썹으로, 두 개의 네모난 창은 눈으로, 외벽에 비스듬하게 꽂혀 있는 구조물은 코, 그 아래쪽에 드러난 벽돌 덩어리는 입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착각의 일종인 파레이돌리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는 그리스어로 ‘옆’ 또는 ‘너머’, ‘대신’이라는 뜻의 ‘para’와 ‘이미지’, ‘형태’라는 뜻의 ‘eidos’가 합쳐져 생긴 단어이다. 파레이돌리아는 임의의 자극이나 형태에 의한 착각으로, 쉽게 말하자면 모호한 자극을 익숙한 자극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예시는 달 표면에 보이는 토끼이다. 달 표면의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달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얼룩덜룩하게 보일 뿐이지만, 옛사람들은 달의 어두운 부분을 토끼가 방아 찧는 모습으로 보았다. 사람에 따라 방아 찧는 토끼가 아니라 멀리 뛸 준비를 하는 두꺼비, 물을 옮기고 있는 여자, 한쪽 집게발을 들고 있는 게로 보기도 했다. 파레이돌리아의 예시에는 달 토끼 외에도 얼굴처럼 보이는 건물, 사람의 눈처럼 보이는 나무껍질의 무늬, 음악을 거꾸로 재생했을 때 들리는 숨겨진 문장 등이 있다.
왜 파레이돌리아가 일어날까?
파레이돌리아가 발생하는 원인에는 여러 가설이 있다. 하버드 대학교수이자 신경과학자인 누친 하지카니(Nouchine Hadjikhani)박사는 뇌 발달의 측면에서 파레이돌리아를 설명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난 다음에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뇌가 성장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얼굴을 감지하는 기능이 발달한다고 한다. 파레이돌리아의 예시로 얼굴이 보이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인간은 얼굴을 인식하는 데 능숙하기 때문에 추상적인 형상을 얼굴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카고 대학의 신경과 교수인 조엘 보스(Joel Voss)는 다르게 말한다. 그는 모호한 형태의 이미지와 인간의 주관적인 기억이 결합하여, 명확하지 않은 이미지가 익숙하고 의미 있는 이미지로 보여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와 비슷하게, 파레이돌리아를 하향처리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심리학에서 하향처리란, 새로운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서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정보를 매번 분석하고 특징을 파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사전지식이나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정보를 받아들인다. 달의 어두운 부분을 보고 문화나 각자의 경험에 따라 토끼, 사람, 게 혹은 다른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파레이돌리아를 이용한 사람들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그린 베르툼누스
파레이돌리아는 미술과 건축 분야에서 의도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화가인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는 파레이돌리아를 자기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매우 독특한 초상화를 그렸는데, 나무와 과일, 꽃을 합쳐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다. 아르침볼도의 작품 중 베르툼누스(Vertumnus)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루돌프 2세의 초상화를 그린 것이지만, 그의 그림에는 식물만이 가득하다. 아르침볼도는 과일과 채소, 꽃들을 적절하게 배치해서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로르샤흐 잉크 반점 검사는 파레이돌리아를 이용한 것이다. 이 검사는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인 헤르만 로르샤흐(Hermann Rorschach)가 만든 검사이다. 종이 위에 잉크를 무작위로 떨어뜨린 후에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펴서 만들어진 그림을 이용한다.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그림을 내담자에게 보여준 후 그림이 어떻게 보이는지 듣고, 그 대답을 통해 심리를 파악하는 검사이기 때문에 파레이돌리아가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파레이돌리아는 일상생활에서도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주위의 평범한 사물이 다른 이미지로 보이는 것은 분명 익숙하면서도 색다를 것이다. 이 흥미로운 현상을 다들 경험해 보길 바란다.
참고문헌
Wang C, Yu L, Mo Y, Wood LC, Goon C. (2022). Pareidolia in a Built Environment as a Complex Phenomenological Ambiguous Stimuli.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Nouchine Hadjikhani, Jakob Åsberg Johnels. (2023). Overwhelmed by the man in the moon? Pareidolic objects provoke increased amygdala activation in autism. Cortex.
Joel L. Voss, Kara D. Federmeier, Ken A. Paller. (2012). The Potato Chip Really Does Look Like Elvis! Neural Hallmarks of Conceptual Processing Associated with Finding Novel Shapes Subjectively Meaningful. Cerebral Cort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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