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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황선미 ]


엄마의 자궁으로부터 독립해 세상으로 나가는 과업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인생의 숙제이다. 여기서 ‘엄마의 자궁’이란 상징적인 표현으로,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는 존재를 의미한다. 흔하게는 부모, 애인과 같은 사람이고 때로는 집, 방, 동네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게 무엇이든 자궁에는 머물 수 있는 유효기간이 있는데,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지나서까지 자궁에 머무르다 보면 인격과 정신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곤 한다. “무서워, 못 나가” 하며 머무르려는 우리 자신보다 자연 세계는, 인간을 더 강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환기 대상(transitional object)이란 정신분석가인 위니컷(Donald W. Winnicott)의 잘 알려진 개념으로 한 사람이 안전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기까지 중간에 머물게 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물건, 사람, 공간, 취미, 습관, 사상 등이 전환기 대상에 모두 포함되므로 애매한 용어인 ‘것’으로 표현하기 딱이다. 이러한 거시기들이 우리가 안심하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중간 역할을 해 준다고 해서 중간 대상, 또는 전환기 대상이라고 불린다. 찰리 채플린의 친구 라이너스가 누나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담요를 들고 다니듯 말이다.



사진출처: amazon (검색어: Lose the blanket, Linus) 



1. 전환기 대상은 위로와 용기를 준다. 


 

2023년 8월 12-15일, 인천에서 열린 세계큐브협회 월드챔피언십(WCA World Championship 2023)에서 만난 선수들과 참관자들의 손에는 큐브가 들려있었다. 그들은 큐브를 돌리면서 먹고, 걷고, 대화했다. 선수들은 손에서 개인용 큐브를 놓지 않았는데 심지어 출전석에 앉아 가려진 큐브를 열기 직전까지 개인용 큐브를 돌리며 긴장을 풀었다. 그 순간 개인용 큐브는 선수들의 ‘전환기 대상’이었다. 선수들은 매일같이 집에서 돌리던 손때 뭍은 큐브를 돌리며 실전에서 발휘할 위로와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장면을 직접 체험하니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큐브를 통해 그들의 인생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선수들 뿐 아니라 대회에 모인 모든 큐버(cuber)들은 지극히 사적인 자신의 세계를 큐브를 통해 타인에게 열어주었고, 대회장에 모인 사람의 수만큼 많은 ‘나의 세계’가 확장되어 ‘우리의 세계’가 되었다. 



 


2. 전환기 대상은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다. 


 

맥스 파크(Max Park) 선수는 2023년 인천에서도 큐브의 꽃인 3X3X3 스피드 부분에서 우승을 했다. 그는 세계 신기록 보유자(3.13초, 3X3X3)일 뿐 아니라 한 손 돌리기, 4X4X4 등 다양한 분야의 챔피언이다. 그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건 넷플릭스(Netflix) 다큐멘터리 <스피드큐브의 천재들>을 통해서인데, 또 다른 챔피언인 펠릭스 선수(Feliks Gemdex)와의 우정 그리고 그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이하 자폐증)가 있다는 사실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자폐증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제한된 정서적 접촉과 의사소통의 능력으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기 쉽다. 그러나 세상에는 자폐증을 지닌 채로 자기 분야에서 성실한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이 있는데 미국의 동물학자인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 교수와 맥스 파크 선수가 대중에게 알려진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들의 스토리 일부를 영상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랜딘 박사가 사랑하는 ‘소’와 맥스 파크 선수가 사랑하는 ‘큐브’는 그들이 세상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안전한 문의 역할을 한다. 


사진출처: Netflex (검색어: 스피드큐브의 천재들)


사진출처: www.HBO.com (Temple Grandin)


3. 우리 모두에게는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 필요하다. 


 

모든 문의 잠금 장치는 문 안쪽에 있다. 문은 안에서 밖으로 열고 나가는 것이다. 그랜딘 박사는 자폐 권리 캠페인을 위해 대중강연을 하고, 2023년 WCA 대회에서 직접 만난 맥스 파크 선수는 챔피언을 존경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진을 찍어주고 싸인회를 열었다(물론 줄이 너무 길어 싸인은 받지 못했지만). 이들이 누가 시킨다고 세상을 향한 활동을 하겠는가?  작가가 누가 시킨다고 자기 단어를 열어 세상을 향해 글을 쓰겠는가? 

 

나도 아니고 타인도 아닌, 현실도 아니고 환상도 아닌, 중간 세계 어디 즈음 문이 있는데 그 문을 여닫을 수 있는 권리는 문 안의 사람에게만 있다. 이 권리는 자기 세계로 사람들을 초청하고 바깥 세계와 드나들 기회이기도 하다. 세상으로 나가는 문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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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8-24 21: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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