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준
[The Psychology Times=김이준 ]
드라마 D.P.의 포스터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시스템’이라는 이름 아래 불려 가는 곳, 군대. 이러한 특수성을 가진 집단의 어둡고 폐쇄적인 이면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현실적으로 그려 화제를 모은 D.P.의 시즌 2가 7월 28일에 공개되었다. D.P.는 탈영병을 추적하고 체포하는 대한민국 육군 군사 경찰인 군탈체포조를 의미한다. 드라마 D.P.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2014년도의 군대를 배경으로 군탈체포조의 활약과 체포 중에 드러난 군대 내 현실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가 군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라고 평가받는 만큼 군대 내 가혹 행위 및 총기 난사 사건과 같이 크고 작은 군 부조리 사건을 꾸밈없이 담고 있어 군대라는 시스템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군인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황장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일반적인 대한민국 남성이 어떻게 군 부조리의 중심이 될 수 있었는지, 더 나아가 환경이 사람의 도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비추어 주었다.
황장수가 황병장이 된 것은.
‘난 그냥 너가 마음에 안 들어.’ – 황장수
‘황장수’는 D.P. 시즌 1의 악역으로써 부대 내 가혹 행위를 주도 하고 군 부조리를 부대 내 문화로 정착시킨 인물이다. ‘군필자 누구나 군 생활 중 ‘황장수’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가혹 행위를 일삼는 선임의 모습을 잘 표현한 이 배역은 단순 내용 전개를 위한 인물에 그치지 않고 드라마의 주제를 가장 인상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써 작용했다.
‘황장수’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했다. 구타 및 폭언을 일삼고 후임 위에 군림하던 ‘황 병장’은 사실 편의점 사장님의 부당한 요구와 꾸중에는 말대꾸 없이 수긍하는 아르바이트생 ‘황장수’라는 것. 가혹 행위를 통해 누군가에게 끔찍한 기억을 심어주며 삶의 끝자락으로 내몬 ‘황 병장’은 사실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웃고 떠드는 일반 대학생 ‘황장수’에 불과하다는 것. 평범한 대학생인 ‘황장수’가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가혹 행위를 자행하는 ‘황 병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황장수’가 태초부터 압제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압제적인 상황에 물들여졌기 때문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필립 짐바로드의 루시퍼 효과를 통해 찾아볼 수 있었다.
환경은 당신을 굴복하게 만든다: 루시퍼 이펙트와 제 3의 물결 실험
루시퍼 효과란 ‘스탠포드 감옥 실험’의 회고록에서 명명된 현상이다. 사람의 선과 악은 그 사람이 속해있는 시스템과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선한 사람도 비윤리적인 환경에 노출된다면 도덕성을 잃고 악으로 변할 수 있음을 뜻하는 심리 현상이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은 1971년에 당시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였던 필립 짐바로드의 지휘하에 인간의 본성과 환경의 관계성에 대해 연구한 실험이다. 필립 짐바로드는 일반인이었던 참가자들을 죄수와 교도관으로 나누어 연출된 교도소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가자들이 자신의 역할에 더더욱 몰입하게 되고 끝내 비인간적인 행위를 자행하기 시작하자 2주간의 관찰을 계획했던 실험은 6일 만에 급히 종료되고 만다. 참가자의 권리 보호 및 참가자의 안전에 대한 윤리 강령을 어겨 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 훗날 루시퍼 효과라는 개념 정립을 통해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시사하며 사회 심리학 내에서 기록적인 업적을 남긴 실험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루시퍼 효과가 관측된 또 하나의 실험이 있는데, 바로 1967년에 캘리포니아 고등학교에서 치러진 제3의 물결 실험이다.
제3의 물결 실험은 당시 역사 교사였던 론 존스가 나치에 대해 강의하던 중, 어떻게 독일 시민들이 나치의 사상과 비인간적인 행위에 따르며 동참할 수 있었는지를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시행된 실험이다. 론 존스는 ‘제3의 물결’이라는 가상의 학생 운동을 시작했고 나치가 독일 시민들에게 사용한 방법을 모방하기 위해서 규율, 연대, 행동을 통해 운동을 강화하였다. 가령, 강압적으로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을 요구하며 규율을 강화하고 멤버십 카드 지급 및 통일된 드레스 코드와 서로에 대한 인사 방식을 통해 제3의 물결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 간의 연대를 다졌다. 또한, 리더를 뽑아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학생을 고발하도록 했다. 놀랍게도, 학생들은 자신들이 긍지 높고 우월한 공동체임을 굳건히 믿으며 자발적으로 엄격한 규율에 수긍하고 서로를 고발하여 집단을 지키고자 하였다. 작은 교실에서 시작된 실험은 다른 학생들의 자발적인 동참으로 인해 300명의 참여를 얻음으로써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실험은 종료되었다.
제3의 물결 실험과 스탠포드 감옥 실험은 여러 차이점이 있지만 환경이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서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루시퍼 효과와 일치하는 해석을 도출하였다. 두 실험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평범한 인간일지여도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나 역할에 부응하기 위해서 잔혹한 행위를 동반하며 남의 권리를 짓밟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되는 것은 없다.
“저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저한테 왜 그러셨습니까?”
“그냥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D.P. 중, 군 내 가혹 행위를 받던 ‘조석봉’이 가해자인 ‘황장수’에게 폭력의 이유에 관해 물어보는 장면에서 등장한 대화이다. 이때 황장수의 대답은 군대라는 환경으로 만들어진 루시퍼 효과를 명백하게 투영하고 있다. 황장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군대라는 갇힌 사회에서 후임을 괴롭혀도 된다는 암묵적인 허락이 내재된 환경에 영향을 받아 가혹 행위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은, 루시퍼 효과는 악행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환경은 확실히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짓지 않는다. 군대에 간다고 하여 모든 이들이 황 병장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악인으로 만드는 것일까?
필자가 제기하는 해답은, 우리 안의 악은 그저 잠을 자고 있을 뿐, 악이 허락된 환경을 찾게 된다면 날개를 얻어 외부로 방출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의 악을 내면에 갖고 있으며 이 악은 환경적 요건이 충족된다면 행동을 통해 표출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뚜렷하게 인지하고 행동해야한다. 우리의 행동이 환경의 압박으로 나타난 행위인지, 아니면 정당한 행동인지, 루시퍼 효과에 대해 이해한 우리는 이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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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옆 그늘의 이야기: 장애인의 비장애 형제의 심리
참고문헌
Zimbardo, P. G. (2007). The lucifer effect: Understanding how Good People Turn Evil. Random House (NY).
Podrug, P. (2019). The Third Wave Experiment: Novel, Film and their Implementation in German High Schools (thesis).
Saari, A. (2020). Transference, desire, and the logic of emancipation. Handbook of Theory and Research in Cultural Studies and Education, 179–192. https://doi.org/10.1007/978-3-319-56988-8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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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와는 뭐가 다른지 궁금하네요!! 유익한 기사 잘봤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