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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아실라, 모로코 

‘여행을 예약하는 동기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우리는 사랑일까』란 에세이 같은 소설에서 한 말이다. ‘저기’를 꿈꾸는 이유는 저기에서라면 재미있고 무언가 극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기대감으로 우리는 여행을 준비하고 계획한다. 돌아오면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다. 오히려 여행 전과 여행 후에 보이지 않았던 균열이 점점 또렷하게 보인다. 


떠나는 비행기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느끼는 감정은 완전히 다르다. 출입국신고서의 직업란에 가끔 나는 ‘싱어송라이터’라고 쓰곤 한다. 이번 생에서는 불가능하니 꿈이라도 꾼다. ‘싱어송라이터’라고 또박또박 글자를 쓰는 순간, 손을 타고 찌릿한 무언가가 머리까지 올라온다. 출입국 직원을 속일 수는 있지만, 나를 속일 수는 없다. 실체 없는 희망을 품고 떠났다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한숨 쉬곤 한다. 변한 게 하나도 없는 세계로 돌아올 때 두 가지 감정이 따라온다. 비행기 바퀴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닿을 때, 항상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 있다. ‘무탈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말한다. 다시 안락한 일상으로 돌아와서 다음 여행을 꿈꿀 수 있다. 기쁨은 잠시. 제자리에 돌아오면 기대와 달리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서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콧바람을 잠시 넣었지만 다시 제자리이다. 반복되는 현실이 버티고 있다. 여행하는 동안 내가 다른 사람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그저 기대에 머문다. 


여행 후유증에 시달리며 왜 여행을 계속하나? 꽁꽁 숨어 있어서 일부러 찾아내지 않으면 몰랐을 내적 욕구를 인정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여행으로 바라는 바를 완전히 충족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끄집어내서 충족할 수 있는 것과 충족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구별할 수만 있어도, 떠나 볼 만하다. 일상의 속도를 제어하고 잠시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시간을 통해 깊숙이 숨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여행이 시작된다.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좌절하는 게 아니다. 지나친 욕구와 타협하는 법을 터득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즐거움을 찾는 법을 배운다. 소소한 즐거움은 취향을 발견하는 시간을 통해 가능하다. 내 안에서 울리는 미세한 감정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면, 이 자체가 큰 변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쉽게 답할 수 없는 추상적인 질문이다. 자기소개 할 기회가 있을 때,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기억하는가? 직업, 나이, 사는 곳 등 구체적인 언어로 말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이 자기소개가 될 수는 없을까? 가족 내에서 자식, 부모, 형제, 자매 등의 이름으로, 직장 내 관계망, 사적으로는 친구들과의 관계망에서 맡은 역할을 제거한 ‘온전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시간에 쫓기고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하루하루 바쁘게 사느라 나라는 존재는 파편으로 보인다. 바쁘다는 말이 입버릇이 되어 무감한 채 살고 있진 않은가? 자신도 모르는 취향을 끌어내려면 먼저 자신을 관찰해야 한다. 다음 항목 중 해당되는 곳에 체크해보자.     



1. 혼자 있어도 안 심심하고 잘 논다. 

2. 낯선 골목 탐험을 좋아한다.

3.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특별한 목적 없이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게 체질이다. 

4.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5. 샤워를 하루나 이틀쯤 못 해도 참을 수 있다.

6. 기차나 버스가 연착되어도 ‘그럴 수도 있지’ 말하며 짜증 내지 않을 수 있다.

7. 혼자 식당에 가서 밥 먹을 수 있다.

8. 혼자서 시간 보내는 법을 궁리한다. (셀피를 찍어도 좋고, 쇼핑해도 좋고, 풍경 사진을 찍어도 좋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해도 좋고, 낯선 거리를 걸으면서 음악을 들어도 좋다.)

9. 특별히 좋아하는 물건, 음식, 풍경이 있다. 

10. 길을 헤매다 원래 가려던 목적지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해도 예상치 못한 볼거리를 찾고, 뜻밖의 즐거움을 발견한다.     



위 항목 중 해당 사항이 다섯 개 이상이면 혼자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다섯 개 이하면 혼자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 준비 운동이 필요하다. 항공권을 예약하기 전에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보자. 또 혼자 카페에 가서 두 시간쯤 보내보자.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다면 이유를 생각해 보자. 단순히 익숙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겁만 나고 익숙해지지 않을까?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왜 힘든지, 왜 지루한가? 즐겁지 않은 시간을 견딜 가치가 있을까?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자. 질문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두려움이 커서 혼자 무슨 재미로 여행을 해,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답을 얻은 것만으로 자신을 조금 더 안 것이다. 모든 사람이 혼자 여행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싫은데 꼭 할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맞는 여행 방식을 찾으면 된다. 


혼자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면 잘 아는 ‘동네 여행’을 떠나길 추천한다. 지하철 타러 갈 때 우리는 늘 똑같은 길로 간다. 지하철을 타겠다는 확실한 목적이 있어서 지하철역까지 다른 길로 잘 안 간다. 수없이 지나다니는 길이라 잘 안다고 착각한다. 과연 그럴까? 


지하철을 타겠다는 하나의 목표 때문에 실제로 주변 풍경을 보지 않는다. 목표를 향해 질주하느라 계절에 따라 풍경이 바뀌어도 바라볼 가치가 없는 배경으로 받아들인다. 집 앞에 벚나무를 두고도 벚꽃 명소를 찾아가곤 한다. 평소에 익숙한 길을 목적 없이 천천히 걸으면 못 보고 지나쳤던 가게, 나무, 집 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가게가 원래 있었나? 저 식당은 처음 보는데 언제 생겼지? 나무가 많은데? 나무가 언제 이렇게 자랐지? 항상 보던 풍경인데 생경하다. 


평소에 TV나 SNS에서 보기만 했던 힙 플레이스가 있을 것이다. 가보고 싶었지만 바빠서,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입맛만 다셨던 곳을 혼자 가보자. 여행은 낯선 동네에 가서 밥 먹고, 걷고, 감성을 깨우는 활동이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한 친구는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테이크아웃해서 차 안에서 먹는다. 혼자 밥 먹기를 꺼리는 사람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반갑지 않다. 이들에게 혼자 여행은 파키스탄에 폭우가 내린다는 뉴스처럼 아득하게 들린다. 


혼자 여행하려면 혼밥과 때로는 혼술에 익숙해져야 한다. 식당에 당당하게 걸어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한 번만 해보면 두 번째부터는 이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 혼자 왔다고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혼자 밥 먹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안 먹고 살 수 없다. 혼자 밥 먹는 능력(?)은 생존에 필요한 필수 여행 기술이다. 이런 일상적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야 비로소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길 여유가 생긴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유를 묻자. 질문을 통해 자신을 이루는 요소를 탐색할 수 있다. 미국 작가이자 비평가인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이란 에세이에서 ‘자아는 만들어지는 것이고, 개인의 삶이 만들어내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 모두 자아를 만드는 예술가라고 한다. 리베카 솔닛의 말에 따르면 ‘나’라는 존재는 바로 내가 만든 예술 작품이다. 나는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Exercise     


혼자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없다면 다음 난이도에 따라 실행해 보면 좋다.

난이도 하-혼자 산책한다.

난이도 중-혼자 영화관에 간다.

난이도 상-혼자 카페에 간다.

난이도 상상-혼자 식당에 간다. 

난이도 특상-혼술 가능한 바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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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0-10 15: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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