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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코르도바, 스페인 

해외여행을 준비하면서 꼭 만나게 되는 정보 중 하나는 소매치기 이야기이다.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의 후기를 읽으면 두려움의 씨앗이 싹트고 점점 자라서 거대한 하나의 숲으로 변한다. 여행지에서 소매치기를 겪은 경험자의 서술에 대한 절대적 관점을 믿고, 낯선 곳에 대한 상상력이 더해져 깊은 숲에 한 번 들어가면 헤쳐나가기 힘든 정글이 되어 버린다.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되어 활활 타올라 좀처럼 끄기 힘들다. 콜럼버스 시대에 탐험을 떠나는 이는 한정되어 있었고, 소수만이 미대륙을 밟았다. 미대륙을 밟은 소수가 보고 느낀 것을 적은 책이, 사실인 것처럼 알려져서 ‘야만인’ 개념이 태어났다. 원주민은 열등한 종으로 묘사되는 왜곡된 시선이 자리 잡았다. 소매치기 이야기도 이와 마찬가지다.


소매치기나 도둑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나 존재할 수 있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주관적이다. 요즘 한국에서 식당이나 공공장소에 휴대전화나 지갑을 두고 오면 다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사람들이 다가와서 주머니를 털어가지 않는 안전한 곳이다. 하지만 배낭여행자의 바이블 『론리 플래닛』 서울 편을 보면 으슥한 골목을 주의하라고 적혀있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휴전 중인 분단국가이다. 종전이 아닌 휴전 중이라는 말은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외국인에게 한국 여행은 전쟁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의 도발을 종종 보고 휴전 국가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북한이 한국에 미사일을 발사해도 TV 뉴스에서나 있는 일처럼 받아들인다. 낯선 곳의 현실과 상상 사이에는 이렇게 큰 틈이 있다.     


여행지 정보 중 가장 많이 왜곡된 부분은 바로 소매치기이다. 소매치기를 당하는 사람보다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은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다. 소매치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당연히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SNS에 자신의 경험을 적어 놓는다. 즉 우리는 소매치기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읽게 될 확률이 아주 높아서 여행자는 모두 소매치기를 당한다는 오류에 빠진다. SNS에 올라온 소매치기 사건을 시리즈로 읽고, 거기에 우리의 상상력까지 더해져 곧 가게 될 여행지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탈바꿈한다.


혼자 파리 여행 계획을 세울 때였다. 광활한 인터넷 바다에서 소매치기 이야기를 한 번 읽으니 의심과 두려움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소매치기란 키워드로 논문이라도 발표할 기세로 소매치기 유형은 다 찾아서 읽었다.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긴장으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지하철을 갈아탈 때 소매치기가 따라오면 어쩌지? 잔뜩 긴장해서 공항-호텔, 공항버스 정류장-호텔까지 택시비를 열심히 검색했고, 동선을 초 단위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알파고를 능가하는 집중력을 발휘해서 경우의 수를 늘어놓고, 소매치기를 당할 확률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했다. 몹시 피곤했다. 내가 이러면서 왜 여행을 가야 하나, 회의가 들었다. 


다른 사람이 쓴 소매치기 경험담을 읽고 잠든 어느 날 밤, 꿈을 꿨다. 공항버스를 타고 파리 한복판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내렸는데, 소매치기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내 캐리어 손잡이를 잡아채서 끌고 갔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자 헛웃음이 났다. 내가 다른 사람이 겪은 경험담 일부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꿈이었다. 상상이 무의식까지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SNS를 끊고 불길한 상상을 멈췄다. 드디어 파리 하늘 아래 내려 공항버스를 타고 오페라 하우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소매치기가 없는지 살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자기 길을 가느라 바빴고, 내 캐리어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예약한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다.     


흉기나 무기로 무장한 강도가 활개 치는 도시가 아니라면, 소매치기 경험담을 늘어놓은 SNS를 끊자. 무장 강도가 거리에 돌아다니는 도시라면, 첫 자유여행 선택지에서 배제하는 게 낫다. 여행지에 소매치기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관광객만 노리는 소매치기는 세계 대도시 어디에나 분명히 있다. 하지만 모든 여행자가 소매치기당할 거라는 전제는 터무니없다. 소매치기는 여행자가 부주의한 틈을 노린다. 특정한 사람, 특히 ‘나’를 노리는 게 아니다. 여행자는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두리번거리기 마련이다. 길을 찾기 위해서, 이국적 풍경과 물건들에 끌려서, 두리번거린다. 런던 사람도 파리에 오면 눈동자를 활발하게 움직이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다. 소매치기는 두리번거리는 사람, 즉 그 도시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을 알아보는 전문가이다. 그럼 두리번거리지 않으면 될까? 불가능하다. 사람은 낯선 곳을 걸을 때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고개는 끊임없이 좌우로 돌아간다. 조금만 관찰하면 비전문가인 우리도 여행자와 현지인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럼 어쩌라고?


몇 가지만 주의하면 소매치기가 접근해도 여행을 망치지 않고 물리칠 수 있다.     



1. 대도시에서 가방은 반드시 앞으로 메는 게 좋다.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에서는 소매치기가 웃으며 접근한다. 소매치기는 무언가를 훔치려는 의지보다는 습관적으로 가방에 손을 대는 것 같았다. 하루는 가이드북만 넣은 백팩을 멨다. 이날 열 번은 소매치기의 표적이 되었다. 백팩의 지퍼를 열려는 손의 움직임이 느껴져 뒤돌아볼 때마다 소매치기는 웃으며 미안하다는 말까지 남기며 멀어졌다. 백팩은 이렇게 소매치기를 끌어당기는 자석이다. 백팩에 중요한 것이 하나도 없어도 등 뒤에서 낯선 손길을 느끼면 깜짝 놀라게 된다. 여행자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앞으로 가방을 메면 내 가방, 옆으로 메면 공용 가방, 뒤로 메면 남의 가방이라는. 혼자 대도시를 여행할 때는 되도록 백팩을 안 메는 게 좋다. 소매치기를 유혹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2. 스마트폰에 연결하는 줄이나 목에 거는 줄을 사용하면 좋다.


요즘 소매치기가 가장 노리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는 것은 현금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큰 재난이다. 갤러리에 들어있는 많은 사진, 예약한 호텔 바우처와 입장권 QR코드가 모두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다. 그뿐인가. 모든 인간관계가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한국에서 필요한 전화번호까지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대참사를 피하려면 주의해야 한다. 


바르셀로나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현지인 할머니를 만났다. 그는 내 스마트폰에 달린 줄을 신박하게 보고, 파리에 갔을 때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지하철역에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통화하고 있었단다. 그때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있던 소매치기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채갔다고 한다. 휴대전화 줄이 있었다면 휴대전화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휴대전화에 달린 줄을 끊고 낚아채는 일은 드물지만,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스마트폰을 꺼내는 걸 자제하자. 견물생심이다. 보이면 목표물이 되기 쉬워 소매치기가 뒤따라올 수 있다. 주머니나 가방 속에 안 보이게 넣어둔 현금이나 스마트폰은 소매치기의 관심사가 아니다. 안 보이게 넣는 것이 중요하다. 주머니나 가방에서 슬쩍 보이기라도 하면 표적이 될 수 있다. 그들은 눈에 안 보이는 현금이나 스마트폰을 위해 수고하지 않는다. 신중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바로 포기해 버린다. 어려운 목표물로 보이면 다른 쉬운 목표물을 찾아가지, 나를 노리는 게 절대 아니다.     



3. 현금과 여권은 가능하면 몸에 지니는 게 좋다. 


요즘 여행경비로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한다. 그래도 현금은 꼭 필요하다. 소액 결제를 할 때도 있고, 소도시에서 현금을 사용할 일이 생긴다. 대체로 호텔에 금고가 있지만 나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호텔을 믿지만 내 방은 내가 있을 때만 ‘내’ 방이다. 내가 방을 나가면 아침에 청소하는 직원이 드나든다. 청소하느라 문을 열어두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모두의 방이다. 호텔 직원이 금고를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다. 흉기를 들고 다니는 강도를 만나지 않는 한 현금과 여권을 몸에 지니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겨울에는 복대도 좋다. 요즘 복대는 얇고 착용감도 거의 없어서 복대가 내 배에 잘 있는지 만져봐야 할 정도로 진화했다. 


내가 쓰는 방법은 그날 쓸 현금을 빼고, 나머지 현금은 비닐봉지에 넣어 운동화 깔창 밑에 넣는 것이다. 누군가 내 운동화를 벗기지 않는 한 현금은 안전하다. 여권은 가방 깊숙이 넣어두는 게 좋다. 나도 찾기 힘들 정도로. 나도 찾기 힘든데 소매치기가 어떻게 가져가겠나.     



4. 캐리어는 소매치기의 작업 대상이 아니다. 


캐리어에 귀중품을 넣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잃어버리면 아쉬운 물건들로 가득하다. 옷(여행 중에는 빨랫감), 소소한 기념품, 면세품 등등. 이런 걸 노리는 소매치기기는 별로 없지만, 기차나 버스를 타면 짐을 놓는 곳과 내가 앉은 좌석이 떨어질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와이어 자물쇠로 캐리어를 묶어두면 와이어를 끊고 가져가진 않는다. 소매치기도 사람이다. 캐리어에 채운 와이어를 끊는다면 누군가 볼 것이고, 알려줄 거라고 믿자. 소매치기보다는 오히려 캐리어가 비슷해서 바뀌는 경우를 주의하자. 와이어로 묶어두면 이런 혼동으로 생기는 난감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5. 낮에도 으슥한 곳에는 혼자 가지 않는 게 좋다. 


밤에는 조심하는데 낮에는 경계심이 낮아질 수 있다. 소매치기가 많이 활동하는 대도시에서는 낮에도 막다른 골목 같은 외진 곳을 피하자. 소매치기는 여행자처럼 위장해서 배낭 메고 손에 지도나 관광 리플릿을 들고 있다. 내가 한눈을 팔면 서서히 좁혀오다가 눈이 마주치면 갑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여행자 흉내를 낸다. 이 유형의 소매치기는 삼삼오오 무리 지어 활동한다. 낮이라도 후미진 골목에서 무리에 둘러싸이면 낭패다. 미리 조금만 주의하면 된다. 호루라기를 가지고 다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불어도 좋다.      


글만 읽으면, 영혼이 가출할 정도로 피곤하게 느껴진다. 이렇게까지 주의하면서 여행을 가야 하는지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 필요 없고, 기본적 주의사항만 지키면 된다. 너무 예외적인 경우를 다 수렴해서 소매치기가 없는 도시는 없다고 과장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방 소도시에서는 가방을 뒤로 메도 거의 아무 일도 없다. 사건, 사고에만 집중하는 비관적 시선은 선입견을 만들고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막는 방해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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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1-14 19: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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