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금
[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세비야, 스페인 “저는 여행이 싫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가끔 만나곤 한다. 조금 더 이야기해 보면 이 사람이 싫어하는 것은 여행 자체가 아니라 ‘가족 여행’이다. 가족은 좋은 여행 동반자이지만,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내 여행’이 아니다. 부모님과 함께 가면 효도 여행이 될 거고(물론 효도 여행도 필요하다), 아이들이 어리면 여행은 집 밖에서 돌봄노동의 확장판이 될 것이다.
‘내 여행’을 꿈꾸지만, 이번 생에는 혼자 못 떠나겠으면 동행을 구하자. 가족보다는 친구와 떠나거나 여행 동행을 만들어 보자. 사회생활하고, 가정을 꾸리면 친구와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다. 서로 휴가도 맞춰야 하고, 집안의 대소사도 챙겨야 한다. 셋만 되어도 서로 날짜 맞추기 힘들어서 여행 이야기를 하다 흐지부지하게 된 적이 있을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사람과 어떻게 동행할 수 있나?
인터넷 여행 카페에서 동행을 찾을 수 있다. 출발할 때부터 함께 떠나거나 현지에서 만나 일정 기간만 함께 다닐 수 있다. 2010년 모로코 여행을 계획할 때였다. 모로코에 대한 여행 정보도 많지 않았고,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는 소매치기, 각종 사건과 사고, 호객행위를 하는 ‘삐끼’의 횡포 등 부정적 내용이었다.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라는 프레임에 갇혀 테러와 위험이 가득한 이미지였다. 여행자들이 겪은 자잘한 사건이 인터넷에 올라왔고, 모로코는 위험천만하게 보였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행에도 유행 물결이 있다. 한 예능 TV 프로그램에서 장년 출연자들이 스페인을 자유여행하면서 겪는 이모저모를 담았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스페인을 여행지로 선택하는 한국인이 10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에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의 해설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는 단 세 군데서만 만났다. 한국인의 눈높이에 따른 스페인 관광청의 결정이었다.
모로코는 두드러진 매력을 가진 여행지로 아직 부상하지 않았다. 휴가가 짧은 한국인에게 다녀오기 너무 멀어서일까? 모로코의 관광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여행자 수가 적으니 모로코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도 부족했다. 먼저 여행한 일부 여행자들의 경험을 접했고, 이 정보가 얼마나 좁은 시선이었는지 여행하면서 깨달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테러와 사기를 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혼자 모로코에 입국할 자신이 없었다. 인터넷 한 여행 카페에 동행을 구하는 글을 올렸고, 다행히 동행을 만났다.
돌이켜 보면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과 두 주 동안이나 동행하는 것은 또 다른 여행이었다. 내가 낯선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방법이 오히려 의심을 낳았다. 이 여행이 좋은 여행이 될지 확신이 없었다. 동행의 여행 스타일도 모르고, 평소 습관도 모르는데, 매 끼니 같이 밥을 먹고 같은 방을 써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나와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지만 그건 로망이다.
가족을 떠올려 보자. 오랫동안 함께 산 가족이라고 해서 나와 취향이 같은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가족이니까 관성으로 함께 산다. 가족일수록 서로의 습관을 속속들이 안다. 매일 서로 취향이 다른 걸 목격하고 포기할 건 포기한다. 여행하면서 의견 일치가 안 되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한 적은 없는가? 친한 친구여도 막상 여행 가면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등 의견이 다른 것을 발견한다. 입 밖으로 말하면 쪼잔해 보이는 자잘한 일을 많이 겪는다.
이럴 때 우리는 현명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바로 양보와 배려이다.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애착 대상을 배려하는 것이 이상하게 더 힘들다. 낯선 사람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배려받기를 원할 때가 더 많다. 낯선 동행은 서로 맞지 않을 거라는 전제로 출발한다. 이 말은 일정한 분별력이 있는 성인이라면 상대를 배려하고 양보할 자세를 갖추었다는 말이다. 이는 연인이 처음 사귈 때와 같다. 서로 잘 모를 때 나를 다 드러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상대를 대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의문을 품은 동행 찾기였지만 이 또한 좋은 경험이었다. 나와 취향이 전혀 다른 동행을 만나서 여행에 대한 내 시야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맛집을 찾아가는 시간도 아깝고, 미슐랭 가이드에서 평점을 높게 받은 식당에 쓰는 돈도 아까워한다. 나와 달리 동행은 먹거리에 관심도 많았고, 낯선 음식에 관대했다. 식당에 가면 동행은 여러 가지 메뉴에 관심을 보였다. 동행 덕분에 나 혼자라면 먹지 않을 음식을 이것저것 시켜서 먹어볼 기회를 누렸다.
누군가와 같이 여행하는 것은 그의 관심사에 나도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다. 길들이기라면 너무 거창하고, 서로의 가치관과 습관이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스민다. 내 여행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는데, 동행 덕분에 음식도 여행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반면에 동행은 골목 걷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유명 관광지에서 더 흥이 나는 사람이었고, 나는 이름 없는 골목을 누빌 때 생기가 도는 사람이었다. 동행은 나 때문에 많이 걷고 관광지가 아닌 골목을 누볐다. 낯선 골목에서 동행이 곁에 있어서 든든했다. 길을 헤매면 동행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지도를 보았다. 함께 여행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교집합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연애할 때를 떠올려 보자.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배려를 못 받는 것 같아서 사소한 것에도 서운해서 애면글면하는 시간이 뒤따른다. 영화 「최악의 하루」가 있다. 주인공 은희가 하루 동안 남산에서 세 명의 인연을 만나는 로드 무비이다. 은희의 연애를 통해 관계를 이야기한다. ‘연애는 남과 여, 두 사람이라는 최소한의 관계 속에서 자기 욕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관계’라는 대사가 나온다. 즉 연애는 자기모순의 한계를 드러나는 서사라는 말이다.
여행에서 동행과 겪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도 연애와 비슷한 특징이 있다. 여행 동행으로 만난 두 사람은 낯선 도시에서 서로 믿고 의지하는 가장 친밀해야 하는 조건부 관계이다. 여행이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만났다. 서로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았고, 다른 습관과 다른 세계관을 가졌다. 두 사람은 갈등을 피하려고 조심한다. 며칠 동안 자신의 본성(?)을 누르고 배려하고 양보하면 미묘한 기운이 둘 사이에 흐르곤 한다. 특별히 무슨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다. 서로 상대를 ‘배려’한다고 생각해서 억누른 자아가 소리친다. 이런 생각이 들면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곤 한다. 사소한 일에서 양보하는 횟수가 쌓여서 큰 사건 없이도 기분이 출렁이곤 한다.
이럴 때는 동행과 잠시 헤어져 보자. 따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슬기로운 해법이다. 오전에는 같이 다니고, 오후에는 각자 시간을 보낸 후 저녁에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해 보자. 자신만의 관심사를 마음껏 발산한 후 저녁에 호텔에서 다시 만나면 생각보다 무척 반갑다. 낯선 도시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면 피곤할 때 상큼한 과일 주스 한 잔 마실 때처럼 활기가 생긴다. 오후에 다시 만나서 각자 본 것을 나누면 난기류도 사라지고, 여행도 풍부해진다. TV프로그램 ‘알쓸신잡’을 기억하는가? 출연 패널들이 같이 여행 가서 따로 시간을 보낸 후 저녁 식탁에 모인다. 패널들은 저녁 먹으며 각자 낮에 본 것을 이야기하고 느낌을 서로 교환한다. 이 의미 있는 수다가 시청자를 끄는 매력 포인트였다.
천년의 고도시 페즈를 돌아본 후에 동행은 다른 일행을 만나 사막 투어를 갔고, 나는 매력적인 페즈에 조금 더 있고 싶어서 사막 투어를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출발할 때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페즈에 머물면서 나는 항구도시 에사우이라로 갔다가 카사블랑카를 여행했다. 동행과 모로코에서 일주일을 함께 보낸 후에, 모로코는 전혀 위험한 나라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밤에 혼자 으슥한 곳에 가지 않고, 일반적인 주의만 하면 휘황찬란한 대도시보다 훨씬 안전했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가게에 자물쇠가 없는 도시라면 도둑이나 강도가 없다는 말이다. 뉴욕에 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뉴욕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피부로 느낄 것이다. 뉴욕에서는 호텔 입구와 건물 입구에 총으로 무장한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어느 곳이 더 위험할까? 주인도 안 보이고 자물쇠도 없는 가게를 열어둔 도시일까, 아니면 무장한 경비원이 건물을 지키는 도시일까?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카사블랑카 거리를 혼자 걷고, 걷다가 힘들면 볕이 아름다운 노천카페에 앉아서 피로를 덜었다.
동행과 여행을 시작했지만, 후반 일주일 동안 따로 여행했다. 나와 동행이 꼬박 2주일을 같이 보낼 필요는 없었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같은 비행기였으므로 공항에서 만났다. 카사블랑카 공항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니, 오랫동안 못 본 절친을 만났을 때처럼 반가웠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동행은 사막 여행에 대해, 나는 에사우이라와 카사블랑카에서 겪은 일을 주고받았다. 긴 비행시간 동안 우리는 알아도 쓸데없는 신변잡기, 우리만의 ‘알쓸신잡’을 찍었다. 멈추지 않는 수다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