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금
[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사진출처 pinterest
마드리드에서였다. 호텔 근처 카페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기껏해야 빵과 커피였지만 말이다. 주문하고 고개를 돌려 옆 테이블을 보았다. 여행객처럼 보이는 일행 세 명이 테이블 위에 ‘모닝 맥주’를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맥주 덕후일지라도 모닝 맥주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터라 다른 도시에 앉아 있는 게 실감 났다. 맥주를 주류가 아닌 커피나 오렌지 주스와 비슷한 ‘음료’로 분류하는 문화권에 있자니 환대받는 것만 같았다. 맥주 애호가에게 유럽은 한없이 너그러운 낙원이다. 아침이든 새벽이든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맥주를 음료로 주문할 수 있으니까. 맥도날드에서도 맥주를 마실 수 있으니까.
모든 도시가 술에 대해 관대하진 않다. 이따금 맥주 금단 도시에서 수난을 겪는다. 시크하고 도도한 뉴욕에서 뜻밖에 맥주 금단 증상을 겪고, 맥주 헌터가 되어야 했다. 뉴욕에서라면 맥주 한 잔 정도는 음료일 거라고 상상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영화에서 맥주 마시기 어렵다는 힌트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나는 환상을 품었다. 맨해튼을 관통하는 아름다운 센트럴 파크 벤치에 앉아 맥주 한 모금을 홀짝이며 뉴요커들 틈에 섞일 거라고. 하지만 뉴욕은 별거 아닌 지극히 ‘사소한 행복’의 자유가 보장된 도시가 아니었다. 적어도 맥주에 대해서 근엄하고 엄격했다.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 밖 실제 뉴욕은 맥주를 내 마음대로 살 수도, 마실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뉴저지에 한 달 넘게 머물면서 버스를 타고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여행자로 살았을 때였다. 오라는 곳은 없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늘을 조각내는 고층 빌딩 숲에 풍덩 뛰어들어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뉴욕의 여름은 바닷바람이 묻어 끈적거렸다. 불쾌 지수까지 더해져 체감 온도는 실제 온도보다 훨씬 높았다. 온몸의 세포는 시원한 맥주를 끊임없이 갈구했다.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달라서 다른 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뉴욕주에서는 리쿼 판매 허가증이 있는 가게에서만 술을 팔았다. 다행히 맥주를 파는 가게가 드물진 않았고, 맥주를 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맥주를 마시는 것은 놀랍게도 어려웠다.
나는 ‘편맥’이 일상적인 곳에서 산다.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세계 맥주가 진열된 냉장고에서 맥주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술집이 문을 닫아도 두려울 게 없다. 우리에겐 편의점이 있으니까. 편의점 밖에 있는 간이 테이블에 앉아서 골라온 맥주를 마시면 되니까. 언제든 원할 때 맥주 한 잔 정도는 허용되는 사회에 산다. 하루는 맨해튼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인 델리에서 맥주를 샀다. 계산 후 가게 안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 캔을 따려고 했다. 주인이 소리만 안 쳤지, 야단치는 어투로 말렸다. 가게에서 마실 수 없다고. 쩝쩝.
-그럼 어디서 마셔요? 순진하게 물었다.
-너네 집에 가서 마시든지, 술 마시고 싶으면 술 마실 수 있는 바에 가야 해.
가게 주인은 비정하고 딱딱하게 대답했다.
맥주를 넣어달라고 했더니 갈색 종이봉투에 넣어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손에 갈색 종이봉투를 든 사람은 대부분 노숙자나 알코올 중독자라고 한다. 술이 노란 봉지에 들어있으면, 술병을 따지 않은 것을 뜻한다고 한다. 즉 알코올 중독자가 아무 데서나 술을 마신 상태가 아니라는 알리는 사회적 기호라고 한다. 이 무언의 기호는 중요했다. 술병을 딴 채 들고 거리를 다니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있어서.
나는 여행출근자였다. 맥주 한 잔 마시려고 버스를 타고 뉴저지에 있는 숙소로 갈 수 없었다. 맥주를 마실 곳을 찾아 나서야 했다. 술을 판매하는 곳과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을 법으로 엄격히 분리한 도시는 처음이었다. 평일 낮, 뉴요커들은 일하는 시간에 나는 버스를 타고 갈색 봉투에 담긴 맥주를 딸 곳을 찾아 나섰다. 그 순간에는 여행자가 누리는 특권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라고 모두에게 말하는 기호를 손에 든 소수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시원함이 사라지기 전에 맥주 캔을 따야 해.’ 맥주가 내 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했다. 체세포가 갈구하는 시원한 맛이 사라진 맥주에는 엔도르핀이 솟지 않을 테니.
손잡이가 없어 들고 다니기에도 불편한 갈색 봉투를 서둘러 열어젖힐 자리를 찾는데 몰두했다. 그 순간 나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콜럼버스 서클에서 내려 빙빙 돌다가 센트럴 파크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앉을 곳을 찾았다. 마침내 맥주 캔에 맺힌 물에 젖은 갈색 봉투를 열어 그럭저럭 ‘시원한’ 상봉을 했다. 알코올 중독자로 보이면 어떠리. 센트럴 파크에서 마시기 어려운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저 멀리 나처럼 갈색 봉투를 들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노동자에게 찰나의 활력인 알코올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도시의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나라에서 술 마시는 것은 실탄이 든 총의 방아쇠를 당기기보다 까다로웠다. 다인종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누구나 총을 소유할 수 있어서 취해서 이성을 잃으면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난다. 뉴욕 시내를 돌아다닌 후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를 틀면 전날 다녀왔던 곳에서 사람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보곤 했다.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지만, 일상 공간에서도 매일 크고 작은 총기 사고 소식이 뉴스에는 끊이지 않았다. 집이나 바에서만 술을 마시도록 규제하는 것은 나름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었다. 술이 위험한 게 아니라 총기 소지가 위험한데 말이다.
총기를 소지하는 자유를 택하고, 술을 규제하는 뉴욕의 참신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도한 매력이 있는 도시 중의 도시인 뉴욕은 맥주 한 잔도 자유롭게 마시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이 매복된 도시였다. 모두 잠재적 위험의 크기를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뉴욕에서 맥주 덕후로서 수난을 겪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뉴욕과 반대인 도시가 훨씬 더 많아서 다행이다.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는 도시가 더 많은 것에 안도하며 맥주 덕질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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