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진
[The Psychology Times=한유진 ]
이제는 차별도 다름도 없는 것으로 하자, 인종적 무시
전 세게에서 '개방적인 나라'를 하나 꼽자면 누구든지 미국을 가장 먼저 순위에 올릴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10대와 20대들은 부모 세대보다 유색 인종에 대해 훨씬 더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보도가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다. 인종적 관계를 긍정적으로 다루는 미디어에 계속 노출되면서 '피부색 무시 신드롬(Racial Color-Blindness)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피부색이 다른 친구와 사귀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며, 60% 이상은 다른 인종과 연애 관를 가져본 적이 있는 상태였다. 마틴 루터 킹의 바람이었던, 피부색이 아닌 오직 인격으로만 평가받는 세상이 미국에서 가장 처음으로 열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그러나 다인종 국가의 대표에 해당하는 미국에서도 연일 인종차별주의로 인한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피부색 무시 신드롬은 피부색에 개의치 않게 된 대신에,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인종 간 불평등까지도 없던 것처럼 치부하는 무책임한 흐름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유색인종은 백인보다 훨씬 많이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는 등 실존하는 차별 문제에 시달리고 있으며 경제적, 생활 수준 면의 지표도 심각한 차이를 보이지만 이런 문제들도 모두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교육의 효과로 타인의 피부색이나 인종과 같은 '민감한 이슈'에 대한 발언을 삼가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침묵과 묵인이 정말 차별주의와 거리가 머냐는 것이다.
백인들의 전략적 인종인식회피
2013년 하버드와 터프츠 대학교에서는 일반적으로 백인 학생들이 의도적으로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피한다는 사실에 집중하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전략적 인종인식회피'라고 명명한 뒤 바로 실험을 시작했다. 이들은 백인 참가자들에게 한 묶음의 인물 사진을 지급한 뒤, 진행자에게 스무고개 형식으로 질문을 던져 진행자가 그 사진들 중 어떤 사진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임을 만들었다. 참가자는 진행자에게 그 사람이 파란 눈을 가졌는지, 혹은 검은 머리인지 등을 질문하면서 최대한 빠르게 진행자가 설명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맞혀야 했다.
실험 결과, 백인 참가자의 대부분은 진행자에게 인종에 대한 정보를 묻지 않았다. 지급된 인물 사진 중 절반은 유색인종이었으므로, 빠르게 게임을 끝마치려면 인종을 묻는 것이 현명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진행자가 흑인일 경우 인종을 묻는 빈도는 무려 21%까지 떨어졌으며, 그들은 'black(흑인)'이나 'African-American(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단어조차 쓰기를 거부하였다. 더 놀라운 것은 추후에 이 실험을 녹화한 영상을 흑인 참가자들에게 보여주자, 그들은 피부색을 직접 입에 올린 참가자보다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참가자를 더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는 소리를 완전 제거하여 표정과 비언어적 행위만 보이도록 만든 상황에서도 동일했다.
연구자들은 백인 학생들의 전략적 인종인식회피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로 여겨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어설프게 인종에 대해 발언했다가 자신이 비난받는 상황을 되도록 만들지 않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를 지닌 백인 학생들은 오히려 유색 인종을 더욱 차별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차별주의적 태도를 지적받거나 사회적인 눈총을 받고 싶지 않았을 뿐, 마음 속에는 편견이 그대로 존재했던 것이다.
당신은 '침묵의 차별주의'로부터 자유로운가?
우리나라는 단일 인종 국가에 가까워, 비교적 이러한 문제가 잘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조용한 차별주의자'의 존재가 두드러지는 것은 우리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현재로서도 '민감한 소재'를 입에 올리는 것에 주의한다. 이는 비단 유색 인종이 아니더라도 여성, 장애인, 퀴어, 다양한 가족 형태에 그대로 적용된다. 흔히 정치적 올바름(PC)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이러한 주제에 침묵함으로서 우리는 차별주의자로 몰리게 될 여지를 미리 차단할 수 있다. 그 존재를 무시함으로서 도덕적인 죄책감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전략적 인식회피는 우리 사회에서도 효과적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우리가 어떤 '소재'를 불편하게 여기는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소재에 해당하게 되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된다.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고 무시하여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가장 무섭고 적극적인 차별이 될 것이다. 누구든지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소재에 대해 말을 삼가해본 적이 한 번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눈을 돌리는 대신 적극적으로 알고 깨치기 위한 노력 또한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도 무책임한 침묵들이 만연해지기 전에 말이다.
지난 기사
Apfelbaum, E. P., Sommers, S. R., & Norton, M. I. (2008). Seeing race and seeming racist? Evaluating strategic colorblindness in social interac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5(4), 918–932.
Butz DA, Plant EA. Prejudice control and interracial relations: the role of motivation to respond without prejudice. J Pers. 2009 Oct;77(5):1311-41. doi: 10.1111/j.1467-6494.2009.00583.x. Epub 2009 Jul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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