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
[The Psychology Times=김상준 ]
지구가 평평하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이야!
우주 공간에서 본 푸른 지구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을 통해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이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평한 지구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일명 '지구평평론자'들입니다.
그들은 지구는 평평하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심지어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Flat Earth International Conference)라는 단체도 존재합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삼 년 동안 개최된 이 학회에서 평평한 지구 이론의 권위자들은 자신들 나름의 학설을 진지하게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2018년 미국에서 시행된 한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2퍼센트가 "나는 항상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해 왔다."라고 응답했습니다.
이쯤 되면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일부 괴짜로만 취급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지구평평론자들이 무수히 많은 반대 근거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고수하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그렇다면 지구평평론자들이 어떠한 주장을 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물론 모든 지구평평론자들이 하나의 지구 모형에 합의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들에게도 주류 이론이 있습니다.
평평한 지구 이론에서 묘사하는 지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지구는 원반 모양이며, 원반의 중심에는 북극점이 위치하고 남극은 원반의 가장자리를 벽처럼 둘러싸고 있어 바닷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습니다.
▶ 원반 모양의 지구는 통과할 수 없는 투명한 돔으로 덮여 있습니다.
▶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하지 않습니다.
평평한 지구 일러스트 (출처: Grinnell College)
또한, 지구평평론자는 다양한 근거를 통해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합니다.
몇 가지 대표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지구가 둥글다면, 높은 곳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면 휘어져 보여야 하나 그렇지 않다.
▶ 지구가 둥글다면, 해수면이 평평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
▶ 지구가 둥글다면, 비행기가 앞으로 가다 보면 지구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인데 그렇지 않다.
200가지로 정리되어 있는 그들의 근거 목록에서 가장 그럴듯(?)하다고 느껴지는 이유 세 가지를 골라 봤습니다.
하지만 푸른 구슬을 닮은 한 장의 사진을 떠올린다면, 이런 이유들이 참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물론,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둥근 지구를 찍은 수많은 사진을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높은 높이에서 찍은 사진에는 지평선이 둥글게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죠.
그러나 지구평평론자들은 그런 사진들은 전부 조작된 가짜 사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원반 모양의 지구 상공에 있는 투명한 돔 때문에 인간은 우주에 갈 수 없으며, NASA를 비롯한 정부 기관들과 과학자들이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평평한 지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되짚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그들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평평한 지구에 대한 강력한 확신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는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지구평평론자들은 자신의 확신을 지지하는 증거들을 찾아 나섭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믿음과 배치되는 증거들이 발견됩니다.
하지만, 그런 증거들은 무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증거들을 무시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내게 되죠.
왜냐하면, 애초에 그들은 자신의 이론을 시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확인하기 위해서 증거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풀이해 볼 수 있습니다.
확증 편향이란 사람들이 자신의 선입견을 확인하고 싶은 동기로 인하여 자신의 예상에 부합하는 정보를 선호하고, 부합하지 않는 정보를 무시하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즉,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 때문에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은 숨겨진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 되고,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진실을 숨기기 위한 음모가 되는 것입니다.
점점 더 극단화되는 사람들
안타깝게도 지구평평론자만이 이러한 확증 편향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 반(反)진화론자, 백신 음모론자, GMO 반대자들에게서도 비슷한 방식의 사고 과정이 나타납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정보를 얻는 방식 자체가 점점 더 확증 편향에 취약해지고 있습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와 같은 서비스에서 알고리즘에 의해 개인화된 검색 결과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구평평론자들의 대부분은 유튜브를 통해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을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보가 동등하게 제공되어도 사람들은 선택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이제는 정보 제공의 단계에서부터 편향성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앞선 조사에서 18~24세의 젊은 응답자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 평균의 두 배였다고 하는데,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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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Mclntyre. L.C. (2022).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위즈덤하우스.
Myers, D.G. & Twenge J.M. (2020). 마이어스의 사회심리학. 시그마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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