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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채수민 ]



요즘 전 세계가 흉흉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한 지도 일 년이 넘었다. 최근에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고, 주변국들은 언제 확장될지 모르는 전쟁의 긴장 속에 있다. 전쟁은 정치, 경제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동안 있었던, 세계를 뒤흔들었던 두 번의 대전쟁과 현대의 전쟁 속에서 심리학의 역사를 살펴보려고 한다.

 



초기 지능검사의 개발


 

전쟁에서는 지휘관의 전술도 중요하지만, 병사들의 전투 수행 능력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양질의 군인들을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1917년은 미국이 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시기였다. 그 해, 미국의 심리학자인 Robert Yerkes, WV Bingham, Henry H. Goddard, TH Haines, Lewis Terman, Guy Montrose Whipple, FL Wells는 미군을 위한 군대용 알파, 베타 테스트를 만들었다. 미군은 이 검사를 통해 장교나 부사관으로 채용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지능을 가진 사람을 발굴하고,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낮은 지능으로 인해 임무 수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사람은 분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하여 알파 테스트에서는 언어, 수치, 상식, 지시 수행 능력을 평가하였다. 문맹 혹은 외국인들을 위한 베타 테스트도 보조로 사용하였다. 베타 테스트에서는 글 대신 기호와 패턴, 숫자, 그림으로 평가하였다. 17만 명이 넘는 미군들이 이 검사를 받은 후 일정 등급 이상의 군인들만이 선별되어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셸 쇼크(Shellshock)


 

1차세계대전의 초반부에 몇몇 병사들은 전투 후에 두통이나 어지럼증, 떨림, 이명이나 과민반응과 같은 증상을 보였다. Charles Myers가 처음으로 이 증상을 셸 쇼크라고 불렀다. 셸 쇼크를 겪는 병사는 후방으로 빠르게 이송되었다. 극도의 공포에 질려 공황 상태에 빠진 병사가 전선에서 돌발행동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병력이 부족해지면서 후방에서 치료받은 병사들을 빨리 복귀시켜야 했다. 셸 쇼크를 겪는 병사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기 때문에 다시 전쟁터로 가야 했다. 안타까운 점은 셸 쇼크를 겪는 병사들은 그들이 꾀병을 부린다거나 정신이 나약해서 그런 것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쇼몽 병원의 선샤인 룸. Hine, Lewis Wickes. 1918. 미국의회도서관 제공

당시의 정신의학으로는 셸 쇼크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데도 병원을 짓고 셸 쇼크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애썼다. 그곳에서 셸 쇼크를 겪는 병사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였고 낚시, 목욕이나 마사지와 같이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을 하였다. 미국 적십자사는 셸 쇼크 환자들을 위해 병원에 ‘선샤인 룸’이라는 것도 만들었다. 환자들을 삭막한 입원실에 두는 것이 아니라, 밝은 색상의 가구와 액자들로 장식해서 따스한 분위기의 공간을 만들었다. 

 

1차세계대전 이후에 벌어진 많은 전쟁에서도 셸 쇼크를 겪는 군인들이 있었다. 현재는 PTSD,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중 하나라고 본다. 

 



임상심리학자들의 복무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군대용 알파, 베타 테스트를 만들었던 Robert Yerkes는 1919년 미 육군 의무병단에 소령으로 임관하였다. 그는 군대에 심리학자가 필요함을 느꼈다. 그리하여 의료 훈련 캠프에 육군 심리학과를 만들고 군인들의 정신 테스트를 진행할 사람들을 훈련했다. 그렇지만 1944년까지도 임상심리학자는 군대에 전문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다. 2차세계대전의 후반이 되면, 군인들을 치료할 인력은 점점 부족해져서 결국 1945년에는 450명 이상의 임상심리학자가 미군에서 복무하며 장병들의 심리 치료를 맡게 되었다.

 



세계대전과 심리학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52년에 APA(미국심리학회)는 2차 세계대전 참전군인의 정신상태와 장애를 진단하기 위해서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을 개발했다. DSM의 출판으로 정신장애가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했고, 참전군인들을 대상으로 심리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세계대전을 통해, 사람들은 전쟁에서 심리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기사에서는 세계대전 이후의 전쟁들에서는 군사학과 심리학이 본격적으로 어떻게 협력하는지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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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dgar Jones. 2004. War and the practice of psychotherapy: The UK experience 1939–1960. Medical history.

Lloyd, A. S. 2015. Mental Health for the Everyman: World War II's impact on American psychology.

신민섭. 2019. 최신임상심리학.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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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1-06 12: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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