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진
[The Psychology Times=안수진 ]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정보를 찾기 쉬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 정보를 누군가가 정리하고 요약한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누가 3줄 요약 좀'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긴 글은 읽기 지루하고 힘드니 요약해달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심지어 이미 한 차례 정리된 글이나 영상에도 더 짧게 요약해 달라고 하기도 한다.
시간을 절약하고 핵심 내용만 간단하게 알 수 있어 편하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 왜곡되거나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요약하는 사람이 그 과정에서 주관을 개입해 버려서 읽는 사람들은 본인의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직접 이해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이미 누군가가 판단을 내버린 것을 내 생각인 양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다 보니 점점 스스로 생각하는 게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태도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
내가 해야 할 일을 타에게 계속 미루고 맡기다 보면 정작 내가 직접 해야 할 순간인데도 어버버하며 잘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특히나 요즘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만큼 누구나 정보를 제공하고, 쉽게 얻는 환경이 됐다. 또한 선택지가 많아져 스스로 판단해야 할 일이 많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것이 신뢰할 만한 것인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더욱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하지만 자꾸만 쉬운 것에 익숙해지면 계속 쉬운 것만 찾게 된다.
쉽고 편한 것에 길들여지면 쉽게 휩쓸린다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이것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게 쉬울까 아니면 맞다는 전제하에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찾는 게 쉬울까? 보통은 후자다. 사실 여부를 따지려면 많은 정신적 노력과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정보나 생각 등을 접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진실 기본값 이론'이라고 한다.
진실 기본값 이론과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 머릿속에 일어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확증편향'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서 자신의 기대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탐색하는 무의식적인 인지과정이다. 결국엔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내용만을 더 확증시킨다. 이처럼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생각이 틀린 건 아닐까 반박하는 것보다 강화하는 것이 훨씬 편한 일이다.
휩쓸리지 않고 단단해지려면?
너무 귀찮고, 어렵지만 결국 답은 비판적 사고를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는 정보를 이해하고 적절하게 평가해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위해 숙고, 사실 조사, 자기 성찰을 거치는 학습된 과정이다. 비판적 사고를 하기 위해선 해야 할 것과 조심할 것이 몇 가지 있다.
1. 맥락을 조심하기
당시에는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난 후 되돌아보면 내가 왜 그런 것에 넘어갔나, 왜 그런 행동을 했나 어이가 없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 소속 심리학자 엘렌 랭어가 진행한 실험을 통해 맥락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프린트를 하기 위해 줄을 선 학생들에게 실험자는 새치기를 부탁한다. 뚜렷한 이유를 대지 않고 새치기를 부탁했을 땐 60%의 학생이 허락했지만, 이유를 대면서 부탁하니 90%가 넘는 사람들이 새치기를 허용했다.
이처럼 맥락과 상황이 만든 기준은 우리가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2. 논거와 증거를 헷갈리지 말기
논거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하는 이유나 이론이다. 어떤 현상이 어떻게 혹은 왜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그런 이유로 특정 현상이 발생한다고 입증하지 못한다. 반면 증거는 믿음이나 진술이 진실이거나 타당하다고 뒷받침하는 정보와 사실이다. 객관적으로 측정된 변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단순한 논거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다.
3. "왜"라고 질문하지 말고 "어떻게?"라고 질문하기
사람들은 "왜" 무언가를 진실이라고 생각하는지, "왜" 무언가가 통한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면 단순한 논거와 의견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 논거를 생성하기가 더 쉬우니 증거를 제시하기보다는 논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가 "어떻게" 진실인 건지, "어떻게" 통하는지 묻는다면 증거를 제공하게 만들기가 더 쉽다.
내가 받아들이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한정적인데 내 주변 환경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양은 계속 늘어가고만 있다. 피곤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정보의 홍수 속에 잠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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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존 페트로첼리, 「우리가 혹하는 이유」, 안기순, 오월구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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