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한유진 ]



정상성 속에서 누리는 수혜


아주 평범한 일상을 한 번 떠올려 보자. 여러분은 오늘 정말 당연하게도 휴대전화를 들고 집을 나섰을 것이다. 버스나 열차 시간표를 휴대전화로 확인했을 것이고, 현금 없이 카드나, 모바일 승차권을 이용했을 것이다. 만약 오늘 점심 식사를 했다면 자연스럽게 키오스크를 이용해서 주문했을 수도 있다. 혹시 노트북을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업무도 과제도 아무 문제 없이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각종 디지털 기기로 인해서 너무나 편리하고 쾌적해졌다. 아마 오늘 만난 사람들은 모두 이런 기술의 수혜를 받으면서 즐거운, 혹은 너무나도 평이해서 딱히 다를 게 없는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버스 기사님도, 가게 직원도, 교수님도, 여러분도 말이다. 


하지만 만약 디지털화된 세상이 유달리도 편하게 느껴졌다면 여러분은 아주 운이 좋은 대상에 속한다. 우선 기기 사용이 가능한 손가락이 있고, 이용에 문제가 없는 지능을 가졌고, 또 그러한 개인 기기를 소지할 수 있는 충분한 자금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디지털화된 세상이 가정하는 '정상성'을 지닌 사람들이며, 디지털 보편화의 관점에서 보면 기득권층에 속한다. 그냥 살았을 뿐인데 대뜸 나보고 기득권층이라니, 사실은 기분이 조금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성이란 특히 우리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 중 개념 중 하나로, 우리와 절대 떼놓을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정상과 이상, 그리고 병리


본래 정상과 이상(異常)이라는 말은 17세기에 처음 나타났으며, 유기체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상태와 질병에 침투된 상태를 분류하기 위한 의학용어였다. 이 단어가 현대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정상성이 관습과 사회적 규범, 즉 사회가 공유하는 평균적 가치로 간주되어 정당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규범사회라고 자신들을 규정한 곳에서는 규범의 근본적인 결함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  그 사회가 정한 평균적 가치에서 벗어나는 순간, 예외 혹은 열등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과 병리' 저자 캉길렘은 현대 사회가 규정한 정상과 병리 간의 관계에는 큰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병리가 치료되어야 하는 악한 존재고, 정상이 모두가 이상향으로 삼아야 하는 이상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상태를 정상이라고 간주하고 있기에 치료도 그것을 목표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사람들이 정상성에 열광하는 현 상태는 아주 위험하다. 정상과 병리로 모든 것이 이분화되며, 타인을 도태시키는 것도 쉽게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병리가 되어 사라지는 사람들


이런 디지털 사회에서 정상성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이란 아주 다양하다. 크게 예를 들어 저소득층, 장애인, 외국인, 저지능자 등이 있다. 실제로 저소득층은 일반 시민에 비해 10퍼센트, 장애인은 19퍼센트, 노인의 경우 무려 35퍼센트 이상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격차는 단순히 수준의 차이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결국에는 문화 및 사회적 격차로 확대되어, 정상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을 병리적이라고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자꾸만 줄어들고,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도태된 계층은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에서 병리적인 존재가 되어 사라진다. 노인은 요양원으로, 장애인은 보호센터로, 경계선 지능 아동은 특수학교로 옮겨지는 것이다. 



당신은 언제까지고 정상일까?


정상성에 집착하는 것은 사회를 경직되고 무자비하게 만들 뿐더러, 현재 정상성에 속해있는 사람들마저도 언제든 도태될 수 있는 불안한 상태로 만든다. 편하게 쓰기 위해 만든 디지털 기술도 결국은 타인의 편리함을 빼앗아서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 기득권층에서 밀려나는 순간, 그때부터는 여러분도 다른 계층을 위해 편리함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정상성에 '착' 붙어있기보다는 이제 우리 사회가 정상이 아니라고 규정한 사람들을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지난 기사


왕의 DNA, 사이비 치료를 믿는 부모들의 마음

경제 불황과 '소확행'의 연관성:립스틱 효과

카페에서 공부가 잘 되는 이유, 호손 효과

조용한 차별주의자의 시대

당신이 오늘도 '일하기 싫다'를 외치는 이유

남들이 읽는 내 이미지, 이제는 바꾸고 싶다면

당신이 자극 없는 세상을 견딜 수 없는 이유






조르주 캉길렘, 『정상과 병리』, 한길사, 1996, 42-46p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7697
  • 기사등록 2023-12-08 09:41:39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