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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채수민 ]



'당신은 비염 증상이 생겨서 병원에 간다.' 라고 가정해 보겠다. 당신이 진료받을 수 있는 이비인후과 의사는 두 명이 있다. A 의사는 매우 건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이비인후과 질병을 앓아본 적이 없다. B 의사는 만성 비염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날이 따뜻하면 비염 증상이 조금 나아지지만, 기온이 내려가거나 환절기가 되면 꼭 마스크를 쓰고 진료를 본다. 두 의사의 건강 상태를 제외한 나머지 조건은 같다고 할 때 당신은 어느 의사에게 진료받겠는가? 누군가는 건강한 A 의사를 더 신뢰하여 A 의사에게 진료받겠다고 할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B 의사를 선택할 것이다. B 의사는 비염을 겪어본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의 병을 A 의사보다 잘 이해하리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바로 이 B 의사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상처 있는 치료자




상처 있는 치료자, 즉 Wounded Healer는 심리학자인 칼 융이 만든 단어이다. 그는 상처받은 사람이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자신을 통찰하고 회복한 후, 타인의 고통도 치료해주려는 사례들을 봤다. ‘상처 있는 치료자’라는 개념은 심리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의학, 간호, 교육, 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 희소병을 앓고 있는 학생이 자신과 같은 병이 있는 환자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의사가 되려는 이야기, 가난의 서러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성공한 후 또 다른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복지 사업을 하는 이야기는 뉴스나 자서전에서 종종 들어봤을 것이다. 상처 있는 치료자는 자기가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이 그대로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타인에게 헌신하려는 사람들이다.


 


상처 있는 치료자가 조심해야 할 것들



상처 있는 치료자가 자신의 상처를 공개한다면, 일반적인 상황보다 더 큰 공감을 내담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치료자가 내담자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로 인해 내담자가 치료자를 더 많이 신뢰하게 된다. 그렇지만 치료자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내보였기 때문에 치료자로서 자질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 ‘자신조차 치료하지 못하는 주제에 누구를 치료하겠다는 거야.’라는 말을 듣거나, 전문적이지 않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상처 있는 치료자에게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로는 역전이가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언급한 역전이는 전이가 치료자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전이란, 내담자가 과거에 겪었던 경험을 치료자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이다. 역전이는 전이와 반대로 치료자가 과거에 겪었던 것을 내담자와 연관시키는 것이다. 역전이를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학창 시절 학교폭력을 겪었던 치료자가 자신과 유사하게 학교폭력으로 고통받은 내담자를 만났을 때 치료자가 내담자를 보고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거나 동일시하는 것이다. 보통 역전이가 일어나면 치료가 객관성을 잃고 비합리적으로 변할 수 있고 내담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이 기사를 읽고 있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상처를 극복한 후 타인을 돕는 방향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위에서 상처 있는 치료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을 길게 적었지만, 결국 치료자가 과거의 상처받았던 자신과 내담자를 잘 분리한다면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타인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분명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상처가 다시 터져 나올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좌절하지 말고 자신부터 치료하면 된다. 손이 골절된 의사도 병원에 가듯이 치료자도 다른 전문가를 찾아가 치료를 받고 회복하면 된다.


치료자는 완벽해서 타인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처 있는 치료자는 아파도 보고, 그 아픔을 이겨도 봤기 때문에 오히려 치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상처 있는 치료자만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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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Zerubavel, N., & Wright, M. O. D. (2012). The dilemma of the wounded healer. Psychotherapy.

Newcomb, M., Burton, J., Edwards, N., & Hazelwood, Z. (2015). How Jung’s concept of the wounded healer can guide learning and teaching in social work and human services. Advances in Social Work and Welfare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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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2-08 09: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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