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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시대, 우리의 일상을 파고드는 ‘그들’ - 21세기 범죄의 양상: 가스라이팅, 그리고 그루밍에 대하여
  • 기사등록 2023-12-04 14: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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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민지 ]


PIXABAY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범죄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 범죄 사건이란 아동을 잔혹하게 학대하고 살해하는 사건이나 성범죄 사건, 혹은 강도와 절도 사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2009년, 대한민국을 공포와 슬픔, 분노와 충격으로 몰아넣은 강호순의 검거 이후, 더 이상 ‘연쇄살인’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째서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현 사회에 다양한 안전 시스템이 구축되고 국민 의식이 높아지면서, 범죄자들이 연쇄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체포되었을 뿐인 것이다. 즉, 연쇄성을 가진 자가 연쇄 범죄를 저지르기 전, 한 건의 범죄 사건으로 이미 체포되었기 때문에 그저, 연쇄 범죄가 줄어든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범죄로부터 안전해졌는가? 위와 같은 연쇄살인으로부터는 멀어졌을지 몰라도, 완벽히 ‘그렇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범죄의 양상 역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삶을 뒤흔드는 악마의 속삭임

 

 

 “가스라이팅(gaslighting)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 스스로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1938년 작품 <가스등>이라는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다.”

 

 “그루밍(grooming)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일컫는다. 특히 아동을 상대로 한 그루밍 성범죄의 경우, 친절을 베풀고 고민을 상담해 주는 척하며 자기에게 의존하게 한 뒤 그 의존성을 더욱 견고하고 확고하게 만들어 성추행과 성폭행을 일삼는다.”

 


현대 사회인이라면 모두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용어, ‘가스라이팅’. 그리고 그와 관련된 용어인 ‘그루밍’. 이들은 모두 사이버 범죄와 더불어, 이전과는 달라진 21세기를 대표하는 범죄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범죄들의 특징으로는, 평범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피해자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범죄가 이루어지는 방식을 알고 나면, 그 피해자들의 심리 역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가스라이팅의 핵심은, 피해자 스스로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부분이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이 어떠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는 생각 자체를 차단해버린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피해자는 가해자의 의도에 따라 행동하려 노력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변인들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관계를 단절시킴으로써, 피해자가 전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든다.

 

가스라이팅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주변의 정보들을 모두 차단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믿고 의지할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생각을 주입시킴으로써, 의존성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상황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당하는 사람의 고통과 괴로움도 크지만, 더 큰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그것을 통해 제2, 제3의 범죄 역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가스라이팅의 위험성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

 

가스라이팅에서 비롯된 의존성, 그리고 이 의존적인 심리적 기제, 성향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범죄로 ‘그루밍’이 존재한다. 가스라이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낯선 용어인 이것은, 친절함과 상냥함이라는 가면을 쓴 뒤 접근하여 신뢰와 호감 형성 뒤, 상대의 심리를 지배하고 성폭력을 가하는 아주 교활하고 끔찍한 범죄 수법을 말한다. 

 

피해자들을 자신의 지배 영역 안에 넣기 위해서 교묘하고 파렴치한 행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그루밍 가해자들은, 가스라이팅 가해자와 사이코패스들이 상황을 이용하는 수법이 으레 그러하듯, 먼저 표적으로 삼은 상대방의 거절 의사를 차단한다. 그다음, 상대가 원하지 않은 약속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상대방이 조금 불편하게 느낄 정도로 과한 친절을 베풀면서 접근을 한다는 점이다. 만약 상대가 자신을 거절했을 때 스스로가 무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말이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완강하게 거절한다면, 그 의견을 일방적으로 무시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 정보를 상세하게 제공한다. 이런 점은 그들이 거짓말을 할 때 드러나는 심리적 특성이기도 하다. 다른 특성으로는, 사회적으로 후광을 만들어서 상대방의 보편적 심리를 역이용하기도 한다. 





 범죄, 남의 일이 나의 일이 되지 않게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가스라이팅과 그루밍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가스라이팅 가해자들이 그루밍을 시작할 때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하게 되는 걸까?

 

첫 번째 단계는, ‘환심 사기’ 전략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일컫는 것이다. ‘호감 표현하기’, ‘유사성 만들기’, ‘매력적으로 꾸미기’, ‘겸손한 모습’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 단계는 ‘자기 홍보’와 ‘상징물 이용’, ‘핑계 대기’ 전략이다. 순서대로, 대담하게 자신이 능력이 있음을 알리기 위한 행동을 하고, 적절한 소품과 습관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유능한 사람으로 인식하도록 하며, 어떠한 ‘방해물이 있다’고 주장을 하는 전략을 말한다. 여기서 방해물이란, 자신이 실패했을 때 무능한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완충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영향력 제시하기’ 전략이다. 예컨대 지위와 권력을 연상시키는 작용을 활용하는 것이다.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고, 지위와 권력을 암시하는 비언어적 표현을 하거나, 다른 피해자를 이용해 자신이 이동할 때 운전 등의 의전 활동을 시키는 것 또한 이 전략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두려움은 피해자를 의존적으로 만들고, 가해자는 이러한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이러한 가스라이팅, 그루밍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스스로의 의존성을 판단하고 조절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의 의존성을 스스로 알아차리기란 힘들다. 그것을 인지하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정작 그것을 인지하게 되어도 그때는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동안에는 당연히,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는 것, 그것이 바로 가스라이팅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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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권일용. (2022).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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