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
[The Psychology Times=김상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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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과 법의 만남
신경과학(Neuroscience)이란 인간이나 동물의 신경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 뇌도 신경계의 일부에 해당하므로, 요즈음 주목받고 있는 뇌과학도 신경과학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법학은 말 그대로 우리 사회의 법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달라도 너무나도 달라 보이는 두 학문이지만, 최근 신경과학에서 새롭게 밝혀진 연구 결과들은 법학의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학문영역을 신경법학(Neurolaw)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신경법학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범죄 행위에서 개인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우리 형법은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가 적법한지 위법한지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만 14세가 되지 않은 형사미성년자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고, 발달장애인의 범죄를 정상인의 범죄와 다르게 처벌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진단받은 사람들의 뇌와 정상인의 뇌는 구조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인들은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감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전전두피질의 회백질 양이 정상인과 비교하면 약 11% 정도 작고, 특히 안와전두이랑과 복내측전전두피질의 부피가 감소하여 있다고 합니다.
안와전두이랑과 복내측전전두피질이 손상된 경우, 충동적이거나 비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특성을 보이는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처벌이 내려져야 하는 것일까요.
뇌 영상이 법정에서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거짓말탐지기는 피검자의 신체적 변화를 측정하여 진술의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기계입니다.
혈압, 심장박동, 땀 분비 등을 측정하는 고전적인 거짓말탐지기에 이어, 뇌의 혈류 변화를 통해 뇌 활동을 측정하여 거짓말을 가려내는 fMRI(기능적자기공명영상) 거짓말탐지기가 등장하였습니다.
아직 fMRI 거짓말탐지기를 충분히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우세합니다만, fMRI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완벽하게 신뢰하는 경우에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피의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fMRI 거짓말탐지기 등 뇌 영상 장비를 이용한 검사를 강제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피의자에게는 수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인 진술거부권이 있는데, 뇌 영상을 이용한 검사에 진술거부권이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음주 측정과 같은 물리적 증거를 수집하는 행위에는 진술거부권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의자의 뇌 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물리적 증거를 수집하는 검사이지만, 이를 통해 피의자의 의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정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피의자가 뇌 영상 촬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진술거부권의 행사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기억에 의존한 진술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에서 주인공은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기억은 회상 과정에서 본질적으로 왜곡되기 마련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재판에서 기억에 근거한 진술이 핵심적 증거로 사용되는 경우에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기억의 오류는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며, 그중 오귀속(Misattribution) 현상은 진술에 기반하여 사건을 재구성할 때 치명적입니다.
오귀속 현상이란 잘못된 기억이 원래 기억 사이에 첨가되어 본래의 기억이 오염되는 것을 말합니다.
피해자가 범죄 현장에 틀어져 있던 텔레비전 속 사람의 얼굴을 가해자의 얼굴로 잘못 기억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추정에 따르면, 미국에서 한 해에 7만 5천여 건의 사례들이 목격자의 증언에 기반하여 판결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 40건의 사례들이 잘못된 목격자의 진술 때문에 기소된 뒤 DNA 증거로 풀려났다는 통계 자료가 있습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원칙을 고려해 볼 때, 형사 재판에서 진술의 신뢰성은 어느 정도로 판단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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