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원
[The Psychology Times=방주원 ]
소변기에 붙어있는 파리 그림, 세계 지도가 그려진 정수기 물통과 같은 것들을 살면서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파리 그림은 남성이 소변을 볼 때 자연스럽게 그 그림에 조준하게 만들어 옆으로 튀지 않게 하고, 정수기 물통의 세계 지도는 세계적 문제인 물 부족을 연상시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어떠한 행위를 특정 생각이나 효과를 노리고 선택을 설계하는 행위를 '넛지(Nudge)'라고 부른다. 넛지는 원래 '슬쩍 찌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넛지의 요소가 많고, 우리는 넛지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넛지의 예로는 월간 구독권 결제가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혹은 여러분 주변인 중에 이용하지 않는 서비스의 구독을 계속 유지 중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합리적인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매달 계좌에서 결제되는 구독권은 당장 해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실제로 상당수의 사람은 자동 결제를 취소하는 행위 자체의 수고로움 때문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구독권을 몇 달 더 구독해 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현상 유지 편향'이라고 불린다.
'현상 유지 편향'이란 곧 타성, 즉 '바꾸려고 하는 행동이 현재보다 특별하게 이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디폴트 옵션'에 의존해 이러한 경향을 유지한다. 디폴트 옵션이란 아무 선택도 하지 않았을 때 적용되는 선택지로, 우리가 으레 구독하는 서비스들은 대부분 달마다 구독에 대한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구독이 연장되는 것이 디폴트 옵션이다. 첫 결제 시엔 무료 구독권을 제공하고, 무료 구독권의 기한이 경과된 이후에는 직접적으로 구독 및 결제 취소 신청을 하지 않는 이상 자동으로 결제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바로 회사가 고객에게 가하는 일종의 넛지로 볼 수 있다. 대중들은 디폴트 옵션에 아주 큰 영향을 받으므로 이는 넛지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작용한다. 실례로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부족한 장기기증의 경우,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사고로 사망했을 시 사전에 장기기증에 대한 동의나 비동의와 같은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디폴트 옵션이 '동의'로 정해졌을 때 장기 기증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넛지 마케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넛지는 마케팅에서 자주 쓰이는데, 이는 소비자에게 친밀하게 다가가 그들이 물건을 구매하는 선택지를 고르게끔 유도하는 방식을 칭한다. 마케팅의 전략임을 드러내기보다는 옆구리를 슬쩍 찌르듯이 친숙하게 홍보하는 방식으로 기업이나 상품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넛지 마케팅의 핵심이다. 상품의 장점을 부각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완곡하고 부드럽게 '우리는 소비자의 합리적인 상품 선택을 돕는 회사다'라는 모토로 홍보하는 것이 명민해진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예시로 폭스바겐은 'The Fun Theory' 캠페인을 통해 스톡홀름의 한 계단을 밟을 때마다 피아노 소리가 나게 했고, 이 캠페인을 통해 계단 이용률이 평소보다 약 66% 증가했다. 나이키는 나이키의 로고가 박혀 있는 농구 골대 모양의 쓰레기통을 거리 곳곳에 배치하여 쓰레기 수거율을 높일 수 있었다. 이는 대중의 일상에 브랜드가 녹아들며 회사에 대한 호의적인 이미지를 형성한 대표적인 넛지 마케팅 사례이다.
넛지 마케팅이 늘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아이스크림 할인점 같은 곳만 가보아도 항상 정상가가 표기돼있고, 그 밑에 판매가가 제시된다. 소비자는 이에 저렴하게 구매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과도한 소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이스크림 할인점은 365일 할인가가 곧 판매가인데, 사용하지 않는 금액인 정상가를 제품마다 표기해 놓는 이유는 저렴하다는 인식을 심어 구매를 유도하는 넛지다. 마찬가지로 백화점이나 마트의 큰 할인 폭도 넛지의 일부가 아닐지 의심해 보는 것도 좋다. 어느새 나를 조종하고 있는 넛지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소비자로서 계속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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