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금
[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삶을 송두리째 잃지 않으려면 일정한 노동이 필요하다고,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일정한 강도로 지켜내기에는 쉽지 않다. 노동은 신성하지만, 먹고사는데 매달리다 보면 일이 점점 몸과 마음을 집어삼킨다. 먹고사는 문제는 어른이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 적어도 내 밥값은 해야 하는데 밥값을 버는 일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분분한 견해가 있다. 기본 생계를 해결하고 나아가 자아실현까지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잭팟이 터지는 것처럼 희박하다.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 육체도 정신도 시들시들해진다. 이때 단비를 뿌릴 수 있는 존재는 눈에 안 보이는 신이 아니라 바로 노동 주체인 나 자신이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느라 몸과 마음에 멍이 파랗게 든 것을 보고 파리로 날아갈 계획을 세웠다. 구글 지도에서 가고 싶은 곳에 깃발을 꽂는 순간, 꺼져가던 영혼에 불이 들어온다. 이건 병일까? 파리 16구 파시에 있는 발자크 뮤지엄을 마음에 챙겨두었다.
숙박비 비싼 파리에서 청결하고, 메트로 역과 가깝고, 합리적 가격의 1인실을 찾았다. 있을 건 다 있고 청결했지만, 고흐가 지냈을 법한 작은 다락방을 닮은 것처럼 느껴져 경건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추적추적 거리에 내려앉았다. 단기 여행자로서 날씨가 어떻든 ‘즐겨야 하고 즐기겠다’ 최면을 걸었다. 평소에는 안 친한 낙관주의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궂은 날씨도 파리다웠고, 오히려 사람들로 붐비지 않은 거리를 차지할 수 있어서 좋다고 허세를 부렸다.
메트로 파시역Passy에서 6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발자크 뮤지엄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관광객의 발길을 잡아끌만한 것이 없는 조용한 동네였다. 비도 다소곳하게 내리는 것 같았고, 마음도 차분해졌다. 벽에 쓰인 ‘발자크의 집 la Maison de Balzac’를 보지 못했다면 지나칠 뻔할 정도로 평범했다. 초록 대문 안에 있는 발자크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파시는 지금은 파리 시내에 속하지만 <인간 희극>을 쓴 발자크가 살았던 시대에는 파리 시내에 속하지 않았다. 서울도 과거에는 사대문 안에 한정되었던 것처럼 파리 시내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발자크는 평생 빚쟁이들에게 쫓겨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았다. 파시에 있는 집에서는 1840년부터 1847년까지 살면서 <인간 희극>을 썼다. 그는 돈이 궁해서 닥치는 대로 썼고 쓰는 작품마다 인기를 얻어서 유럽 내에서 꽤 유명한 작가였고 원고료도 많이 받았다. 다른 생각만 안 했으면 빚을 갚고도 남을 정도였는데도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
발자크는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지나친 낙관주의자였다. 이십 대에는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사업에 쏟아부었다. 상상력, 낙관주의, 언변, 실행력 등 따로따로 보면 가지고 싶은 요소들이 한도 초과를 해서 한 사람에게 집중되자 파괴적 힘을 낳았다. 그는 먼저 출판업에 뛰어들었다. 프랑스 작가 라퐁텐과 몰리에르 책이 날개 돋친 것처럼 팔릴 거라고 상상하고 책을 출판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출판업은 그리 좋은 사업 아이템이 아닌 걸까. 1천 부를 찍었지만 일 년 동안 고작 20부 판 게 전부였다. 책을 출판할 때 수익을 미리 계산해서 투자를 받았는데 판매가 전혀 안 되자 남은 건 빚이었다.
나라면 여기서 그만두고 원고 쓰면서 빚 갚을 궁리를 했을 텐데 발자크는 일을 벌이는 스케일은 컸다. 그는 사업이 실패하면 다른 사업을 벌여 막으려고 했다. 인쇄소를 운영하면서 출판업을 하면 수익이 배가 될 거라고 판단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발자크는 사업에서는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손대는 것마다 손해를 보았다.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을 겪어도 계획을 거침없이 추진했다. 부모님과 그를 사랑하는 여인에게 사업 설명회를 하고 투자를 받아서 낡은 인쇄소를 인수했다. 처음에는 인쇄소를 운영하는데 열성적이었다. 직접 인쇄소에 나와서 이런저런 일을 살폈다. 인쇄소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그가 만들고 싶은 책이 아니라 홍보 전단지들을 주문받아서 열심히 찍었다. 하지만 매달 직원들의 월급과 종이 비용 등 현금이 필요했다. 빚이나 마찬가지인 어음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역시 파산했다. 그 후에도 그는 현재로 말하면 서체 개발자가 되었던 것 같다. 활자 제조 사업을 벌였지만, 이 역시 적자만 보고 다른 사람에게 운영권을 넘겼다.
세 번의 사업 실패로 발자크는 29세에 커다란 빚을 떠안았다. 게다가 그는 빚에 대한 독특한 철학이 있었다. 빚이 감당할 수준을 넘으면 조금 더 빚진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월급쟁이가 50억의 빚이 있다면, 2천만 원쯤 더 대출받는다고 해서 채무구조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발자크는 그래서 빚으로 사치도 부리고 여행도 다니고 했다. 발자크가 현재에 살았다면 카드 대출로 돌려막으며 살지 않았을까. ‘빚 철학’으로 평생 빚에 시달리면서 마감 노동자가 되어 소설을 ‘써댔다.’
그가 사업을 추진하는 동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단순한 물욕이었을까? 발자크만이 알겠지만, 우리 모두처럼 생계의 무게를 실은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마감 노동자로 사는 것을 지긋지긋하게 여겼다. 매일 머리를 싸매고, 작은 책상에 앉아서 원고를 쓰는 작가란 직업을 때려치우고, 다른 일로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싶어 했다. 우리가 매일 반복되는 일을 그만두고 다른 캐릭터로 자유롭게 살면서 물질적 안정을 꿈꾸는 것처럼.
원고료를 미리 받고는 돈을 다 써 버리고는 마감에 맞추려고 하루에 18시간씩 글을 썼다. 뮤지엄에서는 그가 생계형 마감 노동자로 치열하게 산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작은 작업실에 앉아서 하루에 30잔에서 50잔씩 커피를 마시며 썼던 원고와 열렬히 수정한 원고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없지만 그의 작업 스타일이 전시된 것을 보자 거대한 에너지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기 싫어도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최선을 다했던 모습이 그려졌다.
현실은 상상대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그의 재능은 사업이 아니라 소설 쓰기에 있었다. 그는 사업에서 번번이 실패했지만, 대신에 삶의 최전선에서 현실을 직접 겪었다. <발자크 평전>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의 표현에 따르면 ‘돈이 가지는 막강하고 악마적 의미를 체험’했다. 발자크는 자신이 겪은 실패를 소설로 탁월하게 가공해서 당대에 부와 명예도 얻었고, 문학사적으로도 한 획을 그었다. 그가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집 밖으로 나오자 낮은 지붕 위로 솟은 커다란 에펠탑이 보였다. 에펠탑은 회색 구름과 안개에 반쯤 삼켜진 모습이었다. 마치 우리 일이 커다란 입에 몸과 마음을 절반쯤 삼킨 것처럼. 매일 에펠탑이 보이는 집에서 원고를 쓰면서 늘 다른 직업을 꿈꾸었던 작가. 자신의 재능이 문학 창작에 있는 것을 부정해서 틈만 나면 다른 일을 벌여서 빚지고 쪼들린 삶을 살았던 작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그토록 탈출하고 싶어 했던 지긋지긋한 마감 노동자로서의 일상이야말로 그에게 일용할 양식과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정원 한구석에 ‘갇힌’ 그의 흉상을 만났다. 잔뜩 찌푸린 인상은 마치 죽어서도 원고 마감에서 풀려나지 못한 표정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소설에서 걸출한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들을 만나곤 한다. 소설 <나귀 가죽>에서 나귀 가죽은 일종의 부적으로 원하는 걸 모두 이루어주는 대신에 수명을 담보로 잡는다. 원하는 모든 것이 실현되는 기쁨은 잠시, 가죽이 줄어들면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현재와 다른 모습으로 살기를 꿈꾼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머릿속에서 그리는 꿈에 위험이나 비관을 섞지 않아서 그 어떤 욕망도 가능하다. 다른 일을 하면 근심은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만족이 따라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자크는 소설만이 아니라 그의 삶을 통째로 던져 증명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원천을 고갈시키는 두 가지 본능적인 행위에 의해 기력이 소진되지. 그것은 바로 바람과 행함이라는 말이네. 바람의 행위는 우리를 서서히 불태워 없애고 행함의 행위는 우리를 일거에 파괴시키지. 하지만 앎은 유약한 우리의 심신 구조를 항구적인 평온 상태로 유지시킨다네."
-오노레 드 발자크의 <나귀 가죽> 중에서
발자크 같은 마감 노동자나 월급 노동자, 나 같은 프리랜서에게 ‘바람’은 생명수일지도 모른다. 바람이 없으면 일을 이어갈 수도 없을 테니까. 그러면 앎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망상, 꿈, 상상이 꼭 헛된 것만은 아니다. 지겨운 일을 버틸 힘을 주니까. 나는 서울로 돌아가서 버틸 그럴듯한 이유를 찾았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동시에 다른 곳으로 날아갈 비행기표와 숙박비를 열심히 벌어야지. 발자크처럼 스케일을 키울 수는 없지만, 자기 자리가 싫어도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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