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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의 조용한 파이터, 빈센트 반 고흐 - 여행의 쓸모: 퇴사 말고 여행-9 - 프랑스 생레미
  • 기사등록 2024-03-10 23: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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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고흐가 머물렀던 방에서 보였을 병원 안뜰 전경 프로방스를 비추는 늦가을 햇살은 투명하고 따사로웠다.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드는 계절이라 생레미 드 프로방스에 있는 생폴 병원을 독차지했다. 생폴 병원은 1889년 5월부터 1년 동안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으로 현재는 고흐 뮤지엄이다. 고흐가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 마지막 나날을 보내기 직전이었다. 고흐의 온기가 담긴 곳이라고 생각하자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동시에 슬픔도 몰려왔다. 고립과 고독 사이를 방랑하다 고립의 횡포에 무릎을 꿇지 않으려고 버텼던 시간이 이곳에 있었다.


곳곳에 스민 고흐의 흔적을 더듬으며 건물과 정원을 걸었다. 병원으로 쓰였던 건물은 세월을 두르고 있었다. 돌벽은 남프랑스 여름의 맹렬한 햇볕에 달궈지고, 비바람에 씻기고, 겨울 찬기를 가득 품은 후 밖으로 내뿜었다. 커다란 나무 아래 그늘에 덩그러니 놓인 돌 벤치에도 시간이 흔적을 남겼다.



박물관 건물 다락방에 고흐가 머물렀던 방이 재현되었다. 평생 안락과는 거리가 멀었고, 어느 도시에서든 침대와 작은 탁자와 의자 하나가 전부인 다락방이 그의 거처였다. 살아있는 동안 작품에 대한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단 한 번도 세상을 향한 애정을 져버린 적이 없다. 그의 그림에서 사용된 생생한 색감과 힘찬 붓질에서 그가 가득 품은 강렬한 애정을 읽곤 한다. 그는 화가로, 살아가는 주체로, 주관이 뚜렷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마다 빠지지 않았던 화두는 ‘돈, 사랑, 그림’이었다. 물감 사는 것조차 힘겨웠던 가난 탓에 매번 돈 걱정이 빠지지 않았다. 부에 대한 맹목적 탐욕이 아니라 화가로서 작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유지에 대한 바람이었다. 캔버스와 물감조차 감당하기 힘든 가난도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막진 못했다. 오히려 화가로서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고 하루도 쉬지 않고 작업했다.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어떻게 작업하는가에 달려있다.

지금처럼 계속 작업할 수만 있다면,

조용히 싸움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작은 창문 너머로 평온하고

자연스러운 풍경을 바라보고,

신념과 사랑으로 그것을 그리는 싸움 말이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영혼에 편지>에 만난 말을 읽고 또 읽는다. 초보 창작자이자 ‘일상 창작자’인 나에게 고흐가 했던 ‘조용한 싸움’은 든든한 방패이다. 글에 온 힘을 모아 쏟아부을 때 나만의 힘이 독자에게 가 닿는다. 우리는 이를 진정성이라고 부른다. 고흐가 살았던 시대뿐 아니라 매일 쏟아지는 최첨단 기술을 따라가느라 어리둥절한 디지털 시대에도 창작의 원리는 똑같다. 자신의 작업에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매진할 때, 진정성은 감추고 싶어도 튀어나올 것이다.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진정성은 '사실처럼' 보이는 정신이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누워서 넷플릭스 좀 보다가 잠자리에 든다. 이 일련의 일과는 사실이지만, 이 작은 실제 사건을 나열한다고 해서 진정성이 깃들어 있다고 하지 않는다.


결국 진정성은 사실처럼 보이는 ‘그럴듯한 허구’이다. 일상 속 어디에나 있어서 흘려보내는 것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해서 각색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고흐의 표현을 빌리면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물 또는 현상의 핵심에 도달하려면 ‘새빠지게’ 오랫동안 해야 한다. 진정성은 궁극에는 다른 사람이 보든 안 보든 조용히 싸우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고흐의 삶이 비범한 이유는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림을 그린 화가 이전에 그가 삶을 살아간 태도에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타인의 인정을 먹고 자란다. 자신이 하는 일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은 요동치며 틀린 길로 가는 게 아닌지 의심이 꼬리를 문다. 반면에 한 사람이라도 우리가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면 신이 난다. 끼니 준비는 그 어떤 일보다 신성한 일이지만 신이 나기 어렵다.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드문 탓이다. 가족의 관심과 인정이 필요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매일 먹는 밥이라는 이유로 무심하게 넘기기 쉽다. 하지만 요리사로 불리면 달걀과 양배추 같은 흔한 재료로 만든 음식에 관심을 가지고 반응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같은 재료로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요리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과 타이틀이 없는 사람에 대해 주변의 관심이 달라진다.


고흐는 이 차이를 뼛속까지 체험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는 길에 의심을 단단히 누르고 작업 자체에서 스스로 동기를 찾아야 했다. 우리는 모두 일상 창작자로 주변 시선을 무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주변 시선만 좇으면 일상을 이루는 하찮지만 중요한 일에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생계를 위한 일도 의미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일상을 살아내는 것 역시 외로운 싸움이고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고흐는 싸움터에 늘 혼자 나섰고, 우리처럼 갈팡질팡할 때도 많았다. 나는 그가 벌였던 내적 싸움의 흔적을 캔버스에서 읽는다. 한 세기가 지났지만, 캔버스에 앉아 있는 물감의 두께에서 그의 살아있는 기개를 본다. 마치 며칠 전에 작업한 것처럼 튀어나올 기세이다. 물감의 생생한 질감에서 굽히지 않았던 신념을 본다. 아무리 외로울지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작업 방식을 꺾지 않는 붓질이었다. 그가 직접 본 자연에 대한 감탄과 경이를, 오늘날 우리는 느낀다.  이는 고흐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다.


생폴 병원 정원을 거닐며 고흐가 벌였던 외롭고 조용한 싸움을 상상했다. 현재 우리가 사랑하는 고흐는 고흐가 살았던 과거의 총합이듯이 10년 후의 나는 내가 쏟은 시간의 총합일 것이다. 나는 산만한 사람 콘테스트가 있다면, 우승 후보권에 들 사람이다. 호기심이 차고 넘쳐서 새로운 관심사에 주의 집중력을 흩뜨린다. 덕분에 많은 경험을 했지만, 하나를 꾸준하게 하는 힘을 잃어버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메뚜기 같다. 고흐가 머물렀던 생폴 병원을 비춘 햇살을 물끄러미 보았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데 진짜 그럴까? 매년 커지는 숫자는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말해주었다. 내 육체적 한계를 인정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무모하게 뛰어들었던 패기는 이제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는 것도 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고 선택과 집중도 계속된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내 능력의 한계를 보고, 불편한 진실에도 살아가는 싸움은 계속된다.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희망을 건진다. ‘봄에 딸기를 먹는 일도 인생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건 1년 가운데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고, 지금은 가야 할 길이 멀다.’ 봄바람이 볼에 닿아 살랑이는 계절에 찾아오는 불청객인 멜랑콜리도, 가을의 스산한 바람에 슬며시 나타나는 외로움도 인생의 일부이지만 찰나이다. 고흐가 말했듯이, 내가 할 일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상을 살아내는 일이다. 내 일상을 창작하는 사람은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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