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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안도 타다오>에서 안도 타다오는 '창조적 근육'이란 말을 했다. 창조적 근육을 만들기 위해 미술, 영화, 건축 관람 같은 감상이 필요하고, 체력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근육이 있어야 도전해서 실패한 후 또 도전하고 해낼 수 있다고 한다. 보통 실패한 후에 체념하고 그만두기 쉽다. 한 판 더 도전하는 힘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 안도 타다오의 삶이 더 특별하다.


그는 췌장암으로 췌장과 비장을 동시에 떼어냈다. 의사가 장기 두 개를 동시에 떼어낸 후 건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안도에게 건강한 최초의 사람이 되어달라고 했단다. 안도는 수척해진 얼굴로 이 이야기를 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는 병에 습격당한 무기력한 노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도전의 짝꿍을 실패로 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를 지닌 영원한 젊은이였다.


전 세계를 무대로 그가 생각하는 건축 스타일을 펼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치워나가면서 그는 힘의 균형을 잡는다. 처음에 ‘미친 생각’ 취급을 받았던 프로젝트가 나오시마섬이다. 이 섬은 다카마쓰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다. '시마'는 우리말로 ‘섬’이어서 나오시마섬이라고 말하면 틀렸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니까 나오시마섬이라고 부를 것이다.


나오시마섬은 원래 폐섬이었는데 안도 타다오가 섬 전체를 갤러리로 만들었다. 안도 타다오의 섬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고, 심지어 안도 타다오마저도 배를 타야 접근할 수 있는 섬으로 전시를 보러 올 사람이 있을지, 반문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후원한 이의 용기와 안도 타다오의 ‘창조적 근육’이 만나서 ‘예술은 힘이 세다’는 말을 입증했다. 갤러리가 된 섬은 이제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나오시마섬에 갔을 때 한국과 일본 간에 무역 분쟁으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커뮤니티마다 불매 상품 리스트가 퍼졌고, 일본 여행을 취소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일본 땅에 있었다. 일본 여행 중 상품 불매운동을 바라보게 되어 난감했다. 개인 대 개인으로 여행지에서 만난 일본 현지인은 그저 다 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일본어를 전혀 못 하는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세계인이었다. 개인은 정치권의 난기류에 무심했다. 한국 내에서 펼쳐진 ‘분노 연대’에 동참하기 힘들었고, 여행 내내 감정이 갈팡질팡했다. 민족주의자가 되어 죄책감을 느끼는 여행자가 되었다가 우리는 모두 세계시민이란 생각에 의연하려고 애쓰곤 했다.


파도를 가르고 전진하는 배에 흔들리는 마음을 맡겼고, 여행은 계속되었다. 나오시마섬 선착장에 내렸더니 쿠사마 야오이의 호박이 반겼다. 섬 입구부터 펼쳐진 예술의 향기를 킁킁거렸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하고, 제임스 터렐의 설치 미술이 있는 '지추 미술관'이었다. 예약제였지만  예약 시대에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고 게으른 여행자가  되었다. 잠시 후회했지만, 이 또한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현장에 남아있는 소량의 입장권을 구하느라 마음이 바빴고, 두 시간 후에 들어가는 표를 구했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수련 정원을 닮은 작은 정원을 걸어 미술관 입구를 통과했다. 미술관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였다. ‘왔노라, 보았노라’식 인증 강박 탓에 정작 작품에 빠져 오롯이 시간을 보내기 힘든 시대에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은 정책이었다.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두고, 카메라 렌즈보다 수백 배 더 정교한 두 눈으로 보고 느끼는 시간을 강제로 부여받는 곳이었다.


안도 타다오의 작품을 실제로 처음 보았다. 제주도의 본태 박물관과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에 그의 건축물이 있었지만, 보기 전이었다. 그의 건축물은 사람의 기를 압도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노출 콘크리트와 한 치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는 공간 분할은 폐소공포를 유발했다. 하지만 그가 품은 콘셉트의 배경을 알게 되자 전혀 다르게 보였다. 보통 어떤 지역을 개발할 때 자연을 무시하고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할 때가 많다. 자연과 어울리기보다 건물 자체가 두드러져 시선을 끌려는 욕망을 발견하곤 한다. 이는 일차원적 감각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은 이와는 다른 방법을 택한다. 자연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에 우선순위를 둔다. 건물을 지하에 설계한다. 건물은 언덕 품 안겨있고, 높은 콘크리트 벽 속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이 보인다. 벽에 갇혀있지만, 위를 보는 순간 갇힌 게 아니라는 걸 환기하는 방식이다. 갇힌 기분이 드는 순간, 자연의 소중함, 시야가 개방되는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말한다. 갇힌 위치에서 개방성을 향한 강렬한 욕구를 깨닫게 된다.


착시를 이용한 빛의 예술가인 제임스 터렐 작품은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다주었다. 우리 인간은 감각과 정신으로 팩트를 보는 게 불가능한 존재가 아닐까? 우리가 팩트라고 여기는 것은 실제로는 시각의 왜곡이 아닐까?


벽에 커다란 붉은빛을 뿜어내는 스크린이 있었다. 완전히 하나의 닫힌 공간이었다. 하지만 안내자에 이끌려 스크린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마법이 일어난다. 닫힌 공간이라고 믿었던 공간은 단 한 번도 닫혔던 적이 없었다. 그곳은 늘 열려있는 공간이었다. 붉은 스크린을 벽으로 보는 것은 허상이었다. 그 허상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내 인식이었다. 눈으로 보고 판단해서 닫힌 벽이라고 왜곡했다. 우리는 이를 사실로 믿고, 열려있으니 넘어오라고 말해도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걸 주저한다.


닫혔다고 믿었던 건 의식이다. 경험을 통해 의식이 변하자 다시 반대편으로 넘어갈 때는 망설이지 않았고, 용기도 필요하지 않았다. 벽이 열려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안도 타다오가 끊임없는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실패를 거듭할수록 가능성도 비례한다. 그러니까 가능성은 실패를 통해서 현실이 된다.




자신에 대해 정말 알고 싶은 사람은,

쉬지 말고 광신적으로 실망을 수집해야 한다.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 열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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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4-01 12: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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