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아프지 않고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까 - 초등교사 J의 일의 기쁨과 슬픔 09화 -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교사
  • 기사등록 2024-05-16 14:43:35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루비 ]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불복하여 작성한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에 인용되어 널리 알려진 네크라소프의 시구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이것을 교사에게 적용해보면 어떨까.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교사는 학생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어떤 분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피드에서 ‘학창 시절 돌아가며 친구들끼리 왕따 시키고 시기 질투가 심해 매일매일이 힘들었다'라는 글을 보고 나와 동시대를 공유하고 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왕따’라는 단어를 들은 것은 초등학교 졸업을 얼마 앞둔 6학년 시절이었다. 뉴스에서는 중학생 사이에서 일본에서 들어온 이지메  문화인 왕따가 유행하고 있다고 보도했었고 나는 굉장히 겁을 먹었다. 6학년 당시에 우리 반에도 왕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은연중에 목소리 큰 여자아이가 한 여학생을 집요하게 공격했고 한 남학생이 공격당하는 그 여학생을 감싸주며 “그만해”라고 한 것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나는 기가 센 여학생과 친한 친구여서 다행히 그런 위험에서는 벗어났지만, 공교롭게도 중학생이 된 단짝 친구와 나는 각자의 반에서 따돌림받는 신세로 전락했고 우정은 깨져버렸다. 힘든 중학교 1학년 시절을 보내고, 2학년 때는 전교 1등인 친구와 친해서인지 아무도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친한 여학생들 간의 미묘한 신경전과 헐뜯음, 비교, 배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티 나지 않게 계속되었고, 나는 왜 담임 선생님들은 그런 일에 무관심할까가 항상 의문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대학 시절, 타지 출신인 나는 단지 경기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네가 경기도 사람이어서 싫다”는 무시무시한 말과 텃세와 배척과 조롱과 각종 폭언과 폭력에 노출되었다. 그 트라우마가 지금까지도 내 삶에 짙게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어서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슬픔과 고통을 벗 삼으며, 반대편에서 즐거움과 성취로 어두운 기억을 밝은 기억으로 채색해나가며 극복하고 있지만, 내가 누구보다 소외되거나 따돌림받는 아이들, 배척받는 아이들, 그냥 존재 자체로 무시당하는 아이들의 마음과 아픔에 더 깊이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행복한 아이연구소 소장은 한 유튜브 영상에서 학창 시절이 즐겁고 행복했던 학생은 주로 방관자거나 남을 괴롭히는 위치에 있는 학생들이고 아픔과 상처가 많은 학생들 대다수는 피해자의 위치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소위 엘리트 출신이라든지 모범생 출신인 교사들 대다수는 괴롭힘 받거나 따돌림받는 아이들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고 별종 취급하며 괴롭히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가세해서 상처를 주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는 교대생 시절 즐겨 읽었던 일본의 초등교사이자 아동문학가인 하이타니 겐지로의 소설 <손과 눈과 소리와>에서



‘공부할 수 있는 놈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준 선생을 좋은 선생이라고 하지만, 슬픈 일이 하도 많아서 공부 따위가 손에 잡히지 않는 놈은 슬픈 일을 같이 걱정해 주는 선생이 좋은 선생이잖아. 우리 학교에 그런 선생 있나?’



라는 문장을 읽고 마음 깊이 담아두었었다. 고등학교로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한데 교사를 평가하는 기준은 오로지 좋은 성적을 받는 것에 치중한 경우가 많고 그러한 것으로 능력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는 하이타니 겐지로가 소설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에 더 마음이 갔다. 부유한 부모를 만나서 남부럽지 않게 걱정 없이 좋은 학군에 사는 아이들. 굳이 선생님이 잘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학생들, 실상은 사교육으로 범벅된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게 대체 선생님의 자질과 능력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하고 말이다. 그보다는 그 반대편에 서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꿈과 미래를 그려가며 가족을 친구들을 동물들을 사랑하며 고운 마음씨를 키울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게 더 좋은 교사가 아닌가하고 말이다.


나는 비록 많은 아픔과 절망과 고통을 겪어왔고 지금도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하이타니 겐지로의 “참된 상냥함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내가 겪은 아픔과 절망,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상냥함이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세태 속에서도 상냥한 마음을 잊지 않도록 계속해서 나를 관리하고 수양하고 좋은 교육을 위해 힘쓰리라 다짐한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8107
  • 기사등록 2024-05-16 14:43:3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