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김민서 ]


출처: Image by Chelsea Beck from NPR


이중언어사용자의 언어별 다른 성격


우리 사회가 다원화되며 이중언어사용자(bilingual)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중언어사용자의 기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언어학자 François Grosjean은 이중언어사용자를 ‘일상생활에서 둘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다. 실제로 학계에서도 점점 유창함보다는 정기적인 사용에 초점을 둔 정의로 옮겨가는 추세이다.


다음은 한 이중언어사용자와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다.

“러시아어로 말할 때는 제 성격이 더 부드럽고 다정해지는 것 같아요. 반면에 영어를 할 때는 좀 더 거칠고 사무적인 사람처럼 느껴져요.”

러시아어-영어 이중언어사용자 마리아 씨(가명)는 자신이 쓰는 언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에서는 우회적인 화법을 선호하고, 영어 문화권에서는 말을 더 직설적으로 하는 것일까. 그러나 같은 러시아어-영어 이중언어사용자 중에서도 정반대의 보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이 설명은 불충분해 보인다. 실제로 마리아 씨 뿐만 아니라 많은 이중언어사용자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들을 전환할 때 인격이 달라지는 듯한 경험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는지가 성격 변화에 영향


이중언어사용자들이 보이는 성격 변화는 사용하는 ‘언어’ 때문이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맥락’이 변해 나타나는 것이다.


언어가 사용되는 맥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상황적 맥락’은 대화를 나누는 참여자, 시공간적인 장면 등 발화를 둘러싼 직접적인 맥락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영어를 ‘회사’에서 ‘무역이나 상거래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영어를 주로 ‘격식적’이고 ‘덜 친밀한 장면’에서 사용하므로 영어를 쓸 때 자신이 더 사무적이고 차갑게 변한다고 느낀다. 영어를 사용하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상황이 성격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문화적 맥락’으로, 이는 신념, 가치관, 규범과 같이 언어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문화적 프레임을 가리킨다. Ying-yi Hong 홍콩중문대 교수 외 3인은 문화적 맥락의 영향으로 언어별 성격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문화 프레임의 전환’(cultural frame shifting)으로 설명한다. 언어는 언어사용자들이 공유하는 문화 프레임을 촉발하는 중요 단서이고, 따라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면 문화 프레임도 바뀌어 동일한 자극에 대해서도 다른 응답과 연상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 언어학자 Susan Ervin의 실험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어-영어 이중언어사용자들에게 모호한 그림 카드를 보여주고 그림을 해석하게 하였다. 실험 결과, 이중언어사용자들은 실험에서 사용한 언어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리는 경향을 보였다. 프랑스어로 질문을 했을 때는 아내의 공격성, 자율성으로 해석했다면, 같은 그림에 대해 영어로 물었을 때는 아내가 남편을 지원하는 모습으로 해석하였다. 즉 질문 언어가 무엇인지에 따라, 그 언어권의 문화가 반영된 응답을 집단적으로 보였다.


 

통합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기


개인마다 특정 상황에서 쓰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상황적 맥락에 따른 영향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영어를 쓴다고 하더라도 A는 주로 친구와 대화할 때 영어를 사용한다면 더 친근하게, B는 공적인 업무 환경에서 영어를 쓴다면 더 사무적으로 느낄 수 있다. 반면 문화적 맥락의 영향은 상황적 맥락에 비해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고, 일관적이다. 개인마다 언어를 쓰는 상황이 다를지라도 해당 언어사용자들이 공유하는 문화 프레임은 동일하기 때문에, 앞서 Ervin의 연구에서 보았듯이 언어별 성격은 개인 간 유사하게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이중언어사용자가 언어별로 성격이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는 상황적 맥락과 문화적 맥락의 영향이 공존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결국 언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상황, 대화 참여자, 문화권 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따라서 이중언어사용자를 볼 때도 단순히 두 단일언어사용자의 합으로 바라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 사람을 둘러싼 언어 환경, 문화권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할 때 비로소 이중언어사용자의 고유한 특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Grosjean, F. (2010). Bilingual: Life and Reality. Harvard University Press.

Hong, Y.-y., Morris, M. W., Chiu, C.-y., & Benet-Martínez, V. (2000). Multicultural minds: A dynamic constructivist approach to culture and cognition. American Psychologist, 55(7), 709–720.

Ervin, S. (1964). Language and TAT content in bilinguals. Th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68(5), 500–507.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8115
  • 기사등록 2024-02-22 15:45:5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현재의견(총 2 개)
  • ldy2032024-03-15 17:26:56

    기사의 전체적인 흐름이 자연스러워 읽기 편했습니다. 특히 이중언어사용자와의 인터뷰를 초반에 삽입하여 인터뷰 내용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후술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마지막 문단에서 언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맥락과 밀접하게 관련되기에 그 사람을 둘러싼 언어 환경과 문화권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비단 이중언어사용자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인 것 같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chaejinwoo09112024-03-04 00:36:49

    기사를 읽어보니 흥미로운 주제에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이중언어사용자의 성격 변화를 언어의 상황적 맥락과 문화적 맥락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접근은 명확하게 전달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사례와 연구를 제시하여 신뢰성을 높였습니다. 글의 구성이 명확하고 표현도 적절하여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글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