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은
[The Psychology Times=김가은 ]
누구나 ‘선택장애’라는 용어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최근들어 자주 쓰이는 이 단어는 무엇인가를 고르고자 할 때 오랜 시간 고민하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다. 사실 살면서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곤란한 상황은 꽤 자주 찾아온다. 예를 들자면 원하던 두 개의 대학에 붙었는데 어디를 갈지 고민한다거나, 쓸 수 있는 돈이 제한되어 있어 두 가지 제품 중 하나만을 골라야 한다는 식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상황에서 ‘기회비용’, 즉 하나를 고르며 포기하게 되는 다른 선택지가 가져오는 후회에 대해 걱정한다. 그러나 사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오랜 시간동안 후회하는 사람은 적다.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초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은 ‘본인이 직접 선택했는가’이다.
CIPC(choice-induced preference change), 선택 기반 선호도 변화
CIPC란 의사결정 후 자신이 선택한 대상에 대한 선호는 증가하는 반면, 선택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선호는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많은 실험을 통해 성인, 어린 아이, 심지어는 원숭이와 같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전까지는 주로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연구되었지만, 최근에는 경제학과 신경 과학 분야에서도 이를 연구하고 있다.
CIPC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자유 선택 패러다임(Free Choice Paradigm, FCP)’이 주로 사용되는데,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총 3가지의 단계가 있는데, 첫 번째 단계에서는 약 15개의 물건들을 제시하고 참가자에게 갖고 싶은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게 한다. 이후 두 번째 단계에서는 해당 물건들 중 두 가지를 골라 제시한 후, 무엇을 가질지 고르게 한다. 선택 후 세 번째 단계에서는 다시 한 번 동일한 15개의 물건에 순위를 매기게 된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을 때, 다수의 참가자에게서 흥미로운 사실이 관측되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 골랐던 물건의 경우 세 번째 단계에서 순위를 정할 때, 처음 매겼던 순위보다 더욱 높은 순위를 매겼던 것이다. 또한 선택받지 못했던 물건의 경우 세 번째 단계에서 순위가 이전보다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위에서 설명했던 ‘자유 선택 패러다임’은 순위를 평정해야하는 첫 번째 단계에서부터 참가자의 선호를 반영하는 방법이기에 비판을 받기도 하며, 계속해서 수정 사항이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선택에 의한 선호도 변화(CIPC)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지 않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자유 선택 패러다임이라는 연구 방법이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해서 결정이 끝난 후, 선호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원론적인 개념을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합리화이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태도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태도를 바꾸어 자기 자신을 설득한다. 마치 ‘여우와 신포도’ 우화에 나오는 여우처럼 말이다. 한 선택지를 고른 후, 그것에 대해 사후에 선호도가 올라가는 것도 대개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른 현상으로 설명된다. 고르기 힘든 의사결정을 내린 후, 자신이 내린 '결정'(즉 행동)에 대한 후회라는 불편한 감정을 '선호'(즉 태도)를 증가시킴으로써 타파하는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합리화의 동기는 ‘선택을 한 자신’이라는 자아 개념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사회심리학 분야의 많은 연구들에 따르면 자신이 개인적으로 내린 결정은 자기 개념을 이루는 구성물 중 하나가 된다고 한다. 자기 자신이 강조되는 서양 문화권에서 선택된 개체에 대한 선호도 증가가 더 크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만일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면
앞서 말했다시피,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결정을 내린다. 그만큼 고민을 많이 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원치 않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무엇을 고를지 고민할 때 만큼은 속칭 ‘행복한 고민’이라도 마음에 부담과 불안을 남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사 전반에 걸쳐 말했듯이, 인간에게 주어진 ‘합리화’라는 특성은 선택이 끝난 후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기제를 마련해 놓았다. 여기에 자신의 결정을 존중하고 만족하고자 하는 의지적인 노력이 더해진다면 선택은 더 이상 두려운 과정이 아니라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김하진 & 조수현. (2023). 선호가 배제된 지각적 판단에서 관찰된 선택 후 판단 변화 현상. 한국심리학회지: 인지 및 생물, 35( 1), 23- 29.
조수현. (2019.07.31). 좋아서 선택했다고요? 사실은, 선택했기 때문에 더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내 삶의 심리학mind. http://www.min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32
황윤지. (2020). 선택의 속성과 기억이 선택 후 선호도 변화에 미치는 영향(석사학위). 중앙대학교 대학원. 서울.
Chen, M. K. & Risen, J. L. (2010). How choice affects and reflects preferences: Revisiting the free-choice paradigm.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9(4), 573–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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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영어 교과서 본문에서 '결정장애 현상이 올 때 처음 고른 것을 사면 후회할 확률이 적다'는 내용을 담은 본문을 공부한 기억이 있어서 '맞아 맞아'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를 잘 읽었습니다. 저도 실제로 소비에서도, 중요한 선택을 앞둔 상황에 있어서도 여러개 또는 두개 중 하나가 고민이 될 때 처음 끌렸던 선택지를 고르는데 후회한 적이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러한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 그 기제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었는데, 기자님의 기사를 통해서 '자유 선택 패러다임'이라는 연구를 통해 어느정도 알 수 있겠구나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