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우
[The Psychology Times=박지우 ]
Unsplash‘픽고 PICKGO’. 필자가 즐겨보는 웹드라마 채널이다. 오늘날 MZ 세대의 일상, 사랑, 인간관계 문제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많은 구독자로부터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픽고의 콘텐츠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현실 고증을 불러일으키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밖에서는 외향적이지만 실제로는 마음 터놓을 친구 하나 없는 민아의 사연,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해서 매일 스트레스 받는 소현의 속내, 주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늘 외로운 연희의 이야기. 픽고의 등장인물은 마치 우리를 보는 것 같다. 특히 매일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에서 나 자신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런 적 있는데’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인간관계는 어렵고 힘들다. 그래서 요즘 대인관계를 소재로 하는 콘텐츠가 각광받는 것일까. 그러나 이젠 단순한 공감과 위로만으로 부족하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켜냄과 동시에 그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해야 한다. 오늘도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길 바라며 펜을 든다.
처음부터 만만한 사람 되지 않기
‘아무 말 대잔치’라는 말이 있다. 뇌를 거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는 것이다. 예컨대 음식 이야기를 했다가 취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어제 저녁에 재밌게 본 드라마를 이야기하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제3자가 보기에는 ‘왜 저러나’ 싶기도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일상에서 아무 말을 내뱉을 때가 많다. 가령 처음 만났거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해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묻지도 않은 자신의 실수와 사생활을 마구 떠들어대지는 않는가? 혹자는 오디오가 비는 것이 어색해 아무 말이라도 내뱉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자칫 성가신 사람 앞에서 약점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쉽게 말해 누군가는 자신의 앞에서 긴장한 채 아무 말이나 내뱉는 상대를 보며 ‘만만하고 이용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매 순간 경직된 상태로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첫 대면에서 상대방에게 적어도 만만한 인상은 주지 말자는 것이다. 함께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배려심에서 대화를 많이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 만난 상대에게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노출하는 행위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 때로는 침묵을 즐기는 것이 앞으로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빌런의 표적이 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다.
공감도 적정한 선이 필요하다
공감 피로란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공감해서 극도로 지쳐버리는 것을 말한다. 주로 타인을 돕는 서비스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스트레스 증상 중 하나로 내담자가 겪은 고통과 기분이 상담자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특히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그들의 상황에 자신을 대입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이재민들의 실상과 처지에 너무 공감한 나머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나 환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겨 삶을 놓아버리는 정신과 의사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공감도 적정한 선이 필요하다. 상대방에게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과 그렇지 못하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을 함께 주선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금전적인 문제나 부부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도와주는 것엔 한계가 따른다. 이에 개인 회생 절차나 이혼 전문 변호사를 주선해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큰 힘이 되니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려 하지 말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때로는 나와 남을 분리해 생각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너무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고민을 상담해 주거나 공감해 주는 것은 큰 정신적 부담이기 때문에 자칫 내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남을 위해주는 만큼 나 자신의 마음도 주기적으로 돌봐주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타인에게 더욱 힘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다음에 도와드리겠습니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그 요청을 거절했을 때 상대가 받을 상심과 분노를 함께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억지로 상대의 짐까지 떠안는 것 역시 큰 문제다. 단순히 내가 힘들어져서가 아니다. 억지로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다가 그의 일까지 그르치면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나의 상황과 현실을 고려해 상대의 부탁과 권유를 수락하는 연습이 필요하며 때로는 단호히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상대의 기분을 그르치지 않고 거절하는 3단계 방법을 항상 숙지하자.
첫 번째, 감사의 뜻을 전한다. 보통 상대가 도움을 요청할 때는 요청받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경우가 많다. 부탁을 거절하기 전 상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자체에 감사의 마음을 꼭 밝히는 것이 좋다. “저에게 먼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믿고 요청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두 번째, 단호한 거절의 의사와 그 이유를 밝힌다. 상대의 모든 부탁을 수용할 필요는 없다. 내가 거절한다면 상대는 부탁을 들어줄 또 다른 타인을 찾으러 쉽게 떠날 것이다. 다만 상대의 요청을 거절할 시 단순히 “싫은데요”, “혼자 해결하세요”, “바빠요” 등의 짤막한 답변은 금물이다. 이는 부탁을 어렵사리 요청한 상대에게도 큰 실례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늘 정중한 태도로 거절 후 그 이유를 함께 말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친구와의 선약이 있습니다”, “저도 지금 맡고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세 번째, 후일을 기약한다. 이는 상대에게 지금은 당신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다음에는 들어줄 용의가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 표현이다. 물론 후일에도 당신의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는 부탁을 거절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상대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헤아려주는 정중한 표현이므로 거절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이 단계를 꼭 기억하자.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꼭 들어드릴게요”, “다음에는 제가 들어드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맺으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에 항상 주변인과의 유대관계가 중요하다. 그러나 나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유지해야 하는 관계라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나의 마음도 잘 지켜내면서 타인과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이야말로 평생에 걸친 숙제인 것 같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 속 ‘내 마음 지키기 연습’이 제대로 선행돼야 타인의 마음도 더 잘 헤아릴 수 있고 그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참고문헌
이노우에 도모스케, 「속마음 들키지 않고 할 말 다 하는 심리 대화술」, 오시연, 밀리언서재, 2023
기사 다시보기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amy_101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