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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서정원 ]


여러분은 혹시 ‘절대 음감’을 갖고 계신가요? 절대 음감은 소리를 듣고 무슨 음계인지 비교 없이 파악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모차르트는 이 절대음감을 가지고 교황청에서 130년 동안 유출이 금지되어 온 성가를 외워가서 악보로 옮긴 일화가 있는데요, 이를 가지고 누군가는 인류 최초의 음원 불법 복제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당시 모차르트의 나이는 열네 살에 불과했습니다. 인구의 약 0.01% 정도만이 이러한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절대음감은 모차르트 같이 신동으로 태어난 사람만이 유전자적으로 타고난 능력일까요?


그 답은 ‘아니다’입니다. 우리의 뇌는 처음부터 유전자적으로 완성된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경험하면서 스스로를 형성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절대음감 또한 유전자와 경험이 합쳐진 산물입니다. 만 3세에서 5세 정도의 시기에 악기와 같은 음악적인 훈련을 경험한다면 절대음감 능력이 발달한다고 합니다. 즉, 뇌 발달 과정의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감각 경험을 한다면 해당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뇌 발달이 특정 경험의 영향을 가장 민감하게 받는 시기를 민감기(sensitive period)라고 합니다.


이러한 발달은 뇌의 대표적인 특징인 ‘신경 가소성’으로 인한 것 입니다. 신경 가소성은 <특정 유전자형의 발현이, 특정한 환경 요인을 따라, 특정 방향으로 변화하는 성질>입니다. 앞서 말한 절대음감은 음악적 훈련이 이루어지는 환경에서, 음감 유전자형이 발현된 결과입니다. 유전자형은 필요조건일 순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리 음감 유전자를 지닌 음악적 천재로 태어났어도 그와 관련된 경험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 능력을 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음감을 넘어서는 기회를 가졌던 우리



사실 우리는 절대음감을 더 넘어서는 능력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절대음감의 기준을 넘어서는 경험만 뒤따랐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절대음감이라 부르는 능력은 서양음악의 7음계를 기준으로 합니다. 7음계 사이사이의 반음까지 포함한다면 한 옥타브 당 최대 12개의 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 12개의 음 사이사이에 있는 음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에 대한 예시가 바로 인도음악입니다. 인도 음악은 옥타브를 22단계로 나누는 슈루티(Shrutis) 음계를 기반으로 한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음악적 뇌 발달의 민감기에 인도의 음악을 경험했다면? 어쩌면 우리는 기존의 절대음감보다 훨씬 세분화된 절대음감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서양적 의미의) 절대음감은 서양 음악만 고정되어서 경험했기 때문에 뇌 또한 편협하게 발달된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아동기부터 서양 음악에 노출된 사람은 동양음악을 처음 접하면 독특한 것으로, 심지어는 비음악적으로 여긴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합니다. 

 


편협한 경험은 편협한 발달로 이어진다


영아의 발달 능력을 측정하는 고진폭 빨기(sucking rate) 검사 장면

이러한 편협한 발달의 사례는 민감기가 상대적으로 짧은, 언어 발달의 측면에서 잘 나타납니다. 일본 사람들은 영어의 L 발음과 R 발음을 청각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는 L과 R 발음을 구분하지 않는 언어적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아직 언어적 환경에 노출이 덜 된 생후 4개월 된 일본 영아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이들은 R과 L 발음을 청각적으로 구별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12개월 된 영아들은 대부분 발음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문화권의 사례도 있습니다. 영어권 6개월 영아들은 힌디어의 음절을 구별할 수 있었으나, 10~12개월 영아들은 대부분 발음을 구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R 소리와 L 소리의 주파수가 귀 속에 들어와 달팽이관이 반응하더라도, 정작 뇌의 청각 영역에 R과 L 소리의 신경회로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두 소리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앞선 실험의 12개월 영아들은 특정 발음을 들을 수 없었던 언어환경으로 인해 청각 영역의 신경회로를 발달시킬 민감기를 놓친 것입니다. 

 


민감기보다 중요한 건 가소성



이미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뇌 발달 시기를 놓친 것 같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뇌의 여러 영역은 저마다 다른 가소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뇌신경망은 변화에 고집스럽습니다. 앞서 말한 청각적인 언어습득과 관련된 뇌 영역이 대표적입니다. 반면에 변화에 유연한 뇌신경망도 있습니다. 몸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운동영역과 체성감각영역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유연성 덕분에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새로운 운동을 보다 무리 없이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신체 일부를 사고로 잃어 의족을 장착하거나 휠체어를 타는 경우에도, 뇌는 이러한 장치에 맞추어 스스로를 재편할 수 있습니다. 몇 달 동안 점자 읽는 법을 배우고 나면 집게 손가락의 촉각을 담당하는 뇌영역이 커지고, 저글링을 배운다면 시각을 담당하는 영역이 커질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뇌가 굳은 것 같다고 상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소성이 감소하는 속도는 뇌의 각 기능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직 변화시킬 수 있는 뇌영역은 남아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뇌는 철저하게 ‘경험 의존적’이라는 점입니다. 뇌에는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반영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폭넓게 경험해 볼수록, 우리 능력은 더욱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 변화될 나의 가소성을 믿고,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료출처>

Bryan Kolb, lan Q. Whishaw, G. Campbell Teskey. (2018). 뇌와 행동의 기초(5판). 시그마프레스

David Eagleman.(2022).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알에이치코리아

Levitin, D. J., & Rogers, S. E. (2005). Absolute pitch: perception, coding, and controversies.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9(1), 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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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3-13 14: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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