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희
[The Psychology Times=박한희 ]
최근 몇 년 간, 스토킹 관련 보도 및 게시물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에 대한 댓글은 다양한 반응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해자를 비난하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반면, 일부의 사람들은 피해자의 행실을 탓한다. 피해자가 소극적으로 행동한 것이 가해자가 스토킹을 하게 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연인 관계 혹은 전 연인 관계 간의 스토킹은 단순히 치정 문제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가해자가 스토킹을 시작하는 이유는 피해자의 소극적인 태도인 것인가? 혹은 열렬한 사랑인 것인가? 최근 대인관계 문제와 관련된 연구를 보면, ‘내면화된 수치심’이 자주 등장한다. 이 내면화된 수치심이 스토킹의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내면화된 수치심
흔히 수치심은 ‘순간적으로 느끼는 부끄러움’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수치심 중에서도 상태수치심에 해당한다. 심리학에서 수치심은 상태수치심과 특질수치심으로 나뉜다. 특정한 상황에 대한 일시적 반응인 상태수치심과 달리, 특질 수치심은 개인의 성격에 내면화된 전반적인 자아이며 내면화된 수치심은 이에 해당한다. 구체적 상황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닌, 자기 존재에 대한 공허감을 포함하며 자신을 부적절하고 무력하게 인식하는 감정이다.
내면화된 수치심이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다양하다. 해당 수치심이 높을수록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예민하며 대인관계에 과도한 집착을 하는 동시에, 실수하면 안 된다는 압박으로 인해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과도한 예민과 불안은 분노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자신을 향해 있던 적대감이 다른 사람을 향해 표출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수치심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에게 공격성을 표출할 수 있기에,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높은 상관이 있다.
명지대 심리재활학과의 연구에선 내면화된 수치심이 높을수록 스스로가 느끼는 부정적인 평가를 타인 또한 가질 것이라 두려워하며, 그로 인한 관계상의 거부를 당할 것이라 예상한다고 한다. 거절 혹은 이별 이후, 거부당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면화하여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며 정서적 공감이 저해되어 지속적으로 상대방이 원치 않는 행동을 저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스토킹이 되기까지
이에 내면화된 수치심이 특히 스토킹의 원인으로 작용될 수 있을지, 스토킹 사건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하여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의 연구에 따르면, 내면화된 수치심은 스토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피해자 비난과 관련이 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비난하는 경향이 ‘피해자의 행동 역시 문제가 있기에 스토킹을 촉발했다’는 판단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타인에 대한 낮은 공감은 피해자에 대한 낮은 공감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경향들은 가해자가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여 심각한 스토킹 사건을 유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자신이 한 평범한 이별이 누군가의 수치심을 유발하고, 분노와 비난을 터뜨리고, 지속적인 괴롭힘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엔 피해자의 행동에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스토킹의 시작점엔 피해자의 태도 혹은 사랑을 넘어, 훨씬 더 내적이고 복잡한 원인이 존재하기도 한다.
해결이 되기까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사랑하면 그럴 수 있다.’라는 말은 이제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다.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는 건강한 마음가짐이 중요해졌다. 더불어 스토킹 사건에 대한 가벼운 인식 역시 변해야 할 때가 왔다. 어느 날 갑자기 피해자가 될 수도, 사랑이라 믿었던 행동이 스토킹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스토킹은 향후 살인이나 심각한 폭력을 수반할 수 있을 만큼의 위험한 범죄이다. 사랑으로는 그 위험성을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양한 양상의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더 유형화된 연구와 이에 발맞춘 국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 개인도 해결에 동참할 수 있을까? 개인들의 피해자를 향한 공감과 사건에 대한 관심 역시 그 해결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장하진, 홍혜영. (2023). 초기성인기 내면화된 수치심이 사회불안에 미치는 영향 - 거부민감성과 완벽주의적 자기제시의 매개효과 -. 상담학연구, 24(3), 109-130.
조혜민, 박지선. (2022). 스토커-피해자 관계에 따른 사건 판단 차이: 내면화된 수치심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한국심리학회지:법, 13(3), 20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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