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
[The Psychology Times=황선미 ]
지금은 종영된 방송이지만 SBS의 <정글의 법칙>을 즐겨 보았다. 방송을 통해 배운 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야생에서 텐트를 칠 때는 바닥의 습기를 차단하는 게 우선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불의 중요성이다. 방송에서는 종종 원시적인 방식으로 불을 피우는 장면이 나왔었다. 나무 판 위에 불이 잘 붙을만한 재료들을 얹고 나무 막대기를 돌려 불씨를 일으키는 작업은 보기만 해도 경이로웠다.
원시적인 방식으로 불을 붙이기 위해 가장 힘든 일은 첫 불씨를 만드는 일이다. 마찰 열이 불로 바뀌는 질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무기력을 치료하기 위한 과정에서 가장 힘든 일 역시 익숙한 정지 패턴을 깨기 위한 첫 움직임이다. 운동 에너지에서 열을 뽑아내는 힘. 정지된 상태를 움직임으로 만드는 내면의 힘.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힘을 ‘주도성’이라고 부른다. 에릭 에릭슨이 말한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세 번째로 가꾸어야 하는 능력이다.
1. 주도성은 시작하는 능력이다
주도성의 영어단어 initiative는 그 자체로 시작하다(to initiate)는 동사를 품고 있다. initiative가 주도성 또는 결단력으로 해석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주도성은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추진하는 성격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에릭슨 발달 이론의 두 번째 단계인 자율성과 세 번째 단계인 주도성을 혼용하는 경우를 보는데, 자율성이 어떤 일을 자기 방식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주도성은 그보다 한 단계 나아가서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는 능력이다.
가령 놀이기의 어린이는 그림을 그리다가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피아노를 연습한 지 몇 분이 되지 않아 건반 위에 인형을 앉히고 역할 놀이를 하곤 한다. 어린이의 놀이 변덕은 자율적으로 놀잇감을 선택하고, 자발적으로 끝내며, 능동적으로 다른 놀잇감의 세계로 들어가는 주도성의 연습 현장인 셈이다.
2. 주도성은 먼저 나서는 능력이다
한밤 중 불을 켜야 할 때 남편과 아내 중 누가 먼저 일어나서 불을 켤까요?
정답은 더 성숙한 사람입니다.
뼈가 있는 농담이다. 농담 속에 등장하는 ‘성숙’이란 기꺼이 먼저 일어나서 행동하는 주도적인 사람의 특성을 가리킨다. 주도성, 이니셔티브(initiative)는 그간 정책이나 일의 심리학 분야의 주제로 여겨졌는데 그도 그럴 것이 목표를 설정하고, 정책을 제안하고, 타인과 다르게 생각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갖춘 사람은 그 자체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연구자의 관점에서 볼 때 주도성은 일과 관계를 더불어 잘 맺기 위한 삶의 기술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에서는 한 발자국 다가가는 사람이 있는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상대가 다가오면 멀찌감치 물러나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1) 먼저 다가가거나, 2) 신호가 오면 적극적으로 반응하거나, 3) 적어도 물러나지 않는 주도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3. 주도성은 리더의 자세이다
“아니, 그렇게 힘을 아껴서 어디에 쓰시려고요?”
상담실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직면해야 할 때, 물러나는 나 자신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 말을 자주 한다. 우리는 교육을 잘 받은 현대인으로서 자율성을 충분히 발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개성과 취향을 키워 멋있게 사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인생에서 중요한 일을 시작하고 초대하는 주도성도 발휘하며 사는가?의 질문을 묻고 스스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여러분이 기꺼이 마음을 열고 함께 하기를 제안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이미 리더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리더가 아끼지 않고 힘을 쓸 때 변화의 불씨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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