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아
[The Psychology Times=신지아 ]
내가 보는 게 진짜일까?
여러분은 귀신의 존재를 믿나요? 저는 귀신을 믿기도 하고 실제로 본 적도 있습니다. 때는 초등학교 3학년,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바로 옆 안방을 쳐다보았죠. 그런데 웬걸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여자 귀신이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 주방에 있던 엄마에게 달려가 말하니 "그럴 리가!"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전까지 귀신은 존재한다 믿고 있었기에 이 사건 이후로 확신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영화에서 보면 귀신이 사람 몸에 들어가 인간을 해코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원한이 쌓인 귀신은 악령이 되어 인간인 척 속이기도 하죠. 본 사람은 많지만,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는 존재인 귀신은 있다고 믿어도 되는 걸까요? 귀신을 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이러한 환영을 보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보는 것이 가짜라면
현재의 과학으로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심령현상을 겪는 이유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원인은 바로 '뇌'이죠. 환청과 환영을 경험하는 것은 조현병과 같은 의학적 원인과 관련됩니다. 로잔 연방기술 연구소의 올라프 블랑케 박사 및 제네바 대학병원 소속 신경학 전문가팀은 간질환자의 왼쪽 귀 인근 측후두엽 접합점에 전기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환자는 누군가 자신을 몰래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죠. 블랑케 박사는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망상증세를 보이는 까닭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환영을 보는 이유로 '가위눌림'을 이야기합니다. 정신이 깨어 있음에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이 경험합니다. 수면 마비라고 하며 렘수면 시 근육 마비가 각성한 상태인 것이죠. 2018년 <국제 응용 및 기초 의학 저널>에 실린 설문조사에 따르면 보통 사람의 최소 8%,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의 약 30%가 일생 중 최소 한 번은 이와 같은 수면 마비나 야간 몽유병 증상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때 몸이 공중에 뜨는 듯한 기분을 느끼거나 환각 증세를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와 다른 느낌이기 때문에 귀신을 보는 것이 이상한 상태가 아니죠.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16회 중
때론 힘들어서
사람들이 귀신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도 단순 호기심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이 또한 귀신이 있다고 믿는 '자기 암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골든스미스 런던대학교의 크리스 프렌치 심리학자는 "귀신을 보는 사람들은 자기 암시를 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착각을 만들기 쉬우므로 이것이 귀신을 보는 것에도 영향이 있다는 의미죠. 정신적 왜곡은 강렬하게 작동해 현실세계에서도 누군가를 가뿐하게 속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모호하고 연관성 없는 현상이나 자극이 나타나면 의미를 만들어 내려는 심리 과정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귀신을 만들어 본다고 합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트라우마'도 원인 중 하나입니다. 1971년 브리티시 의료저널 조사에서 웨일스와 잉글랜드에 거주하는 미망인 중 절반이 죽은 남편을 본 적 있다 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후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공포와 두려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을 주기도 합니다. 한 논문에 따르면 죽은 남편이나 아내, 자녀, 친구의 영혼과 만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마음의 치유를 받는다고 합니다.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서는 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제로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 근처에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정의하기 위해서죠. 연구팀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한 적 없는 참가자 48명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눈을 가린 참가자가 앞쪽 로봇의 손잡이 부분을 앞뒤로 움직이면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막대기 모양의 로봇이 따라 움직이며 등을 찌르는 것이죠. 즉 참가자의 손동작에 맞추어 등 쪽으로 동시에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연구팀은 로봇의 동기화에 약간의 지연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참가자 중 3분의 1은 '누군가'의 존재를 느꼈다 말했습니다. 또 유령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실험 결과에 따르면 참가자의 팔 움직임과 그에 따른 피드백 사이의 시공간적 불일치가 발생할 때, 다른 사람이 등을 만지고 있다는 착각을 생성해 이 괴리감을 해소한다고 풀이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때 안정감을 찾기 위해 귀신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는 말도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또 정신분석학에서는 귀신의 존재에 대해 굳이 부정하지 않습니다. 연세누리정신과 이호분 원장(정신과 전문의)은 "귀신을 보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보거나 무속인이 신내림을 받는 것도 정신적인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무당이 애기 목소리를 내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포지션(position: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위치시키는 것)' 개념과 관련됩니다.
당신이 어떤 것을 보든
역학과 민속학에서는 귀신을 기의 한 종류로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이 귀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지 실제 존재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특히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형태로 기가 등장한다고 하는데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면 눈 앞에 환영이 나타나는 것이 이같은 원리입니다.
때문에 누군가 귀신을 본다는 사실로 그 사람을 정신질환자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귀신도 응원의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뇌의 일시적 착오로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말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 어떤 존재가 있지는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사실 귀신을 통해 보고 싶고,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귀신을 보았다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지 말고 한 번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눈에 어떤 것이 보이든 우리는 응원합니다.
출처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과학향기 호러 특집] 우리가 귀신 보는 이유? 귀신을 ‘만들 수도’ 있다?", 2023.07.24
김종목 기자, "귀신(鬼神)이란 무엇인가… 원귀의 실재·자연현상·철학적 대상", 경향신문, 2010.07.20
정이안 기자, "귀신이 보이는 과학적 이유 <上>", 스푸트니크, 2020.11.03
[네이버 지식백과] 수면 마비 [sleep paralysis] (실험심리학용어사전, 2008., 곽호완, 박창호, 이태연, 김문수, 진영선)
임영주 기자, "귀신은 있는가?", 경향신문, 200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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