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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투 노멀, 트라우마를 노래하다 - 2년만에 한국 관객을 찾은 '넥스트 투 노멀' - 트라우마가 한 가족에게 남긴 것
  • 기사등록 2024-04-12 20: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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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기훈 ]


엠피앤 컴퍼니 제공, 넥스트 투 노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 돌아왔다. 2008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막을 올려 이듬해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휩쓴 본 작품은 2011년 이후 5번째로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그간 박칼린, 남경주 등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거쳐갔던 <넥스트 투 노멀>의 이번 공연에는 뛰어난 가창력으로 검증된 배우라는 호평을 받는 최정원 배우가 주연 '다이애나' 역으로 새롭게 합류했다. 작은 규모에도 흡입력있는 각본과 음악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본 작품은 정신질환을 앓는 여성과 주변 가족들이 겪는 치료의 과정, 그리고 가족 모두가 공유하는 트라우마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가정으로 보이지만 다이애나는 딸에게 ‘아버지와 섹스를 하러 가겠다’고 말하고 빵 없는 샌드위치를 만드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계속한다. 또한 다이애나의 관심은 아들 ‘게이브’에게 쏠려있고 남편 ‘댄’은 그런 아내의 치료에 집중하는 동안 딸 ‘나탈리’는 부모로부터 소외되어간다.  다이애나는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 및 상담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증상이 호전되어가던 중 다이애나가 복용하던 약물을 버리고 임의로 치료를 중단하는데다 나탈리는 어머니의 항우울제를 몰래 먹는 것을 시작으로 약물과 향락에 빠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충격적이 사실이 밝혀지는데, 바로 아들 게이브가 사실 17년 전 1살을 넘기지 못하고 장폐색으로 죽었으며 다이애나는 그의 환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게이브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 극은 다이애나의 치료 과정을 조명한다. 다이애나는 최면요법을 비롯한 여러 치료법을 시도하지만 결국에는 게이브의 환상에 의해 자살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여러 시도에도 차도가 없자 댄과 의료진은 환자 본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기충격 치료법을 시도하고 이로 인해 기억을 잃은 다이애나의 치료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정신질환자 그리고 그 가족



극중 게이브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가장 널리 통용되는 가설은 다이애나 마음 속의 트라우마 자체를 표현했다는 해석이다. 다이애나가 아들에게 가지고 있는 죄책감, 그리움, 남편에 대한 원망 등의 감정이 게이브라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다이애나가 임의로 치료를 중단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뮤지컬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게이브는 그 모습을 지속적으로 드러내지만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대상은 다이애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시간은 게이브와 다이애나만 공유하는 집의 맨 위층에서 지내며 다른 가족이 오면 숨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다이애나가 없는 장면에서 댄이 게이브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한 묘사를 보여 가족 모두가 공유하는 트라우마를 형상화했다는 해석 또한 제기된다. 전기충격 치료를 받은 후 다이애나는 게이브에 대한 기억을 잃었지만 마음 속 어딘가 기억하지 못하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 가족과 주변인은 게이브에 관한 아픈 기억을 끝까지 숨기려 했으나 결국 다이애나는 게이브에 대한 기억을 되찾게 되고 이는 극 종반부에 가족을 떠나는 충격적인 전개로 이르는 도화선이 된다. 


정신과적 질환과 극복을 그려낸 매체는 여럿 있었지만 <넥스트 투 노멀>이 유독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환자 본인 뿐만 아니라 주변인의 아픔 또한 표현했기 때문이다. 남편 ‘댄’은 다이애나의 가정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치료에 전념하지만 결혼생활과 치료과정에 회의감을 느끼고 결국에는 본인 또한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태어날 때 부터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를 지켜본 나탈리는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라 우울증과 편집증적 행동을 보이며 외부 요인에 취약해 빠르게 약물에 중독된다. 정신질환자의 치료 과정에 있어서 본인 못지않게 주변인, 특히 환자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자녀에 대한 심리진단이 동반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정신병적 증세를 지켜본 자식에게 또다른 트라우마가 생성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트라우마의 극복, 회피만으로는 되지 않아


 

이 작품의 결말은 분명 개운하지 않다. 다이애나는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다 결국 가족을 떠났고 남겨진 가족은 다시 상처를 입는다. 정신질환의 치료가 여느 영화처럼 기적적으로 완성되지 않는 현실을 다소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가족에게는 희망이 있다. 집을 떠나겠다고 결심한 다이애나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이제껏 보듬어주지 못한 나탈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의 삶을 응원해주는 일이었다. 나탈리는 아내가 사라진 집을 황망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에게 둘이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며 ‘불을 켠다’. 


무엇보다 다이애나는 마지막까지 치료 의지를 잃지 않았고 댄은 비로소 본인의 트라우마를 솔직하게 마주했다. 자식의 죽음은 부모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가장인 댄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중압감과 아내의 치료에 전념하며 이 상처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가 간직하던 아들의 유품 오르골을 깨트린 이후로 댄 또한 아들에 대한 기억이 가슴 한켠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마침내 게이브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트라우마를 회피하지 않고 이를 직면하고 주변 사람과 나눔으로써 비로소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 평범하지 않고 평범으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나탈리는 평범 그 주변 어딘가에 있어도 행복할 것이라 말한다. 그것이 이 가족이 꿈꾸는 '넥스트 투 노멀'일 것이다.




참고문헌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3월 개막.엠피엔컴퍼니 제공.더뮤지컬.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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