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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을 치고도 1루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 영화 <머니볼> 속 심리학
  • 기사등록 2024-04-03 00: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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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진현 ]



방망이로 땅에 선을 긋는다. 헬멧을 벗었다 냄새를 맡고 다시 쓴다. 장갑 벨크로를 뗐다 붙인다. 방망이를 빙빙 돌리다 겨우내 투수를 바라보고 자세를 잡는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수많은 루틴 중 일부이다. 관중들에게는 하나의 볼거리, 타 선수들에게는 모방 대상이지만, 해당 선수에게는 다음 공을 온전한 컨디션으로 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전통이다. 


영화 <머니볼>은 이런 루틴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빌리 빈(브래드 피트)이 스스로의 루틴, 구단의 루틴, 그리고 나아가 야구계 전체의 루틴과 전통을 깨버리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담은 이 영화는 이동진 영화평론가에게 “내가 본 최고의 야구(소재)영화”라는 극찬을 들으며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은 영화이다. 기존의 선수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온전히 데이터를 통해 여러 문제로 외면받던 선수들의 숨겨진 가치를 찾는 <머니볼>의 이야기는 하나의 혁신을 이루는 고독하고도 두렵지만 용감하고 의미있는 순간을 담는다.




관습이라는 루틴을 따르는 이유


<머니볼> 속 관습은 빌리 빈과 함께 일하는 수많은 스카우터들로 형상화된다. 죄다 보청기를 끼고 주름졌다. 자신들에게는 수십년간의 경험과 야구판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지혜가 있다며 데이터 기반 야구를 하려는 빌리 빈에게 반대표를 들이민다. 그 방식대로 계속 진행한다면 근본적인 자본 차이로 다른 팀에게 질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그간 자신들이 해왔던 운영방식을 고수한다.



이러한 전통을 따르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전통을 깼을 경우에 대한 부정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의과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전통을 따름으로써 안전해지고 생존가능성이 높아진다 믿기에 전통을 유지하고자 한다고 한다. <머니볼> 속 빌리 빈의 대립자 중 하나인 감독 아트 하우의 대사들이 이런 성향을 잘 드러낸다. 아트 하우가 빌리 빈이 원하는 방식대로 팀을 운영하지 않자 빌리 빈이 그를 추궁한다. 이에 대해 아트 하우는 “난 정석대로 할거야. 그래야 잘려도 딴데서 떳떳이 면접 보지”라며 자신의 생계에 대한 걱정이 관습을 따르는 이유라는 사실을 표한다. 


영화 속에서 이런 스카우터들과 감독의 루틴과 전통을 따르는 모습은 고착화된 야구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사실 영화에서 가장 대표적인 루틴은 빌리 빈이 자기 팀이 치르고 있는 경기를 절대 직접 보러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징크스이자 루틴으로, 자신이 그 경기를 보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빌리 빈으로 하여금 경기를 보지 않게 한다.


이러한 빌리 빈의 모습은 경기의 승리 여부라는 불확실성이 넘치는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제공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스튜어트 바이즈에 따르면 이런 루틴은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어느정도 해소해주어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막중한 책임을 지닌 빌리 빈에게 이러한 안정감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야구판을 뒤집다


하지만 카롤린스카 의과대학의 동일 연구는 전통이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관습을 더 쉽게 벗어난다고 하기도 했다. 빌리 빈이 그러한 유형이다. 사실 그는 어릴 때 전례없는 야구 유망주였다. 실력도 부족한 곳이 없을 뿐더러 피지컬마저 좋았다. 그러나 그는 메이저리그라는 벽에서 좌절해버리고 단장이 된다. 


이런 실패의 기억은 그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자신의 가치를 잘못 판단한 스카우트들을 원망하고, 그런 스카우트들을 일궈낸 야구판의 전통을 원망한다. 빌리 빈은 야구계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스카우트와 마찬가지로 ‘정석적인’ 구단 운영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어릴적 경험을 통해 그런 관습들은 모두 무의미하며 팀을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이를 타파한다.



예일대에서 갓 졸업하여 야구계에 막 발을 디딘 피터 브랜드와 빌리 빈은 둘이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뒤집어 놓는다. 그들은 머니볼 이론을 바탕으로 온전히 출루율로만 선수들의 가치를 매기고 나이, 얼굴, 투구폼과 같은 다른 조건들은 깡그리 무시한다. 그들의 지론을 성공시키기 위해 유망한 선수들을 트레이드하는 것도 서슴치 않고, 이러한 행동들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며 우직하게 자신들의 뜻을 밀고 나간다.




거대한 야구장에 홀로 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고통스럽다. 언론과 관중으로부터 욕을 듣고, 같은 팀 스카우터들과 감독에게도 무시당한다. 관습을 바꾸는 것은 변화다. 유의미한 변화는 홀로 달라야 이루어지기에 그 외 모두의 질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질타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비롯된다.


상담심리학자 로저 길은 이에 대해 어렸을 때 형성된 세상에 대한 인식과 그 틀은 갈수록 고착화되고, 이로 인해 변화를 받아들이기 더 힘들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 이룩했을 때 우리가 알던 모든 규칙과 신뢰감은 모두 사라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무지하다는 감각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이 두려움과 더불어 우리의 손실회피편향은 우리로 하여금 변화로부터 비롯되는 손실을 피하도록 한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진행한 한 연구에서는 논리적으로는 같은 선택지라도 손실을 피하는 선택을 내린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죽을 예정인 600명 중 200명을 살리는 것과, 400명만 죽이는 것은 같은 결과로 이어지지만, 사람들은 200명을 살리기를 택한다는 것이다. 변화는 그동안 자신이 쌓아왔던 시간과 노력들이 사라질 것 같다는 착각을 심는다. 변화는 이러한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변화를 싫어하게 만든다. <머니볼> 속 야구 관계자들이 모두 빌리 빈의 운영 방식을 응원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 변화가 두려움을 심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 빌리 빈은 대부분 혼자 등장한다. 어둠 속에서 홀로 라디오를 듣거나, 헬스장에서 경기 중계를 들으며 땀을 흘린다. 광활한 야구 경기장에서 홀로 거닌다. 변화는 외롭고 고독한 것이다.




이 공은 담장을 넘어갑니다


영화 속 빌리 빈은 딸의 부추김에 못이겨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20연승을 할수도 있는 경기장으로 달려간다. 11점이라는 엄청난 점수차로 이기고 있던 오클랜드는 빌리 빈이 와서일까, 역전 위기에 놓인다. 그렇게 빌리 빈의 징크스가 증명되려고 하자, 빌리 빈은 서둘러 경기장을 나온다. 불안에 떨며 마지막 이닝으로 간다. 영화 속 빌리 빈이 그토록 응원하고 영화 속 머니볼 이론이 적용된 대표로 볼 수 있는 스콧 해터버그가 대타로 나온다. 그리고 거대한 홈런을 쳐낸다.



이 홈런은 빌리 빈의 개인적인 징크스가 깨진 순간이자, 머니볼 이론을 증명시킨 위대한 기록이며, 야구계가 뒤집어진 계기가 된다. 


영화는 검은 화면에 “자신이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우린 놀랄만큼 무지하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끝날 무렵 피터 브랜드는 빌리 빈에게 홈런을 쳐놓고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1루에서 더 뛰지 못하고 있는 선수의 영상을 보여준다. 


우리는 일상을 두려움에 휘감겨 살아간다. 우리가 평생 해온 인생이라는 게임을 어떻게 운영할지 완벽히 아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사실은 모두가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홈런을 쳤을지도, 20연승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젠 방망이로 땅에 선을 그만 긋고 벨크로를 그만 뗐다 붙였다 할 때가 됐다. 공은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 직구로 날아온다. 배트를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



참고문헌

Lindström, B., & Olsson, A. (2015). Mechanisms of social avoidance learning can explain the emergence of adaptive and arbitrary behavioral traditions in humans.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144(3), 688–703. https://doi.org/10.1037/xge0000071 

Colino, S. (2016, October 26). How Superstitions Are Affecting Your Behavior. U.S. News & World Report. https://health.usnews.com/wellness/mind/articles/2016-10-26/how-superstitions-are-affecting-your-behavior 

Dachis, A. (2013, June 24). Why You’re So Afraid of Change (and What You Can Do About It). Lifehacker. https://lifehacker.com/why-youre-so-afraid-of-change-and-what-you-can-do-abou-5982622 

Kahneman, D., & Tversky, A. (1979). Prospect theory: An analysis of decision under risk. Econometrica, 47(2), 263. https://doi.org/10.2307/191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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