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한국심리학신문=김진현 ]
매일 아침 일어나 아내에게 키스를 하고 커피를 한 잔 하다 버스를 운전하러 간다. 매일 같은 경로를 달리고 나서 퇴근하고는 맥주 한 잔을 하러 반려견과 함께 동네 바로 향한다. 영화 <패터슨>의 줄거리이다. 월요일부터 다음주 월요일까지, 주인공 패터슨은 이 삶을 반복한다. 이러한 지루함은 삶에 대한 권태를 불러일으키기 쉽상이다. 우리도 비단 매일 같은 날들을 반복한다면 무기력해지고 무감각해질 것이 뻔하다.
그러나 <패터슨>은 이 반복을 시적으로 담아낸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통해 반복과 운율을 만들어내 우리가 지루하다 느끼며 살아가는 바로 그 삶이 시적이라는 감상을 남긴다는 것이다. 같은 매일을 조금씩 변주하며 살아가는 패터슨은 그 매일을 조금씩 다르게 즐긴다. 동네 술집으로 가는 산책길에 빨래방에서 랩하는 아저씨를 칭찬하기도, 운전하는 버스 속 승객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실실 웃기도 한다.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지만 그 속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들은 매일매일을 새롭고 아름답도록 한다.
매일매일 반복하는 삶은 지루하다
분명 우리는 매일매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대체 왜 어느새 우리는 자극을 찾아 휴대폰을 켜고 쇼츠를 보고 있는가. 그 이유는 자명하다. 매일매일 반복하는 삶은 지루하다. 그 지루함 뒤에는 자극의 부재가 있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극은 있어도 이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언제든지 뭔가에 주의를 기울이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집중력과 뇌가 바라는 주의력 간에 차이가 생길 때 비로소 지루함이라는 현상으로 이 간극이 표현된다. 그래서 지루할 때 더 흥미로운 것을 찾아, 자극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지루함을 결정하는 데에는 자극의 유무 외에도 다른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바로 의미의 유무이다. 미국 플로리다대학 에린 웨스트게이트 교수에 따르면 지루함을 느끼는 데에는 의미의 부재가 영향이 크다. 그래서 지루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반복적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기만 하면 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집중력이 올랐고 지루함은 눈에 띄게 감소한다. 이는 곧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에는 지루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삶이 지루한 이유는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흥미롭고 즐거운 삶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삶을 말 그대로 매일 살아가기에 자극에 익숙해지고, 그 의미는 점차 퇴색된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따분해진다.
일상이 삶의 대부분인 이유
그 지루한 일상은 안타깝게도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회심리학자 하인츨만의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대학생들에게 하루 6번씩 무작위하게 알람을 보냈다. 해당 알람을 받을 때마다 학생들은 당시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행위가 매일 반복되는 루틴인지, 당시의 기분 상태, 그리고 삶의 의미를 느끼고 있는지와 같은 질문들에 대답했다.
연구 결과는 꽤 놀랍다. 알람이 가는 순간에 학생이 하고 있던 행동이 매일 반복되는 행위일 때, 그 학생이 당시에 느끼는 삶의 의미와 가치는 가장 높았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속될 때, 그들은 가장 유의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일상들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매일 보는 해지만, 그럼에도 내일 볼 해가 아름다울 이유
이렇게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 감사한 일이기도, 유의미한 일인 것을 알고 있더라도 무언가 특별한 일이 기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반면 내일의 일상이 딱히 기대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일날과 같은 기념비적인 하루의 일상은 모두 사진으로든, 글로든 기록하지만, 평소와 같은 친구들과의 대화는 기록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일상의 즐거움을 다소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 연구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타임캡슐에 일상의 기록을 담아두게 하였다. 얼마 뒤 타임캡슐을 열어보았을 때 얼마나 흥미로워할지에 대한 예상 점수와 실제로 다시 열어봤을 때 느낀 즐거움을 매긴 점수를 비교했을 때, 예상 점수가 실제 점수를 밑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상의 순간들을 재발견할 때, 그 즐거움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패터슨> 속 순간들과 삽입된 시들이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패터슨이 쓴 시들은 그다지 의미있지도, 대단해보이지도 않지만, 소소한 일상 속 소재들을 아름답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영화와 평행선을 달린다. 성냥개비 박스의 디자인이 확성기 모양인 점이나, 노래의 한 구절만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는 사실들을 담은 시들은 다름 아니라 일상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에 더욱 특별하다.
우리는 매일 시인이다
어제는 곧 오늘이고, 오늘은 곧 내일이다. 삶은 반복하기에 지루하지만, 또 반복하기에 그 미묘한 변화들이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패터슨>은 단순히 지루한 영화가 아니라,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주면서 또 패터슨이 6시 10분이 아닌 30분에 일어났을 때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영화가 된다. 우리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차이를 잘 모를지도 모르지만, 시인들은 그 무의미한 차이를 유의미한 것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매일 삶이라는 시를 쓰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에 무지한 채 매일을 살아간다. 눈을 뜨자.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반복하고, 일주일은 운율을 만들고, 삶은 시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시인이다.
참고문헌
동아사이언스. (2022, March 5).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바빠도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이유.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52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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