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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진현 ]


*아래 글은 영화 <미지수>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상실은 마음에 빈자리를 만든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정서의 기반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5월 8일 개봉하는 영화 <미지수>는 그런 상실에서 비롯되는 슬픔과 애도의 정서를 담고 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겪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되는 고통과 일상의 폭풍은 공통된 정서이다. <미지수>는 이 감정을 다차원적이고 실험적으로 담아낸다.


영화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삶을 보여준다. 6년간 만난 남자친구인 우주와 헤어진 지수, 사람을 죽인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는 우주, 비만 오면 극도로 예민해지는 기완, 그리고 베란다에 장총을 두고 일상을 살아가는 신애까지. 그리고 이 모두의 삶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이어져있다.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 밝혀지는 이 비밀은 바로 사고로 인한 우주의 죽음이다.




고인을 언제까지나 품고 있다는 것


아끼는 사람의 죽음은 충격적이다. 그 이후에 애도하고 비탄에 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증상이다. 그러나 가끔 <미지수>의 등장인물들처럼 그런 애도가 오래 지속되는 현상이 나타날 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정상적인 범주의 애도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지속적 애도 장애 또는 복합비애를 진단한다. 지속적 애도 장애는 비교적 최근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진단 기준으로 삼는 DSM-5에 포함된 현상이다. 지속적 애도 장애의 증상은 크게 외상성 고통분리 고통으로 나뉜다. 외상성 고통에는 분노나 죄책감 등 트라우마로 인해 생기는 고통이 포함되며, 분리 고통에는 고인과의 관계가 상실됨으로써 생기는 그리움이나 갈망이 있다. 이러한 증상 자체는 당연히 느낄 수 있으나, 이것이 1년 이상 지속된다면 지속적 애도 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미지수> 속 사건들은 우주가 죽고 꽤 시간이 지난 뒤의 일로 보인다. 이에 반해 등장인물들은 여전히 끔찍한 고통과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고 있다. 지수는 주변사람들과 전과 같은 관계를 이어갈 수 없고, 기완은 일상을 살아가지 못한다. 이런 증상들은 지속적 애도 장애의 일부이다. 또한 지속적 애도 장애는 아이나 연인을 잃은 사람에게 더 흔히 발견되며, 또한 예상치 못한 사고나 자살 등의 이유로 사망했을 때 더 크게 발현된다. <미지수>의 우주는 비오는 날 배달을 가다 사고로 사망한다. 그리하여 그의 어머니인 신애, 연인인 지수, 그리고 배달을 보냈던 기완은 모두 순식간에 지속적 애도 장애가 발현되기 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미지수> 속 지속적 애도 장애


그렇다면 지속적 애도 장애는 영화 속에서 어떻게 표현될까? 우선 지수의 경우에는, 우주가 죽은지 2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 자신의 집을 찾아오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렇게 찾아온 집 안에 계속 묵고, 밖에 나가려 하면 지수는 집에 가만히 있으라 한다. 우주에 대한 그리움과 애도의 마음이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장면들이다. 



기완은 매일매일 죄책감과 싸운다. 비오는 날 우주에게 억지로 배달을 보냈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 생각하며 전화하며 배달하는 기사에게는 배달하지 말라고 화를 내고, 비오는 날에는 손님에게 배달이 안 된다고 전달한다. 매일 밤 우주를 유영하거나 TV에 사고 당시 뉴스가 나오는 꿈을 꾸고 식은땀 흘리며 잠에서 깬다. 죄책감은 지속적 애도 장애의 대표적 증상이며, 기완은 그 고통 속에 여전히 살아간다.


또한 말 그대로 전쟁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바로 우주의 어머니, 신애다. 신애는 우주의 방을 사망 당시 그대로 두고 있다. 그러다 괴리감 드는 한 장면에서 신애는 베란다에서 총을 들고 무형의 적과 싸운다. 무너져가는 우주와 자신의 세계를 무력으로서라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애도라는 또다른 죽음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애도의 과정은 길고 고독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은 대부분 극심한 외로움을 토로한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 한 명이 줄었다는 점에서 외로움이 찾아온다. 크루즈 사별 지원 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지원을 요청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같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사람이 없다”며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고인을 통해 알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너져내리고, 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에게 섣불리 먼저 연락하는 것의 부담감으로 인해 연락도 줄어든다. 이렇게 점차 주변 사람들로부터 단절되어 살아가게 되는데, 이는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한다.



영화 속에서는 이런 단절을 죽음을 통해 표현한다. 지수의 집을 찾아오는 우주는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며 욕조 속 시체를 설명한다. 그런데 그 시체는 다름 아니라 함께 친했던 영배와 우주의 어머니이다. 이를 보며 지수는 당황하지만 어머니의 꽃게탕을 못 먹는다는 상심이 더 커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들은 진짜 죽은 것이 아니다. 영배는 부활하기도 하고, 우주 어머니의 시체를 유기하려고 하던 순간 어머니한테서 전화도 온다. 이들의 죽음은 결국 그들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우주의 죽음으로 오랜 친구인 영배와의 추억도 다시는 찾아올 수 없게 되어버리고, 또 어머니의 꽃게탕은 먹지 못하게 된다.




상실 때문에 외로운 우리는 그 보편성으로 하나가 된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에는 주변 사람의 진심어린 정서적 지지와 슬픔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자기 개방적 시간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그런 시간을 갖게 된다.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에 다시금 스며든다. 지수는 우주 어머니와 함께 만나 꽃게탕을 먹고는 어머니에게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라 한다. 그리고 신애는 지수를 꼭 안아준다. 지수는 영배에게 우주와의 추억과 그리움이 담긴 액자 하나를 보내고, 기완은 아내 인선의 도움으로 과거와의 타협을 하게 된다.


<미지수>의 이돈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친구와 이별한 경험을 밝혔다. 그리고 그 경험은 무심코 흘려보냈던 세상의 수많은 참사 속 고통들을 인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수많은 상실과 이별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세상 속 고통의 수는 그 사람 수보다 많을 것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상실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미지수>는 우울하고 절망적인 감정을 남기는 영화가 아니라 왠지 기분 좋은 따뜻함을 남기는 작품이 된다.




참고문헌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n.d.). Prolonged Grief Disorder. Psychiatry.org - Prolonged Grief Disorder. https://www.psychiatry.org/patients-families/prolonged-grief-disorder 

사별 경험자의 복합비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2021). 보건사회연구, 41(3), 75–91. 

Grief and Loneliness. Cruse Bereavement Support. (2021, September 26). https://www.cruse.org.uk/understanding-grief/effects-of-grief/grief-and-loneliness/ 

YouTube. (2020, March 18). [생각연구소] 갑작스러운 상실에 대한 애도 심리학...슬픔을 건강하게 극복하는 방법은? / YTN 사이언스.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IqiIto_3vdI 

[문화IN] 이돈구 영화감독. CEO저널. (2023, May 10). https://www.ceojhn.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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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5-03 09: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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