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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가은 ]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했던 적이 있는가. 성인이 되면서 책임져야 할 것은 점점 많아지고, 불확실한 것들이 늘어나는 현실 속에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다. 아무런 걱정 없이 놀기만 했던 것 같은 그 시절, ‘추억’이 주는 만족감과 그 이면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추억


기억은 과거에 발생했던 일을 재인하는 것이고, 추억은 이에 긍정적인 감정이 더해진 것이다. 가족들과 바닷가에 갔던 추억,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학창 시절의 추억 등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다양한 형태의 추억이 존재한다. 20세기 이전에는 추억을 노스텔지어(Nostalgia)라고 부르며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행복해지게 해주는 긍정적인 것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한국 KIST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상황에서 행복한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는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이는 뇌 속에 있는 뇌교세포의 일종인 별세포 속 엔도르핀 수용체를 활성화한다. 기억과 관련된 세포들을 흥분시키는 물질이 분비되면서 장소, 상황과 함께 행복한 ‘감정’이 기억되는 것이다. 따라서 추억이 담긴 장소에 다시 방문하면 그 상황이 떠오름과 함께 행복한 감정이 다시 한번 유발된다. 비록 그날 보았던 풍경이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추억은 일차적으로 행복을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추억을 활용한 ‘레트로’ 마케팅도 선풍적인 인기


추억이라고 하면 사람들 각각의 개인적인 경험도 있겠지만, 그 시절을 살았던 세대가 함께 공유하는 세대 보편적 경험도 있다. 당대 유행했던 패션, 음식, 음악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그렇다. 이미 SNS 속에는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면서, 단순한 기성세대들의 추억이 아니라 ‘레트로’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큰 열풍을 끌며 품절 대란까지 끈 상품이 있다. 바로 삼립의 ‘포켓몬빵’이다. 빵을 구매하면 안에 들어있는 탈부착 스티커인 '띠부띠부씰'’을 모으고자 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어린 시절에 매일 사 먹던 빵이 다시 재출시되었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추세이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올해 포켓몬빵의 매출은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이 외에도 Y2K,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 등 현시대를 살아가는 X세대, MZ세대의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템들은 최근에 부흥하는 것이 아닌, 꽤 오래전부터 주목받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레트로 열풍에 대해 리서치 기업인 ‘트렌드모니터’에서 2023년 조사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약 80% 정도가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답변한 것을 알 수 있다. 레트로 마케팅이 노린 효과와 부합하는 순기능이다. 그러나 같은 조사의 질문인 ‘왜 사람들이 옛것을 그리워하는지’라는 질문에 대해 51.6%의 설문 참여자가 ‘현실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라고 답변한 것은 눈여겨봐야 하는 사실이다.



추억 회상, 버거운 현실로부터의 도피인가


과거라고 해서 항상 좋았던 것만이 아님을 이성적으로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대체로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잘 떠올리며 향수를 느낀다. 즉, 현실과 비교했을 때 과거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 추억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2006년에 미국 사우샘프턴 대학 심리학과에서 한 실험을 진행한다. 참가자들에게 부정적이고 우울한 감정을 유발하는 책을 읽게 한 후, 우울한 감정이 점화된 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것이다. 한 집단은 의식적으로 과거의 행복했던 사건 등을 기억해 내도록 하는 실험 집단, 그리고 나머지는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은 통제 집단이었다. 이후 각 집단의 정서적 안정도를 측정해 보았더니, 행복했던 사건을 기억해 낸 실험 집단의 안정도가 유의미하게 높았다고 한다.


이렇듯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 안정을 주기 때문에, 일상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사건에 따라오는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뭐든지 과도하게 사용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추억 회상 또한 그렇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추억은 다시 한번 그 상황을 ‘기억’해 내는 것이며, 우리의 기억은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왜곡이 잘 일어나는 특성이 있다. 즉 ‘미화’된 기억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은 이런 부정적인 현상을 일컫는 용어이다. 현실에서 벗어나 과거의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강한 부적응을 느끼는, 일종의 도피 심리이다. 과거를 미화하고 왜곡하는 것 자체보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지금, 이 순간에 불만을 느끼는 경향성이 오히려 심리적인 불만족을 가져오는 것이다. 또한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해 나쁜 기억은 의지적으로 빠르게 지워버리고, 좋은 것만 기억하고자 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추억을 회상하며’ 사는 것과 ‘추억에 갇혀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영향이 굉장히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와 과거의 행복을 비교하지 말 것


과거에 대한 추억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과거의 그 시절을 체험하거나 향수에 젖어 드는 것은 일상을 환기하고 정서를 안정시킬 방법이다. 하지만 과거를 기준으로 현대의 문화 등을 무분별하게 비난하는 태도를 가지거나, 현재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반추하는 것은 인지적 왜곡이 일어났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과거에는 추억으로 인해 나름대로 행복했고, 현재에도 예전과는 또 다른 다양한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참고문헌

서혜원, ‘응답하라 내 첫사랑의 추억!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이유는?’. YTN 사이언스.  2017.09.06.. https://science.ytn.co.kr/program/view.php?mcd=0082&key=201709061557091972

트렌드 모니터. ‘2023 복고 문화 관련 인식 조사’. 2023.09.. https://www.trendmonitor.co.kr/tmweb/trend/allTrend/detail.do?bIdx=2775&code=0303&trendType=CKOREA

박상현. ‘우리가 추억과 강박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합뉴스. 2016.05.19.. https://www.yna.co.kr/view/AKR20160519126400005

이동은. ‘추억의 장소에 끌리는 이유…뇌에서 찾았다’. YTN 사이언스. 2019.07.31.. https://www.yna.co.kr/view/AKR201605191264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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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5-10 15: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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