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김혜령 ]



# '아이 때문에' 더 불행한 삶이라니요


'너 아니었으면 진작에 이혼했지' 


A가 엄마에게 들은 말 중 가장 상처가 되었던 말입니다. 엄마는 아빠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종종 말했다고 해요. 속상한 마음에 '그렇게 싫으면 이혼하지 왜 참고 살았어.' 라고 말했더니 그 때 돌아온 엄마의 말은 더욱 아플 뿐이었다고 합니다. 자신 때문에 이혼을 못했다니요. 자신 때문에 더 힘든 삶을 살았다니요. '나 때문에' 엄마 인생이 불행했다고 말하는 듯한 그 한마디는 곱씹을 수록 상처가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며 엄마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긴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픕니다. 


나쁜 의도는 없지만 '너 키우느라 그 좋은 직장을 그만뒀다.' 라거나 ' 너랑 네 동생 낳고 내 건강이 다 망가졌어' '너 생기고 나서 포기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와 같은 어머니들의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습니다. 그런 말들은 진심을 이해해 보기도 전에 가슴에 날카롭게 박혀버리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불행하게 한 장본인이 '바로 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죄책감과 동시에 내 존재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괴로움을 주는 존재구나.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나는 대체 왜 태어난거지?'로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괴로움을 준 당사자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설령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불행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지요.


예시로 든 어머니들의 말은 하나같이 '내가 너를 키우려고 이만큼 희생했어. 나를 이만큼 포기했어.'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아래에는 이런 마음이 있겠지요. '너를 잘 키우고 싶어서 나 이만큼 애썼어.' '나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 '나를 좀 알아줘.' '좋은 엄마라고 인정해줘'. 


어머니들 또한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누군가를 아프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나약한 인간인거죠. 그건 이제 갓 엄마가 된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더욱 그런 마음을 갖기 쉬워요. 고생하고 희생한 것에 비해서 현실이 내 기대에 못미칠 때 의도치않게 외부로 원인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이를 기르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꿈을 접기도 하고, 아이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갈라섰을 것 같은 남편과도 잘지내려 애써봅니다. 그뿐인가요. 잠을 포기하고 여행을 포기하고 날씬한 몸매도 포기했을 겁니다. 그러는 동안 우선순위에 밀린 많은 것들이 때로는 아주 아쉽고 때로는 시간을 되돌려 다른 선택을 한 삶을 상상해보기도 할 겁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하고요. 너무 힘들 땐 이 모든 것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가 작디 작은 아이를 보며 이내 그 마음을 내려놓았을 거에요. 


그럼에도 내가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아이에게 똑같이 전해줄 수는 없지요. 이 어려움들은 내 몫일뿐 아이는 잘못이 없으니까요. 아이를 키우며 지게 되는 큰 과제중의 하나가 바로 상처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서툰 부모를 통해 갖게 된 아픈 흔적들을 내 선에서 잘 매듭짓고 싶을 겁니다. 그러려면 나의 수고를 알아달라며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아이더러 떠안게하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아야 합니다.



# 건강한 '나' 위에 건강한 '엄마'가 있다.


'아이 때문에 내 삶이 더 불행했다.'라는 말 혹은 생각에 대해 살펴봅시다. 이 말이 가장 불편한 이유는 주체가 빠져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마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이가 주어졌고 그 때문에 내가 피해를 입었다는 듯한 뉘앙스에요. 아이를 낳고 기른 건 오롯이 내 선택이었을텐데 '나'만 쏙 빠져있는 것 같은 거죠.


우리는 모두 엄마이기 이전에 '나'여야 합니다. 엄마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가 나로서 서있지 않을 때, 내가 너무 작아져 있을 때 외부를 탓하는 경향이 커집니다. 하지만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살아온 삶이었다면 타인을 원망하지 않아요. 설령 지금 삶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말이죠. 성인이 된 후 내 삶에서 일어난 수많은 선택들과 그 선택으로 인한 현재의 모습이 모두 내몫임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육아가 힘든 건 사실이지만 그 것이 곧 '아이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고, 아이 때문에 불행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나는 능동적인 존재일뿐만아니라 엄마로서의 삶은 내 삶의 일부일뿐 전체가 아니니까요.


'엄마'라는 자아 또한 내가 선택한 역할 중 하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든 선택으로 마주하게 되는 현실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내 삶을 불행하다고 단순화하는 일도, 그게 아이 때문이라고 타인에게 화살을 돌리는 실수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지요. 내가 기꺼이 선택했고, 나에게는 이 아이의 건강과 행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것들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을 겁니다. 


나의 뿌리가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서서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면 그 선택으로 인해 펼쳐지는 것들의 의미또한 잘 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나에게 펼쳐지는 기쁨과 슬픔도 모두 껴안을 수 있지요.  그러면 내 삶을 내가 운전해가고 있다는 느낌 또한 또렷하게 느낄 수 있어요. 


'엄마'의 자리만이 아니라 모든 역할이 그렇습니다. 내가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직장생활도 대인관계도 이리저리 끌려다닐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직장생활을 하는데 내가 '나'없이 직장인으로서의 자아에만 취해있으면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따라 삶이 좌지우지 될 겁니다. 승진을 하면 인생이 꽃길인 것 같았다가, 승진자에서 누락되면 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직장일에 과몰입해서 소중한 가족들에게도 예민하게 굴지도 모르고요. 


물론, 한국에서는 아직 '나'가 빠진 엄마의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보일지 모릅니다.  많은 엄마들이 자신과 엄마라는 역할을 동일시하고, 그 역할에 강하게 몰입하면서 살아가기가 쉬워요. 그건 우리 문화가 여전히 모성애를 강요하는 면이 있고, 엄마의 희생과 헌신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엄마는 '나쁜 엄마'처럼 느껴지고요. 그러다보니 고민해볼 겨를도 없이 '좋은 엄마'에 내 모든 것을 갈아넣는 일이 발생하는 겁니다. 


하지만  '건강하고 또렷한 나'없이 '건강한 엄마'가 있을 수 있을까요. 안전가이드에서 응급상황이 되면 엄마가 먼저 산소호흡기를 쓴 후 아이 것을 씌우라고 하는 것처럼,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면 아이 또한 지킬 수 없습니다. 내가 나로서 단단하게 서있지 않으면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은 아이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엄마가 아니라 '진짜 나'여야 한다는 겁니다.나 자신을 선명하게 지킬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다면 거기서 파생된 '엄마'로서의 태도도 자연스럽게 나오겠지요. 엄마라는 역할에 과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에 온전히 서서 엄마의 역할을 균형있게 수행할 수 있을 거에요.


어떤 분들은 그렇게 나만 챙기면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니냐, 아이에게 소홀해지거나 함부로 하지는 않을까 염려 합니다. 내 삶을 방해하는 아이를 더 미워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내가 중심이 된다는 것이 '엄마'를 놓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나'가 중심에 서있으면 나와 엄마 사이의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기 때문에 '엄마'라는 역할에 과도하게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게 되지요.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무리하기보다는 조금은 부족한 엄마일지라도 나를 적절히 잘 챙길 수 있게 됩니다. 



# 나를 잃지 않는 몇가지 방법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진정한 나로서 엄마의 역할을 건강하게 해낼 수 있을까요. 소소한 방법을 몇가지 권해드린다면 아래와 같아요.


1. 혼자 있는 시간 만들기

한창 집에서 육아만 하던 시기에 주변 분들이 한결같이 해줬던 말이 있습니다. "꼭 밖에 나가. 잠깐이라도 아이 맡길 수 있으면 어디 공원이나 카페라도 다녀와." 집에서는 결코 휴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겪어본 분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마치, '얼른 그 곳을 탈출해!'라고 말하듯 적극적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엄마'라는 이름을 내려놓기가 어렵습니다. 그건 '오롯한 나'로 있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아이가 잠들어있다고 해도 밀린 빨래, 설거지거리들이 눈에 보이면 육아와 살림을 어깨에 짊어진 '엄마'일수밖에 없을테니까요.


집이 아닌 곳에서 꼭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보세요. 엄마도 아내도 아닌 시간. 그저 '나'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책임과 부담을 완전히 내려놓고 잠깐이라도 다른 공기를 쐬어보세요. 잠깐이라도 나로서 숨쉴 수 있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겁니다.


2. 순수한 즐거움을 주는 소소한 활동들

인정이나 보상에 얽매이지 않는 그저 좋아서 하는 취미를 만들어 보세요. 거창할 필요도 남을 따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면 됩니다. '엄마'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잠깐이라도 나의 마음이 푹 빠질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거에요.


 어렸을 때 어른들이 모이면 드라마 얘기를 열정적으로 하시던 게 기억이 납니다. 드라마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합니다. 나의 역할과 책임에서 조금이나마 떨어져 '다른 세계'에 잠시 머무르는 시간이 되기 때문에 얼마나 홀가분하면서도 즐거웠을까요.


 엄마라서 관심을 갖게되는 육아서나 동요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즐기게 되는 음악이나 책, 영화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에게 뜨거운 팬심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 자체로 즐거운 활동을 갖고 있다고 말했어요. 자기만의 즐거운 활동은 별거 아닌듯 하지만 삶의 질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틈틈히 즐기는 그 시간들을 통해 '나'를 지킬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행복과도 가까워져 있겠지요.


3. 나를 위한 질문들

앞서 제안드린 즐거운 활동을 갖는 게 어려운 분들이 있을 겁니다. 왜냐면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혼자만의 시간이 생겨도 무엇을 해야 내가 충분히 즐거운지 몰라 아이 생각만 하다가 육아에 복귀하는 경우도 흔하죠. 그래서 세번째로 권해드리는 건 나를 위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하는 겁니다. 


'나는 무얼 할 때 즐겁지?' '보상이 없더라도 시간을 들여서 하고 싶은 건 무엇이지?' 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보세요.  여유가 된다면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성장하기를 바라는지, 넓은 시야에서 자신을 바라보면서 묻고 답해 보세요. 내가 나로서 중요하고 소중하다면 나에게 큼직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어야 해요. 엄마라는 역할을 떼어놓고 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계획없이 갑자기 된 엄마가 된 분들도 있을 것이고, 나의 꿈이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살다가 엄마가 된 분들도 있을 거에요.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엄마가 되었는데 그 '엄마'라는 역할이 24시간 쉴틈없이 굴러가다보니 미쳐 자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기회도 없었겠지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게 맞는지 틀린건지도 모르겠고, 어떤 날은 내가 뭘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자신을 향해서 아주 작은 질문부터 던져 보세요.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가는 것처럼 호기심을 가지고서 찬찬히 묻고 또 고민해보세요. 시간이 걸릴 수는 있겠지만 이 과정을 통해 나의 생각, 감정, 욕구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바로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첫 단계이고요.



# '아이 때문에'가 아니라 '아이 덕분에'의 삶으로


언뜻보면 엄마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아이를 위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쓰는 모습이 당연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대단한 건 맞지만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그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특히나 그 헌신이 '나 자신'이 빠져있는 빈 엄마의 모습이라면 과연 나중에 자식이 기대에 어긋나는 모습으로 자랐을 때에도 만족할 수 있을까요.


육아를 하다보면 엄마로서의 욕심이 커집니다. 요리도 잘하는 엄마도 되고 싶고, 항상 옆에 있어주는 엄마도 되고 싶고, 몸으로 잘 놀아주는 엄마도 되고 싶고, 능력있는 엄마도 되고 싶겠지만 우리는 그저 평생 '나'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 내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의 엄마의 모습으로 살아가겠지요.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대단한 엄마가 되려하기보다 '진짜 나'부터 건강하게 챙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하여 나중에 아이에게 '너 때문에 이것도 포기했고 저것도 포기했고 이혼도 못했고 그래서 힘들었다'고 말하기보다는, '사는건 녹록치 않았지만 너 덕분에 내가 내 인생에서 도망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고.. 너 덕분에 용기내서 살 수 있었다고.. 너 덕분에 더 멋지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엄마였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너를 만난 건 내 삶에 가장 큰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 말은 성인이 된 아이에게 상처가 아닌 마음을 세우는 척추가 되어 줄테고요.


저 또한 언젠가 아이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유빈아, 너 덕분에 엄마는 덜 중요한 것들을 기쁘게 내려놓는 법을 배웠어. 고마워 "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8567
  • 기사등록 2024-05-14 12:21:4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