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조수빈A]

 

사진 출처: Pixabay

요즘 시대에 인간이 만들어내는 창작물(논문 등도 포함하여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면 뭐든지) 중에 완전히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는 창작물이 얼마나 될까? 때는 22년, 가요계에서 유희열의 곡 ‘아주 사적인 밤’이 일본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는 원작자 측에서 표절이 아니라는 답변을 얻었으나, 다른 곡들까지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서 결국 “무의식중에 기억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되었다.”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윤리성을 떠나서 무의식적으로 표절이 일어났다는 말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는가? 아니면 그저 구차한 변명으로만 들리는가?



흐릿한 표절 기준


음악의 경우, 문화관광부에서 마련한 표절 방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가락, 리듬, 화음의 3요소를 기본으로 하여 전체적인 분위기, 대중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표절 여부를 판단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는 대사뿐 아니라 등장인물, 플롯, 전개 과정, 전체 분위기, 전개 속도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판단한다. 논문의 경우,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마련한 논문표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거나 명제 또는 데이터가 동일 또는 유사할 때 표절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법원의 판결 중 비슷한 사례를 준거로 삼을 수도 있으나, 모든 경우에 대입할 수는 없다. 소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결코 만만하지 않고, 법원 또한 추상적인 기준 탓에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애로 사항 때문에 표절 문제로 시비가 걸렸을 때는 보통 법적 조치를 피하고, 웬만하면 원작자와 합의를 보려고 한다. 물론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편하겠지만, 창작의 영역에서는 어디까지 표절로 볼 것인지 상당히 애매해서 객관적인 기준을 확립하기 어렵다. 다른 데서 소재를 가져오긴 해도, 이를 재해석하거나 재창조하기에 100% 일치하지 않는 한, 표절의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도치 않은 표절은 왜 일어날까?


표절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절대 방심할 수 없는 무서운 녀석이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표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은 표절의 원인을 심리학에서는 잠복 기억이라고 설명한다. 잠복 기억이란, 과거에 체험한 사실이 떠올랐을 때 그것을 새롭게 체험하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Brown & Murphy (1989)는 실험을 통해 잠복 기억의 존재를 밝혀냈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 4명씩 한 조를 만들어 총 여섯 조에 특정 범주를 제시하고, 그것에 해당하는 단어를 한 명씩 차례대로 말해보라고 지시했다. 예를 들어 실험자가 운동이라는 범주를 제시하면 4명이 돌아가면서 배구, 농구, 야구, 수영,…이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이후 실험 참가자들에게 앞서 제시한 범주에 새로운 단어를 적게 했는데, 언급된 적 없는 단어들만 적으라는 실험자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언급되었던 몇몇 항목들이 발견되었다. 머릿속에 ‘잠복’한 기억이 간단한 수행에서조차 영향을 미치는데, 하물며 창작 도중에는 의식하지 못한 표절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표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잠복 기억이 모습을 드러낼 때는 점화가 일어났을 때이다. 점화란, 먼저 제시된 자극이 나중에 제시된 자극의 처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하며 선행 자극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점화는 일어날 수 있다. 점화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광고다. 드라마가 끝난 뒤, 그 드라마의 배우가 광고하는 것은 배역의 좋은 이미지가 점화 효과로 인해 제품의 선호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잠복 기억에 의한 표절은 점화의 한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표절은 불가피한 것일까?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창작물이 존재할 리 없을 테니까.


미국의 심리학자인 Richard Marsh는 아이디어의 출처에 대해 주의 깊게 집중하면 잠복 기억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어느 날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를 순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믿지 않고, 출처를 곰곰이 따져 본다면, 잠복 기억이 파놓은 함정에 걸리지 않고, 표절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몇 날 며칠을 고민해서 나온 답이 고작 유사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혹은 괜히 인정하기 싫어서 깊이 생각하는 것을 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창작자가 짊어져야 할 숙명과도 같다. 출처를 명확하게 알아야 자신만의 색을 어떻게 입힐지도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무에서 유로 나아가기 위해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사는 우리가 무인도에 고립된 것처럼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기란 불가능한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 파도를 관찰하듯 물 밀려오는 정보를 참고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남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면 안 된다.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고, 안일하게 생각했다간 잠복 기억이라는 거센 파도를 만날 수밖에 없다. 귀감이 되는 모티브에 개인적인 해석이나 독창적인 요소가 더해져 새로운 닻을 올릴 때 비로소 풍파를 버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며 버텨온 모든 이들의 항해가 꼭 바라던 목적지에 닿길 바란다.




출처

김수영. (2022). "가요계 덮친 '표절' 의혹...정답 없는 싸움 '왜?' [연계소문]". 한국경제

URL: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2072227927

차유재. (2024). "'표절 논란' 유희열, 1년만에 전해진 근황..."유재석과 뮤지컬 관람"". 머니투데이

URL: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011114295384364

네이버 지식백과. (연도 미상). "표절"

URL: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0942&docId=1315211&categoryId=31693

네이버 지식백과. (연도 미상). "잠복기억"

URL: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60408&docId=500825&categoryId=55558

Brown, A. S., & Murphy, D. R. (1989). Cryptomnesia: Delineating inadvertent plagiarism.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Learning, Memory, and Cognition, 15(3), 432.

네이버 지식백과. (연도 미상). "점화 효과"

URL: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58345&docId=3431795&categoryId=58345

대니얼 샥터. (2023). 도둑맞은 뇌(홍보람). 인물과사상사






기사 다시보기 

가끔은 고독한 시간도 필요해

자기계발서의 함정

PTSD 아니고 PDSD! 스크린 밖 배우들의 고충

인간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가?

게슈탈트 붕괴는 심리학 용어가 아니다!

자기중심성의 역발상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8581
  • 기사등록 2024-05-20 07:38:2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