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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의 호의로 시작된 범죄의 시작 - 넷플릭스 드라마 '베이비 레인디어(Baby Reindeer)'
  • 기사등록 2024-05-21 07:5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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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고다연 ]


시간 날 때마다 영화나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하는 필자는 평소처럼 OTT를 둘러보다 한 드라마를 발견했다. 제목은 ‘베이비 레인디어(Baby Reindeer)’. ‘아기 순록’이라는 귀여운 제목과 달리, 이와는 상반되는 분위기의 포스터는 필자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이 글은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넷플릭스(Netflix)‘베이비 레인디어’는 영국에서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로, 무명 코미디언 ‘도니’에게 어느 날 자신이 일하는 곳에 나타난 ‘마사’라는 여성에게 차 한 잔의 호의를 베푼 후 나타나며 생기는 일련의 사건을 7부작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평소처럼 평범하게 동네 작은 펍에서 일하던 ‘도니’ 앞에 침울한 표정의 여자 ‘마사’가 등장한다. 순간 그녀의 모습에 연민을 느낀 도니는 따뜻한 차를 마실 것을 권유한다. 마사는 이에 돈이 없다고 대답하자 도니는 무료로 차 한 잔을 내어준다. 그러자 눈에 띄게 밝아진 마사는 자신이 사실 유명한 변호사이며, 정계 인사들과도 막역한 사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고 다음 날부터 매일같이 펍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와서 온종일 도니를 쳐다보고 말을 걸며 도니를 ‘아기 순록(Baby Reindeer)’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동시에 도니의 메일함은 마사가 보낸 메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이메일 4만 1,071통, 음성 메시지 350시간, 트윗 744개, 페이스북 메시지 46개, 손 편지 106페이지, 순록 장난감 등 선물은 4년간 마사가 도니를 스토킹하며 남긴 목록이다. 또한, 이 영화는 작가이자 주연배우를 맡은 '리처드 개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화제를 모았는데, 도니를 연기한 리처드 개드가 실제로 받은 것들이라고 한다. 




'피해자답게' 행동하지 않는 피해자?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왜 도니는 마사를 내버려두는 거지?”


실제로 드라마를 보다 보면 도니는 마사가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두거나, 오히려 그런 행동을 유도하고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회차가 거듭될수록 이해할 수 없는 도니의 행동을 자주 볼 수 있다. 도니의 행동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건 도니의 모습이 우리가 아는 ‘피해자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스토킹 피해자라고 하면, 스토킹 가해자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가해자를 생각하기만 해도 불안함과 불쾌감을 내비치며 거리를 두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2021년 한국여성정치연구소에서 온라인 스토킹 가해자 특성을 분석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인과 연인 또는 전 연인, 가족 또는 친인척에게 스토킹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비율이 합쳐 34.4%나 된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를 당했다면, 과연 명확하게 거절 의사를 표현하고 불쾌감을 일관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극 중 ‘도니’처럼 연민이나 혐오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들이 뒤섞여 오히려 그 감정의 화살이 자신에게 향해 결국 비극적인 끝을 맞을 수도 있다. 


이 드라마는 볼수록 “‘피해자다운 것’이 뭔데?”라는 질문을 시청자에게 던져오며, 그들 속에 존재하는 ‘피해자라면 이렇게 행동해야 옳은 거지’라는 편견을 깨버린다. 




죄책감 가질 필요가 없잖아!


이와 관련된 사례도 있다. 2022년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다. ‘부산 돌려치기’ 사건은 부산에서 30대 남성이 집으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성폭행할 목적으로 10여 분간 쫓아간 뒤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때려 살해하려 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전에 벌어졌던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 속 보통의 피해자들과는 다른 피해자의 행보를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샀다.


출처 Youtube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 씨를 모셨습니다! / 그알저알 EP.89'피해자 김진주 씨는 사건 이후 기적적으로 회복한 뒤 여러 자료를 모아 ‘그것이 알고 싶다’에 직접 제보하고, ‘부산 돌려차기’라는 사건의 이름도 직접 지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또한 김진주 씨는 법정에 출석할 때 법정 안에 있는 사람들 중 옷을 가장 화려하게 입음으로써 “가해자는 죄수복을 입고 있지만, 나에게는 패션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라고 밝히며 당당하게 자신이 겪은 사건을 마주하고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피해자의 심리


이 작품의 결말은 앞선 김진주 씨의 사례처럼 당당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마주 보고 해결해 나가는 긍정적인 결말은 아니다. 작품 후반부에서 도니에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던 상황이 그려지며, 왜 이렇게 깊은 자기혐오와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한 이유가 드러난다. 도니는 20대에 한 페스티벌에서 유명한 각본가였던 ‘대런’을 만나 서서히 그에게 조련당하기 시작한다. 도니는 대런에 의해 갖가지 마약에 노출되고, 마약에 취한 사이 그에게 성폭행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도니는 대런이 자신의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이후에도 대런을 스스로 찾아가고 계속해서 자신은 파괴되어 간다.


이 시기를 겪으며 깊은 자기혐오를 갖게 된 도니에게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는 마사의 존재는 어쩌면 조금의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후 마사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실형을 살게 되고, 마사가 곁에서 없어지자 외로움을 느끼던 도니는 대런을 다시 찾아간다. 사실 이 장면에서 필자는 그에게 원망을 쏟아내는 등의 격한 대립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기대도 짧은 시간에 처참히 부서져 버렸다. 새로운 쇼에서 같이 일하자는 대런의 제안에 도니는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작품의 결말은 도니가 트라우마에 극복하지 못하고 대런에게 조종당하는 상황을 그려낸다. 리처드 개드는 이전에 그려지지 않았던 학대의 한 모습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결말을 그려내었다고 밝혔다. 심각한 학대를 당한 후에도 피해자 상당수가 그 과정에서 비틀어진 애착을 형성하게 되고, 결국은 그가 필요하다고 느껴 다시 가해자의 곁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고도 언급했다. 도니가 대런에게 스스로 다시 찾아가는 장면을 통해 범죄 이후 제대로 된 대처와 치료가 아닌 방치의 끝은 ‘학대의 순환’이라는 것을 조용하지만 명확하게 경고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학대와 스토킹은 계속되고 있다. 혹시라도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진승에 따르면 “가해자의 심리를 유추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가해자의 행동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가해자를 설득하려다 보면 가해자를 직접 만나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려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필요하다면 의사와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참고문헌

자신이 당한 스토킹 범죄 실화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화제작 《베이비 레인디어》 [시사저널]. (2024).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89764

[정수진의 계정공유] 가벼운 호의가 낳은 끔찍한 스토킹의 실체, ‘베이비 레인디어’ [비즈한국]. (2024). https://www.bizhankook.com/bk/article/27558

[복지동향] 20대 여성 80% 당한 ‘온라인 스토킹’ 처벌할 법이 없다 [노원복지샘]. (2021). https://www.nowonbokjisaem.co.kr/%EA%B3%B5%EC%9C%A0%EB%B3%B5%EC%A7%80%ED%94%8C%EB%9E%AB%ED%8F%BC/%EB%B3%B5%EC%A7%80%EA%B4%91%EC%9E%A5/?mod=document&uid=3046

‘부산 돌려차기’ 강간 살인 미수범 징역 20년 확정 [한겨레]. (2023).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9495.html 

Richard Gadd on Baby Reindeer’s harrowing ending: “It’s the most truthful scene of the entire show” [GQ]. (2024). https://www.gq-magazine.co.uk/article/baby-reindeer-netflix-richard-gadd-interview

어두운 밤 쫓아오는 수상한 사람... 현명한 스토커 대처법 알려드립니다 [Youtube]. (2022). https://www.youtube.com/watch?v=mV0YrL270d8 

David P. Celani. (2007). 사랑의 환상. 한국가족복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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