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민
[한국심리학신문=채수민 ]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공부하는 학문인 심리학은 사실상 인간의 삶에 대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삶은 건축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건축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3요소, 의식주 중에서 ‘주’와 연관이 있다. 야외활동보다 실내 활동이 더 많은 현대 사회에서 건축은 인간의 삶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의 바탕이 된다.
사람을 생각하지 않은 건축의 결말
1956년 완공 직후의 Pruitt-Igoe 공공 주택 단지. Bettmann/Corbis 제공
야마사키 미노루(Minoru Yamasaki)라는, 흔히 쌍둥이 타워라고 잘 알려진 세계 무역 센터를 지은 건축가가 있었다. 그는 1954년에 미국의 도시 재건축 프로젝트인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를 진행하였다. 많은 돈을 들여서 지은 대규모 공공주택단지인 이곳은 겨우 17년 만에 파괴되고 말았다. 이 건축물은 매우 효율적으로 설계되었으나 그 안에 살게 될 사람을 고려하지 않았다. 아파트에는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 발코니도 없었다. 이는 사람 간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고 유대감을 떨어뜨렸다. 혼잡성을 줄인다는 목적으로 1층, 4층, 7층, 10층에만 멈추는 엘리베이터는 결국 많은 거주민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만 사용하게 했다. 세탁실과 쓰레기 수거장이 있는 대형 공공 복도는 오물이 쌓이고 강도와 도둑들이 드나들게 되었다. 십여 년 만에 이 건축물 단지는 거대한 슬럼으로 변했으며, 도시의 쇠퇴와 맞물려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었다. 결국 정부는 거주민들을 모두 이주시킨 후 단지를 폭파하고 해체하였다. 이처럼 건축의 작은 요소들이 모이고 모여 사람을 만들고 사회를 변화시킨다.
도시와 불안
빠른 산업화와 함께 지어진 도시에는 ‘불안 공간’이라는 것이 있다. 가고 싶지 않은 장소, 가게 되어도 빨리 나오고 싶은 장소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가 드나들기는 편리하지만 보행자는 안전하지 않은 도로, 음침한 지하보도, 어두컴컴한 지하철역 주변 등이 있다. 전쟁 이후 빠르게 개발된 우리나라의 구도심 지역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공간들이다. 이런 장소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의 건축커뮤니케이션 교수인 리클레프 람보브(Riklef Rambow)는 불안 공간의 복잡한 구조, 어두운 조명, 구석진 공간과 그늘에 가려져 있는 모퉁이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공간들은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인식을 주고 사회적으로 통제되지 않는다는 생각과 함께 심리적인 불편감을 준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줄고, 이런 곳에서 범죄가 한 번 발생하면 사람들은 더더욱 후미진 곳을 꺼리면서 악순환이 생긴다.
이런 불안 공간은 작은 건축 요소 하나만 추가해도 쾌적하게 바꿀 수 있다. 어두운 공간에 조명을 달면 밝고 깔끔한 분위기를 주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불안감을 덜 느끼게 된다. 불안 공간 주변에 있는 건물을 설계할 때 창문을 많이 다는 것도 효과적이다. 누군가가 지켜볼 수 있다는 생각은 범죄 욕구를 낮추고 행인들도 안심할 수 있다. 또한 시야를 가리지 않을 정도의 녹지도 도움이 된다. 나무를 심으면 을씨년스러운 공간에 대한 공격성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다고 한다.
디자인 VS 심리
시애틀 중앙도서관. Seattle Public Library 제공
이 사진은 시애틀 중앙도서관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렘 콜하스가 지은 이 건물은 혁신적이고 대담한 설계로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그는 이 건축물을 통해 ‘건축은 모험이다.’를 보여주려고 했으나 이 도서관을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메시지가 잘 와닿지 못했나 보다. 도서관이 개관한 해에 뉴욕타임즈에서는 도서관 내부가 너무 복잡해서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중 한 이용자는 “빠져나갈 수 있는 문을 발견한 순간 앞뒤 재지 않고 허겁지겁 건물을 빠져나왔다. 패닉에 빠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 라고 말했다. 건물 안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한다. 만일 길을 잃은 건물이 도서관이 아니라 병원이었다고 생각해보자. 심리적인 불안감과 두려움은 치료의 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고 환자의 건강은 악화할 수 있다. 이처럼 건축물이 이용자들에게 주는 심리적인 안정성은 건축물의 매력적인 디자인이나 건축가의 신념만큼이나 중요하다.
지금까지 사례와 예시를 통해 건축물이 사람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았다. 어떤 건축환경에서 살아왔는지에 따라 인간의 자아와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건축물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로 살펴봤다면, 다음 기사에서는 심리학을 잘 활용한 건축 설계에 대해 볼 것이다.
참고문헌
발터 슈미트. (2020). 공간의 심리학: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공간의 비밀. 서울: 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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