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현
[한국심리학신문=노상현 ]
갈 곳을 알기 위해 걷는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한 말이다. 관심사를 발견한 그 당시에는 엄청난 관심과 함께 불타올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된 경험이 있는가? 그 이유는 바로 당신의 관심사는 계시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닌, 당신 스스로가 발견한 후 지속적이고 주도적으로 키워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정은 한순간에 생기는 게 아니다. 처음에 관심이 생긴 후에도 지속적으로 계속 그 일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이 그 일에 정말로 열정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지금 자기 직업을 천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럽겠지만 그들이 우리와 출발점부터 달랐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들 또한 무엇을 하고 살지 정확히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신이 하는 일의 의미는 일단 그 일에 뛰어들어서만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일에 종사하겠다 마음먹었으면 실전에 부딪히며 차츰 거기서 얻는 바를 쌓아나가야 한다. 랍비 나함은 이렇게 말했다. “길을 안다는 자에게 물어보지 말라. 네가 길에서 헤맬 기회를 잃게 되므로.”
현재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과거를 이해할 수 없다.
프랑스의 한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가 한 말이다. 그 누구보다 과거에 집중하며 과거를 샅샅이 파헤치고 탐구하는 역사가가 왜 과거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남겼을까? 그 이유는 바로 과거는 우리가 던지는 질문들을 따라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현재 어떤 의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다른 과거를 만난다. 그렇기에 역사가의 일은 사실의 기록보다 질문을 던지는 작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 상태에 비추어 과거를 재해석한다. 즉 과거에 대해 스스로 현재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중요하지, 우리에게 발생한 실제 사건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혹시라도 당신이 특정한 과거에 얽매여 스스로를 갉아먹거나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 특정한 과거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재구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과거가 현재의 의미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현재가 과거의 의미를 만든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결국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려있지 않을까.
시큼하게 변하는 사연을 떨치려고 잼 한 병을 건넨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한 말이다. 이 말을 해석하자면 상대방에게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면 대결을 피하라는, 약간은 당황스러운 말이다. 왜 그래야 할까? 그 이유는 바로 상대방이 나에게 욕을 했다 해서 나도 같이 욕을 퍼붓는다면 상대가 드리운 함정 및 틀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문제 상황을 해결하고 싶다면 좀 더 교묘하게 대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코앞에 함정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현명할까? 니체는 이에 잼 한 병을 건네라고 한다. 나에게 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고약한 상황 자체에 건네라는 것이다. 나를 당황시키고 위축시키고 발목 잡는 상황이 조금은 부드러워지도록 잼을 발라보면 어떨까. 그 상황 자체에 휘둘리지 않고 주도성과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말이다.
데일 카네기는 이렇게 말했다.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그 논쟁을 벗어나는 것뿐이다.” 어떻게 해서든 저쪽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흑백논리보다는, 그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제 3자의 입장에서 그 논쟁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녀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파브리스 미달. (2022). 철학이라는 해독제. 클레이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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