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한국심리학신문=김민서 ]
"수어와 수화 뭐가 다른 거지?"
많은 사람들이 두 표현의 차이를 알지 못해 혼용해서 사용할 것이다. 필자 또한 이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수어라고 하면 ‘사랑해요’라는 수어밖에 아는 것이 없었는데, 작년 교양 수업을 듣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수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어와 관련하여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도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서 수어와 관련한 대표적인 오해들을 알아보고 그 진실을 파헤쳐 보려고 한다.
수어 vs 수화 뭐가 맞는데?
수어와 수화가 종종 혼용되어서 사용되는데 두 표현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을 위해 수화와 수어라는 표현을 두고 전문가들과 수어 사용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선호도 조사에서도 팽팽한 대립이 있었는데 각 측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수화(手話)는 손 수/ 말씀 화를 사용하는데,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말하는 것을 수화로 알고 있기 때문에 법에서도 수화를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한편 손 수/ 말씀 어로 구성된 수어(手語)는 말씀 어를 사용하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등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언어로 인정하기 위해서 수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결국 논의 끝에 '수화언어'를 줄여서 법에서도 '수어'로 정하게 되었고 오늘날 사회에서는 점차 수어라는 표현이 자리 잡게 되었다.
수어 그냥 몸짓 아니야?
수어를 단순히 손으로 무언가를 따라 그리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해이다.
첫째로, 도상성을 보이는 수어도 있지만 수어에는 언어의 자의성도 존재한다. 기호와 가리키는 대상의 동기적 연관성이 있는 경우에는 도상성, 기호와 지시하는 대상의 필연적 관련성이 없으면 자의성을 띤다고 말한다. 가령, ‘탁자/테이블’을 가리키는 수어는 두 손의 손등이 위를 향하게 맞대고 옆으로 벌리다가 손목을 돌려 약간 내려서 표현하는데, 이는 실제 사물과 매우 높은 시각적 유사성을 보인다. 그러나 ‘여자 형제’를 가리키는 수어는 도상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자의성이 드러나는 예시이다. 또한 수어가 일반적으로 도상성을 보인다면, ‘나무’와 같이 모든 문화권에 존재하는 기초어휘에 대해서 시각적 유사성이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같은 나무를 가리키더라도 나라별 수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수어에서만 도상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음성 언어에서도 일부 도상성을 보인다. 특히나 의성어, 의태어와 같은 음성상징어들이 그 예이다. 한국어의 ‘꼬끼오’와 같은 의성어는 닭의 울음소리와 실질적으로 동기적 연관성이 있는 경우이다. 결국, 수어에서만 도상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수어에서도 도상성만으로 이해될 수 없는 언어의 자의성이 존재한다.
음성 언어를 일대일로 번역하면 되는 건가?
한국 음성언어 문장에서 단어들만 해당하는 수어로 바꾸면 수어 문장이 되는 것일까? 한국 수어와 한국 음성 언어의 단어 구조와 문법 체계는 서로 다르다. 수어에서는 여러 단어를 한 동작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같은 문장을 표현하더라도 음성 언어와 다른 어순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수어와 음성 언어의 차이를 단어 구조, 문장 구조, 문장 종류의 측면으로 나누어서 알아보고자 한다. 단어 구조의 측면에서 수어의 동시적 합성어는 음성 언어와의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수어로 ‘화산’을 표현할 때, 왼손으로는 ‘산’에 해당하는 수어를, 오른손으로는 ‘폭발’에 해당하는 수어를 한 뒤 두 손을 동시에 포개는 방법을 사용한다. 음성 언어와 다르게, 서로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를 동시에 나타내는 조어법이 있다는 것이 수어만의 특징이다.
문장 구조를 살펴보면, 수어는 조사와 어미를 별도로 표시하지 않는다. 부사/부사구나 관계절의 위치도 음성언어와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철수가 빨리 뛴다’라는 문장을 수어로 표현할 때 [철수]+[뛰다]+[빠르다]와 같은 식으로 부사가 동사 뒤에 위치한다. 관계절의 경우 음성 언어와 달리 주절의 사이뿐 아니라 주절 앞 또는 뒤에도 올 수 있고, 관계절 전후에 휴지 등으로 문장 단위의 구분을 나타낸다.
문장의 종류에서는 의문문과 명령문이 특징적이다. ‘커피를 주문하시겠어요?’와 같은 판정 의문문의 경우 문장의 끝에서 눈썹을 올리고 입 모양을 ‘오’로 하여 판정 의문문임을 나타낸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와 같은 설명 의문문은 [돕다]+[무엇]으로 의문사가 문장의 끝에 나타난다. 한편 명령문은 고개를 숙이면서 지시하는 비수지 동작으로 청자에게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이를 모두 종합했을 때 한국 수어 문법과 한국 음성 언어의 문법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구화에 익숙하지 않은 농인들에게 수어와 체계가 다른 한글을 읽는 것은 어려울 수 있고, 이는 자막이 있더라도 수어 통역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농교육 현장이 구화(언어 장애인이나 청각 장애인이 특수 교육을 받아 상대의 입술 모양으로 뜻을 알아듣고, 자기도 그렇게 소리 내 말하는 것)에 방점을 두며 수어 사용자들은 많은 핍박과 차별을 받아왔다. 그러나 수어는 음성 언어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문법 체계와 구조를 가진 농인들의 언어이다. 말이 아닌 손과 비수지 신호(입 모양, 입 제스처, 눈의 움직임, 표정 등)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농인들의 의사소통 수단에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독립적인 언어로서 인정받기를 바란다.
참고 문헌:
한국 수어 사전. URL: https://sldict.korean.go.kr/front/main/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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