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우
[한국심리학신문=박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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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쯤 ‘엄친딸’, ‘엄친아’ 따위의 표현을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엄마 친구 딸 (또는 아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부모가 종종 자식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주로 엄마의 친구 자식이 외모, 능력, 학력 등 다방면에서 월등히 뛰어날 경우 엄친딸 또는 엄친아라고 불리며 늘 그들과 비교 대상이 되는 이는 주눅 들기 마련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날 엄친딸과 엄친아를 대체하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바로 ‘육각형 인간’이다.
육각형 인간이란?
육각형 인간이란 외모·성격·자산·직업·집안·학벌 등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특정 대상이 갖는 여러 특성을 비교 분석할 때 연구자들은 주로 헥사곤 그래프를 사용한다. 이때 실험 대상은 모든 기준을 충족할 경우 이를 측정하는 축에 끝까지 도달하는 정육각형의 형태를 띤다. 따라서 육각형은 ‘모든 요소를 충족하는 완벽’이라는 의미로 사용돼 왔으며 현대인이 삶에서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가치로 손꼽히고 있다.
육각형 인간을 갈망하는 사회
최근 SNS를 비롯한 각종 포털사이트에 ‘육각형 연예인’, ‘육각형 아이돌’, ‘육각형 브랜드’ 등의 검색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특히 언론 매체의 기사 제목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OOO, 육각형 가수 발굴한다’, ‘OOO, 노래부터 입담까지 육각형 아티스트 입증해’, ‘OOO, 육각형 인간의 직업의식’ 등이 있다.
요즘 대중은 더 이상 노래만 잘 부르는 가수를 선호하지 않는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준수한 외모를 가졌으며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통해 다수의 존경을 받는, 나아가 노래까지 잘 부르는 가수에 열광한다. 이는 한국 사회가 단순히 한두 영역의 성취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완벽을 추구하는 데 상당한 강박관념을 갖게 되었음을 입증한다.
오늘날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익명의 타인과 끊임없이 경쟁하고 비교당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세상의 완벽한 타인을 지속적으로 비교하며 육각형의 자아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흔히 ‘갓생 챌린지’, ‘미라클 모닝’의 유행 등 더 완벽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열정과 원동력을 불어넣는 긍정 효과를 낳았으나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요소의 한계에 부딪치게 만들어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가령 외모나 집안 등의 요소는 개인적 노력만으로 완벽의 수준을 달성하는 데 상당한 한계가 따르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완전한 육각형 인간이 되지 못하는 사실에 크게 절망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육각형 신드롬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육각형 인간은 아무나 될 수 없고, 이를 계속해서 증명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청년 세대에서 하나의 놀이처럼 여겨지고 있다.
오늘날 대중이 동경하는 대상은 단순히 얼굴 예쁜 아이돌과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니다. 그들이 진짜 선망하는 대상은 사회 내 재벌 2세와 3세일 가능성이 높다. 일반인이 노력만으로 쉽게 획득할 수 없는 타고난 재력과 집안까지 갖춘 재벌가의 자녀들은 특정 한 분야의 월등한 실력을 자랑하는 연예인보다 육각형 인간에 더욱 가깝다. 이는 실제 재벌이 아닌 사람들로 하여금 재벌 2세, 3세와 비슷한 수준의 완벽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게 만든다.
이후 그들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을 수치화하여 주변인과 서열을 매긴다. 이는 그들이 남들보다 뛰어난, 혹은 재벌가의 수준과 가장 유사한 육각형 인감임을 증명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 중 하나다. 예컨대 결혼정보업체나 데이팅 앱에서 회원의 수준을 외모와 능력, 성격, 학력 등의 조건에 따라 차등적인 등급을 부여해 이에 따라 만남을 주선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육각형 트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편화된 나머지 하나의 유흥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특정 코스프레를 하거나 이를 희화화한 짧은 영상이나 밈이 유행하는 것이 그 예다.
우리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이유
1986년부터 2015년까지 영국의 심리학자 앤드류 힐과 토마스 커런이 서양의 일부 국가 내 약 4만여 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다수의 청년이 타인에게 자신의 완벽함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음이 밝혀졌다. 해당 연구는 오늘날 청년 세대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과 타인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극도의 완벽주의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일까?
첫째, 우리 사회의 ‘계층 사다리’가 점차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6명은 계층 간 이동이 어렵다고 응답했다. 또한 19세 이상 인구 중 자식 세대의 계층 상승 가능성에 대해 ‘높다’고 응답한 사람은 29.1%에 불과했으며 54.0%는 ‘낮다’, 17.0%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지속되는 경제 불황 및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며 사회적 부의 양극화는 극심해졌고 개인의 노력으로 성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암묵적 믿음은 유명무실해졌다. 사실상 본래 소득 수준이 월등히 높은 계층이 노력해서 달성할 수 있는 수준과 그렇지 않은 계층이 노력해서 달성 가능한 수준은 차원이 다름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 내 완벽의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설정했으며 청년들이 계속해서 완벽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둘째, 타인과의 비교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척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1954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제시한 사회 비교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개인의 의사결정 및 가치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본래 자신의 의견과 능력을 객관적 기준으로 비교 및 평가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해당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사회적 비교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가늠한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발달이 타인과의 비교를 심화시키는데, 해당 비교 대상은 친구나 이웃을 넘어 유명 연예인과 인플루언서 등으로 확장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현상은 개인 사이의 우열을 나누는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 냈고, 사람들은 이를 토대로 서로의 가치에 점수와 등급을 매기며 완벽의 정도를 따지기 시작했다.
셋째,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자아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1987년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토리히긴스가 제안한 자기 불일치 이론에 따르면, 개인의 자아 상태 간의 불일치는 당사자로 하여금 정신적 고통을 유발한다. 그는 인간의 자아를 실제적 자기, 이상적 자기, 의무적 자기로 구분했고 각각의 자아 상태는 개인의 자기 인식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실제적 자기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인식하는 개념이고 이상적 자기는 자신이 지향하는 바람직한 자아를 반영하는 개념이다. 의무적 자기는 스스로에게 부여한 책임과 의무, 당위성을 나타낸 개념이다. 그중 사람들은 실제적 자기와 이상적 자기의 불일치에서 오는 실망과 불편, 박탈감 등에 정서적으로 취약한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그들은 실제와 이상 자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오늘날 청년들이 극도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행동으로 발현되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육각형 인간을 갈망하는 사회,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진심을 다해 말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다운 것이 가장 좋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말이겠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한 조언이다. 어쩌면 육각형 인간은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저 사회가 바라는 이상향일 확률이 높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공동체다. 외모가 아닌 능력만으로 인정받고 싶은 이가 있고 부의 축적 보다 개인의 여가 시간을 즐기는 데 행복을 느끼는 이가 있다. 유명한 학교나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자신이 창업한 사업에 투자하는 시간이 더욱 값진 사람이 있고 하루쯤 건강을 챙기기보다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힐링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사회가 제시하는 획일화된 고정관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찌그러진 육각형 인간’이 아닐까.
참고문헌
김난도 외 9명, 「트렌드 코리아 2023」, 미래의창, 2022
뉴스웍스, [Website], 2023, 국민 10명 중 6명 "노력해도 계층 이동 어려워"
https://www.newswork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2848
BBC NEWS 코리아, [Website], 2020, 직장에서 완벽주의자가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
https://www.bbc.com/korean/news-5345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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